[스미레의 육아에세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스미레의 육아에세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 스미레
  • 승인 2018.07.18 16:48
  •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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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그 세대는 아니지만 내 유년의 배경음악은 아바(ABBA)의 곡들일 것이다. 개중엔 클래식도, 조용필과 심수봉도 있었으나 주말 오후 아빠가 가장 편하게 집어드는 음반은 늘 아바의 것이었다. 곱게 풀어진 노을 위로 70년대의 흥취가 몰려오는 것을 지켜보던 유년의 주말들. 아바의 곡들은 어린 내게도 '익숙한 옛날 노래'였다.

시간이 흐른 어느 날, 우리는 영화 '맘마미아'를 보게 되었다. 세 모녀가 흥얼흥얼 영화를 보다가 'Slipping through my fingers'가 나오던 순간, 고요가 찾아왔다. 영화에서 ​엄마인 메릴 스트립이 결혼하는 딸의 머리를 만져주며 부르던 곡. 자라나는 딸을 향한 작곡자의 아쉬움이 담긴 곡. 유년의 나를 의미없이 스쳐갔던 곡.

동생의 결혼식이 코 앞이어서였을까. 엄마는 울고 계셨다. 나도 울어버렸는데, 엄마의 마음을 짐작하는 것만으로도 ​따갑고 아려서 그랬을테다.

아이는 유치원에 다닌다. 일곱살, 첫 유치원이다. 

아이는 매일 자전거를 타고 유치원을 통학한다. 소담한 꽃길과 텃밭을 몇 개 지난다. 나도 자전거를 타고 아이 뒤에서 아이의 노랑 가방을 좇는다. ​유치원에 도착하면 아이는 자전거에서 폴짝 내려 팔랑팔랑 손을 흔들며 문 속으로 사라진다.

순간 어린 시절 나를 스치던 그 노래가, 젊은 시절 알 수 없던 그 마음이 비로소 생생한 색조를 띄며 다가온다. 닫힌 문 앞에서 찰랑이는 마음을 꾹 누르고 자전거 패달을 밟는다. 아바의 멤버가 이 곡을 만들 때 딸이 일곱살이었다고 하니, 그 애틋함이 내게는 곱절이다.

Schoolbag in hand, she leaves home in the early morning
이른 아침 책가방을 손에 들고 그 애는 집을 나서죠

Waving goodbye with an absent-minded smile
무심한 미소로 손을 흔들면서

I watch her go with a surge of that well-known sadness
익숙한 슬픔이 밀려들어 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And I have to sit down for a while
난 잠시 가만히 앉아 있죠

I'm glad whenever I can share her laughter, That funny little girl
그 작고 사랑스런 아이, 그 아이와 같이 웃음을 나눌 때가 제일 기쁜데

Slipping through my fingers all the time
매번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요

She keeps on growing
아이는 점점 자라나는데

Slipping through my fingers all the time
매번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버려요

6년간 꼭 붙어있던 내 분신같은 존재를 그려본다. 어깨와 팔에 내려앉던 작지만 거대한 중력을 기억한다.

웃고 울던 얼굴, 기려고 바득바득 애 쓰던 모습과 아장아장 걷던 두 발, 거꾸로 든 책을 참새처럼 읽어주고 종일 장난감을 고치던 모습. 모든 순간이 소나기처럼 눈 앞을 스친다.

언제 저렇게 자랐는지, 노랑 가방을 매고 나폴나폴 뛰어가는 뒷모습이 마냥 신기하고 대견하다. 동그란 얼굴과 새순같은 팔다리를 바라본다. 머리칼을 공연히 헤집어도 본다. 그렇게 두 눈과 손 끝에 매일 새기고 또 새기지만, 도리없이 자꾸만 새어나간다. 노란 가방과 자전거의 날들도 곧 그리워질 터이다.

노래의 끝에 시계 소리가 들린다. 째깍, 째깍..시간이 그리는 파문이 마음 속에 퍼져나간다.

아바의 노래가 귓가에 머물던 밤, 또다른 기억 하나가 내 등을 두드렸다.​ 대학 시절 배운 손튼 와일더의 '우리 읍내'에 대한 기억이다. 100여년 전 미국의 작은 마을,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이야기가 못내 아름다워 몇 번이고 연극을 찾아 보았더란다.

그 시절에도 엄마는 매일 아이들을 깨워 밥을 먹이고 학교에 보내며 하루를 시작한다. 아침이면 신문이 배달되고 저녁이면 아빠가 퇴근하는 보편적이고 평이한 날들. 그 틈새로 주인공 에밀리가 사망하며 극은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이승을 그리워하는 에밀리가 과거의 한 순간으로 잠시 돌아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어느 날이 좋을까요?'

특별한 날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에밀리에게 '선배'인 시어머니는 평범한 하루를 고르라 말한다.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그렇게 에밀리는 자신의 열두 번째 생일 날로 돌아간다.

그 날, 에밀리의 눈에 비친 모든 것이 축복처럼 찬란하다. 째깍이는 시계, 해바라기, 잘 차려진 음식과 커피, 침대 위의 옷과 따뜻한 목욕물, 젊은 부모님. 애석하게도 엄마는 딸의 생일상을 차리느라 바쁘다. 딸과 눈도 마주치지 못한채 기계처럼 분주하다. 그런 엄마에게 에밀리는 '진정 아름다운 걸 보지 못하고 바쁘게 살아간다'며 눈물을 흘린다.

에밀리의 마지막 독백은 늘 마음에 와 박힌다. 몇 번이고 들어와 박힌 것을 굳이 빼내지 않는다. 다만 잘 봉해두고 이따금씩 꺼내어본다. 물렁해진 마음을 다스리는데 이만한 특효약을 나는 아직 찾지 못하였다.

​"너무 빨리 지나가 버렸어요. 서로 쳐다볼 시간도 없었어요. 몰랐어요. 모든게 이렇게 지나가는데 그걸 우린 모르고 있는 거예요. 안녕, 세상이여, 안녕, 우리 읍내. 엄마, 아빠도 안녕히. 째깍거리는 시계도, 해바라기도 잘 있어. 음식도, 커피도, 새로 다림질한 옷도, 따뜻한 욕조도, 잠 자고 깨는 것도. 아, 너무나 아름다워 그 진가를 몰랐던 세상이여. 안녕."

시간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다. 한 순간도 움켜쥘 수 없음을 우리는 종종 잊는다. 중요하고 아름다운 것들을 황망히 놓치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살기 위해 삶을 사랑하고, 삶을 사랑하기 위해 살라.'고 말하는 작가의 어조는 지극히 다정하다. 열두 살 생일로 돌아간 에밀리의 한숨 어린 탄식도 떠오른다. '우리 엄마가 이토록 젊었다니!'

그렇다. 눈 앞의 아이는 평생 개구진 일곱살이 아닐 것이며, 나 역시 내내 젊은 엄마는 아닐 터이다.

매일 오늘과 이별하며 산다. 그럼에도 우리는 시간의 선함을 믿는다. 정말 소중한 것은 시간이 흐른 후에 남는 것이며, 한참 후에야 이해되는 것들이 있음을 안다. ​훗날 그리워하기 위해 오늘을 산다. 순간은 스러져도 삶이 견고한 것은 그 덕분일테다.

■ 작가소개

스미레(이연진)

자연육아, 책육아 하는 엄마이자 미니멀리스트 주부. 
아이의 육아법과 간결한 살림살이, 마음을 담아 밥을 짓고 글을 쓰는 엄마에세이로 SNS에서 많은 공감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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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네 2018-07-20 22:25:38
세월이 지나고 나면 알아요
지금이 소중했다는것을 ~~
좋은글 읽고 깁니다.

리라 2018-07-20 07:41:59
기사 제목만 봐도 맘마미아 그 장면, 그 노래 얘기하시려나 보다 싶었어요. 역시^^
저 또한 맘마미아에서 제일 인상 깊던 장면입니다.

친구랑 영화보고 엄마랑 또 한번 보러 갔었네요.
저는 아기가 없지만 다 자기 보는 관점, 느끼는 감정이 다른지라~
부모에 대한 감사함과 무한사랑으로
너무 좋았던 장면입니다.

지금 이 순간 소소한 일상..다 한번 뿐이지요.
글 쓰고 부모님께 전화 한번 더 드려야겠어요 !

오늘도 좋은 글 감사합니다

더운날에도 2018-07-19 13:04:38
아이에 대한 사랑은 끝이없습니다.
모정이라고 하던가요 ㅡ
스미레님의 글에 목이 잠깐 잠겼습니다.

오늘도 2018-07-19 09:41:39
너무 따스하고 고운 스미레님 글. 오늘은 아이를 더 마니 예뻐해줘야겠어요.

서귀포 2018-07-18 22:30:07
아이들은 유아기때 힘들지만 너무 예쁜 천사지요.
어느 순간 금방 자라버려 아기였을 때가 그립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