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에게 카톡이란?… ‘고독한 쉼터’
현대인에게 카톡이란?… ‘고독한 쉼터’
  • 김승일 기자
  • 승인 2018.06.18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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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카카오톡 오픈채팅방 화면>

[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카카오톡의 오픈채팅방 서비스에서 ‘고독한’으로 시작하는 제목의 채팅방이 수만개에 달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고독한’으로 시작하는 이름은 예를 들어 ‘고독한 고양이’, ‘고독한 강아지’, ‘고독한 마동석’, ‘고독한 혁오’, ‘고독한 엑소’, ‘고독한 닥터후’ 등이다. 즉, ‘고독한’이라는 형용사 뒤에 관심사나 취향을 붙이는 식이다. 주로 동물이나 아이돌 가수, 배우 등 연예인과 드라마·영화 제목이 붙는다. 그 시작은 지난해 일본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의 오픈 채팅방인 ‘미식한 고독방’이다.

카카오톡 애플리케이션에서 제목만 검색하면 접근할 수 있는 오픈채팅방이어서 누구나 들어올 수 있다. 들어올 수 있는 인원은 100명에서 1,000명까지 다양하다. 간혹 ‘참여코드’를 치고 들어가야 하는 방이 있지만, 참여 코드조차 쉽다. 예를 들어 ‘고독한 아이유’ 채팅방은 가수 아이유의 생일을 입력하고 들어가면 된다. 대부분의 ‘고독한’ 오픈채팅방이 생일, 데뷔일, 첫 방송일 등 인터넷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참여코드’를 요구한다.

채팅방의 특징은 ▲참여자들이 대부분 익명으로 참가하고 ▲글보다는 대부분 사진과 동영상, 이모티콘(자신의 기분이나 생각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특별한 기호)만 올라오고 ▲채팅방 제목과 관련된 내용에 관해서만 소통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고독한’ 오픈채팅방에는 공지글에 ‘대화 절대 금지’, ‘이모티콘과 사진만 가능’, ‘짤방(사진이나 동영상) 가능’ 등의 공지를 띄워놓는다. 참여자들은 대부분 글을 쓰지 않고 사진과 이모티콘을 사용해 상호작용한다. 예를 들어 ‘고독한 시츄’ 오픈채팅방에는 200여명이 넘는 참여자가 자신과 함께 생활하는 시츄 견종의 사진을 올리고 이모티콘으로 그 사진에 대해 반응한다. 한 참가자가 자신의 시츄 강아지 사진이나 동영상을 올리면 다른 참가자들이 행복감을 표시하는 사진을 올린다.

일부 채팅방은 간단한 질문과 답변을 허용하는 곳도 있다. ‘고독한 슈나우저’ 채팅방에는 사진과 이모티콘이 주로 올라왔지만 지난 14일에는 한 참가자가 자신의 슈나우저 사진을 올리며 ‘광견병 주사 맞고 얼굴 부은 적 있는 슈나우저 있나요? 아까보다는 가라앉았는데 얼굴이 빨갛게 부었어요’라는 글이 올라왔고 100여명의 참가자들은 ‘광견병 주사가 독해서 부작용이 생긴 것’, ‘광견병 주사 맞고 이틀 정도는 지켜보고 부작용이 생기면 통원치료를 하라’는 등의 조언을 했다. 이 외에도 한 가수와 관련된 ‘고독한’ 오픈채팅방에서는 해당 가수가 출연하는 예능 프로그램 일정에 대한 대화가 이어졌다. 그러나 대부분 짤막한 대화가 이어지고 끝이 난다. ‘고독한’ 오픈채팅방에서는 다시 사진과 동영상, 이모티콘이 이어진다. ‘고독한’ 오픈채팅방의 반대인 자유자재로 대화가 가능한 ‘안 고독한’ 오픈채팅방이 출현했으나 ‘고독한’ 오픈채팅방에 비교하면 소수다.

한 ‘고독한’ 오픈채팅방 참가자는 “타인과 관계 맺어야 하기 때문에 단체 카톡방에 있는 것 자체로 스트레스일 때가 있지만 ‘고독한’ 채팅방에서는 타인과 관계 맺을 필요가 없다”며 “사람이 몇백명 되는 단체 카톡방에서 사진과 이모티콘으로만 상호작용하며, 그저 자신이 좋아하는 사진이나 동영상이 올라오면 즐거워하면 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행위는 마냥 즐겁기 때문에 ‘고독한’ 단체카톡방을 매일 찾아다니는 편”이라고 덧붙였다.

이 외에도 많은 참여자는 비슷한 대답을 했다. ‘고독한’ 오픈채팅방이 유행하는 이유가 대동소이하다는 것이다. 지난해 출간된 김난도 서울대 교수의 『트렌드 코리아 2018』은 ‘제3의 공간으로서의 케렌시아’에 대해 설명했다.

‘케렌시아’란 투우장의 소가 마지막 일전을 앞두고 홀로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는 자신만의 공간을 의미한다. ‘제3의 공간’이란 미국의 사회학자 레이 올덴버그가 1989년에 펴낸 책 『참 멋진 공간』에서 제시한 개념으로 제1의 공간인 가정과 제2의 공간인 가정에서 쌓인 근심을 잠시 잊을 수 있는 곳이다. 김난도 교수는 책에서 “‘제3의 공간’은 격식과 서열이 없고, 소박하며, 수다가 가능하고 출입의 자유가 있으며 제3의 공간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행복감을 향유할 가능성이 높다”며 “우리 삶의 주요 무대인 제1의 공간인 가정과 제2의 공간인 직장에서 충족하지 못하는 행복의 감정을 제3의 공간을 통해 얻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인의 대표적인 ‘제3의 공간으로서의 케렌시아’는 카페다. 김 교수는 책에서 “개인적인 시간이 편안하지만 나 혼자라는 외로움의 결핍도 채우고 싶기 때문에 카페와 같은 공간을 찾는 것”이라며 “고독은 수용하지만 고립은 되고 싶지 않은 현대인의 안식처로서 카페 공간이 자리 잡고 있다”고 말했다.

‘고독한’ 오픈채팅방 역시 ‘제3의 공간으로서의 케렌시아’라는 말에 들어맞는다. 격식이 없고, 소박하게 소통하며, 언제든지 나가고 들어올 수 있다. 또한, 수백명의 참가자들 사이에서 혼자라는 외로움이 없다. 취향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행복은 배가 된다. 회사와 가정, 혹은 군중 속에서 고립감을 느끼고 있다면 카카오톡 오픈채팅방 서비스에서 ‘고독한’을 검색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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