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서 내려다 본 그는
도서관에서 내려다 본 그는
  • 관리자
  • 승인 2006.04.05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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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정 (수필가 · 본지 칼럼리스트)

도서관에서 내려다 본 그는 ----------------


그의 걸음은 언제나 똑같았다.
매번 이상하리만큼 길게 늘어지게 걷는 '팔자걸음' 그는 늘 그랬었다.

옆에서 보는 이들은 그런 그가 너무도 우스워
"벌써부터 걸음이 저러면 어쩌누? 젊은 사람이, 쯧쯧.."

늘 이와 같이 지나가는 사람들의 말을 듣고서도 그의 걸음걸이는 고쳐지기는커녕,
그런 질책에도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듯도 보였다.
그는 가수 중의 누구를 참 많이도 닮았었다.
예전의 동행, 남남, 그리고 내가 많이 좋아하는 '해후'라는 그 노래를 불렀던 가수 최성수,
그를 많이 닮았었지.

그러나 그 가수 최성수보다는 더 키도 크고, 약간은 검은 듯한 피부, 또 그런 그의 목소리는 혀가 짧은 듯한 목소리, 그래서 그런지 늘 말을 흐리게도 하는 것 같아 보였으니 아마도 그는 정확한 발음을 구사하기가 너무도 어려웠을 수도 있었을거야.

그와는 겨우 두 세 번 정도의 얘기를 나누어 본 것이 ...고작이었다.
그 건네보았다는 대화도 "여기 자리 있어요?"
그가 내게 이렇게 물어오면 나는 또, "네" 그게 다였다,
그것도 아주 이따금..

내가 그를 처음 보았을 때는 내 나이 22살 무렵, 언제나 학교 도서관에서 자주 부딪히곤..공부는 하나도 안 하면서 지나가는 사람구경을 즐기는 내가 그와 부딪히는 것은 다반사.
그도 어쩌면 나처럼 사람구경을 하는 것을 즐기면서 괜히 쓸데없이 도서관 자리만 매일같이 잡는 그런 사람이었을지도 모르겠네. 알 수가 없어..

그는 늘 사람들의 눈을 바로 쳐다보기를 꺼려하는 것도 같았다.
그런 그의 곁에는 별로 다른 친구도 없었기에.

그 사람에게 관심이 가는 것은 유독 나만이 그런 것은 아니었다.
나 외의 내 친구들도 어김없이 그가 나타나기라도 하면 이렇게 얘기하곤 했으니,
"야, 팔자걸음 왔어.."

그의 이름이었다. 그의 이름 '팔자걸음' . 그에게 이런 관심이 가는 것은 솔직히 그가 제법 잘생긴 얼굴이라서 그런 게 분명했다.
좋아하는 감정인 것은 아니나 약간의 호기심은 언제나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이니.
내 친구 중의 한 사람은 늘 그가 나타나면 이렇게 얘기하기도 "얘, 오늘은 팔자걸음 빨간 가디건을 입었어."

그가 무엇을 입고 오는지 그리고 오늘은 도서관 몇 층에서 자리를 잡았는지, 늘 궁금한 것이 습관이 되어버린 우리들. 내 친구들과 나.
참 이상하지? 아무 상관도 없는 그를 왜 궁금해 하는 거지?
그렇게 질문을 어쩌다 누가 던지기라도 하면 또 어떤 이는 이렇게 얘길 했다.
"그냥..."

그렇지, 정말로 그를 궁금해 한 것은 ..'그냥' 이었다.
그런 시선들을 그 역시 알고 있는 것도 같았지만 별로 신경을 쓰지 않더군.
하지만 은근히 그 시선들에 약간은 경직된 표정도 느껴지기도 했었다.
왜 그럴까? 부끄러워서 그런가보다.
그저 그렇게만 생각했었다. 그가 부끄러워하는 것이라고.

그러던 어느 날,
도서관 5층 바깥 휴게실에서 잠시 바람을 쐬고 있었던 그 날.
내 친구 중의 한 명이 또 이렇게 고함을 질렀었지.
"야, 팔자걸음이다."
그래 팔자걸음 ..그가 분명하기는 한데..그런데 무언가가 좀 이상해.
정말 이상하다. 뭐가 좀 다른 것도 같고. 그게 뭐지?

도서관에서 내려다 본 그 '팔자걸음' 그는 팔자걸음이 아니었다.
멀리 보이는 캠퍼스 외딴 곳, 그 캠퍼스..아무도 걷고있지 않은 그 곳에서의 그는 팔자걸음으로 걷는 게 아니었다.

그는 다리를 질질~~ 끌고 있었다
너무도 힘들다는 듯이. 어디 다치기라도 한 것일까? 아니다.
그는 다친것이 아니라, 아무도 보지 않는 그 곳에서는 마음놓고 다리를 ..질질 끌고 있는 것이었다.
그는 팔자걸음이 아니라 절름발이었던 것이다. 약간은 경미한 절름발이.

그래서 억지로 힘겹게 탁~ 탁~ 하며 걷는 모습이 꼭 팔자걸음처럼 보였던 것.
그 어느 누구도 그것을 아는 이는 없었을 것이다.
그는 걷는 내내, 또 다른 누군가가 그의 옆으로 비껴갈 때쯤엔 또 다시 팔자걸음으로 걷곤 했으니.

도서관에서 내려다 본 그, 그의 걸음걸이는
팔자걸음이 아니었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의 그,
그는,...
.
.
.
그 다음 날에도 그가 도서관에 나타났다.
그런 그를 우린(친구들과 나) 그저 예전처럼 "팔자걸음 나타났다" 는 말은 하질 않았다,
그 날 이후부터, 그 다음 날도..쭈욱.
<오래 전에.....>

독서신문 1394호 [2005.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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