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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김혜식의 인생무대] ‘가면’의 끝
김혜식 <수필가/전 청주드림작은도서관장>

[독서신문] 아침마다 꼭 기다려지는 게 있다. 모 텔레비전에서 방영하는 일일 드라마가 그것이다. 얼마 전만 해도 텔레비전 드라마가 불륜, 아니면 복수 등의 내용이 일색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인간의 그릇된 욕망으로 점철된 스토리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덕분에 드라마에서 인간의 민낯과 본성을 마주하기도 한다. 매일이다시피 아침마다 무려 40여 분동안 텔레비전 앞에 나를 묶어놓는 이 드라마는 어림잡아 50여 년 전 시대적 배경을 내용으로 펼치고 있다. 원래 드라마 특성상 첫 회분부터 지켜봐야 정확히 내용의 전개를 꿰뚫을 수 있다. 아쉽게도 나는 앞 회분을 수차례 지나치고 나서야 이 드라마에 몰입할 수 있었다. 

이 드라마에 푹 빠진 이유는 이렇다. 여덟 살 어린 나이에 할머니랑 살고 있는 자신의 불우한 처지를 벗어나기 위하여 서울로 상경, 어느 제화 공장 사장 차에 고의로 치인 척 하며 그 집 수양딸로 입성하는 극중 인물 한홍주의 영악함에 경악해서이다.

본인은 외할머니 손에서 자라며 가난을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이었다고 훗날 말한다. 하지만 심지어는 양부모한테까지 어린 시절 기억을 잃었다고 거짓말 하는 그녀의 수법엔 혀를 내두르게 된다. 매회 마다 벌이는 한홍주의  간교함과 치밀한 권모술수엔 소름마저 돋을 정도다. 또한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교활함에서 인간의 사악한 본성을 새삼 엿보기도 한다.

한홍주는 할머니가 주워서 키운 극중 인물 고달순이 자신의 양부모 제화(製靴) 공장에서 일을 하게 되자 정작 고달순이 자신의 양부모 친딸 인 것을 알아챈다. 자신의 입지가 불안해진 한홍주는 그녀를 몰아내기 위해 모함과 음해를 서슴지 않고 있다.

이런 한홍주가 과연 어떤 결말을 맞게 될지 이 드라마의 결미가 궁금하다. 한 때는 한홍주처럼 처세에 능하여 거짓과 위선으로 남의 눈을 가리는 자가 출세도 하고 부와 명성도 얻었다. 어느 경우엔 이렇게까지 하여서라도 목적을 이루는 그릇됨을 이 또한 능력이라고 인식하기도 했었다.

즉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라는 의식이 알게 모르게 사회전반에 팽배 했던 게 사실이다. 이 드라마 극중의 한홍주 언행이 그 표본이라면 지나칠까. 그녀는 어린 날 기억을 잃었다고 주위 사람들을 14년 간 속이며 자신이 부잣집 딸로 자리매김하는데 목적을 이루었잖은가.

그동안 숱한 위정자들이 우리의 눈을 기만하고 자신들의 뱃속을 채우기 위해 급급해 했지만 세상은 달라졌다. 이런 심보를 쓰는 사람은 사회로부터 도태 되고 마음자락을 사람답게 행하는 사람이 신뢰받고 존경받는 세태로 바뀌고 있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대명천지에 갑질을 행하고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타인을 해코지 하는 자들이 사회 곳곳에 독버섯처럼 아직도 건재하고 있어 입맛이 씁쓸하다.

이런 자들의 실체를 들추어보면 항상 물질과 연관되어 있다. 타인에게 처세도 능수능란하다. 즉 가면을 잘 준비하는 특색이 있다. 내가 아는 어느 지인은 잘 다니던 회사에서 갑자기 실직을 당하였다. 팀장이라는 여자의 간교한 모함에 의해서란다.

팀장은 사장으로부터 두터운 신임을 독차지 하고 있다고 한다. 그는 사장의 신뢰를 이용하여 자신의 아는 사람으로부터 얼마간의 금품을 받고 그의 취업을 주선해 왔단다. 지인이 일하던 부서에 그 사람을 채용할 목적으로 교묘한 술책을 꾸며 평소 지인을 괴롭히기까지 했단다. 급기야는 온갖 모함으로 사장 눈밖에 까지 나게 만들어 지인의 일자리를 잃게 하였다. 수 십 년을 함께 일한 부하 직원을 돈 몇 푼에 눈멀어 내쫓은 인면수심에 비록 남의 일이지만 주먹이 불끈 쥐어진다.

이렇듯 자신의 헛된 욕심을 채우기 위한 팀장의 교활함은 필설로 이루 형언할 수 없을만큼 추악하고 치졸하다. 이런 자들은 선량한 사람을 궁지로 몰아넣고 나아가서는 타인의 삶을 파괴하기도 한다. 실직 당한 지인은 청춘에 남편을 잃고 병든 노모를 모시며 힘겹게 삶을 사는 여인이다. 이로보아 어느 한 사람이 지닌 페티시즘(feticism)이야말로 사회를 어둡게 만드는 음습한 그늘이 아니고 무엇이랴.

이에 삶의 수단인 돈을 목적으로 삼는 가치전도(價値轉倒)는 인간관계를 와해시키는 것은 물론이려니와 모든 악의 병소(病巢)임을 이 일을 지켜보며 다시금 깨닫는 순간이다.

엄정권 기자  tastoda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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