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저자] 소설 『흥남부두』 낸 최순조 "흥남부두 철수 뼈아픈 교훈 잊지는 않았나요”
[이 저자] 소설 『흥남부두』 낸 최순조 "흥남부두 철수 뼈아픈 교훈 잊지는 않았나요”
  • 엄정권 기자
  • 승인 2017.11.02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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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그는 해군 부사관 출신이다. 그의 후배 이름 하나가 전쟁기념관 동판에 새겨져 있다. 1970년대 후반 대간첩작전 중 전사했다. 자신도 죽을 고비를 넘겼다. 그런데, 후배 이름 바로 아래 있는 이름이 윤영하다.

윤영하는 2002년 그 유명한 연평해전 당시 전사한 장교다. 숨진 날짜 순서대로 이름이 들어가는데, 그렇다면 1970년대 후반부터 2002년까지 30년 가까이 전사한 군인이 없다는 얘기다. 부상자는 이름이 안 들어간다지만, 대간첩작전 자체가 거의 없었다는 건가. 태평천하였던가.

최순조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뭔가 치밀어 올랐다. 그래서 『연평해전』을 썼다. 자신이 군 생활 마지막을 보낸 곳이 바로 연평도다.

최순조는 미국인 남편을 둔 한국 여자를 알고 있다. 그 여자 아버지가 과거 켈로부대원이었다는 말을 들었다. 켈로부대는 대북작전을 하던 특수부대다. 요인 암살 등이 목적이기에 군번도 없었다.

애국심 하나로 헌신했지만 보상은커녕 평가도 받지 못한다. 부대 존재 자체를 인정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그 켈로부대원의 아픔이 최순조를 다시 아프게 했다. 그 아픔은 6.25로 거슬러 올라가며 피난민의 고통으로 이어지고 고통은 가슴으로 스미면서 작품을 구상한다. 그래서 내놓은 게 바로 다큐 같은 장편소설 『흥남부두』다.

저자 최순조

“겨울 새벽의 꽁꽁 얼어붙은 차디찬 공기는 콧속으로 들어서면서부터 뼈마디마다 냉기가 스며들 만큼 매서웠다. 흥남부두의 하늘은 침침하게 깨어나고 멀고 가까운 산들이 여명 속에서 여러 다른 농로로 시커먼 윤곽을 드러냈다. 눈을 뜬 피난민들은 손끝과 발끝이 완전히 얼어 몸에서 떨어져 나간 듯 아렸다. (…) 입술이 새파랗거나, 피부가 푸르죽죽하게 변색되거나, 혹은 뼈마디가 지르르하거나 하나같이 병색이 짙은 몰골들이었다” <359쪽> 최순조가 그린 흥남부두 풍경이다. 아니, 전쟁이 빚어낸 참상의 흥남부두 삽화다.

피난민들은 머리 위로 날아다니는 포탄 소리에 이미 적응이 됐다. 중공군이 코앞까지 다가왔음을 암시하듯 비행기가 포격하는 지점은 부두에서 먼발치로 보일 만큼 가까웠다. 하지만 새벽에 들어온다던 메러디스 빅토리 호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소설 『흥남부두』는 클라이맥스에 올랐다. 우리는 메러디스 빅토리 호를 주목해야 한다. 잊으면 안될 이름이다. 흥남부두 철수 작전은 이미 시작돼 많은 장병과 피난민들이 남쪽으로 떠났지만 그래도 꾸역꾸역 모여들어 남은 사람은 몇 만명이었지만 남은 배는 단 한 척. 그 배가 메러디스 빅토리호다.

이 배를 최순조가 요약해 설명했다. 1945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건조된 수송선으로 길이 138.7미터에 7,600톤이며 승무원 정원은 60명. 이 배에 탄 피난민이 얼마였나. 영화 ‘국제시장’을 본 사람들은 그 아비규환을 기억할 것이다.
 
“누군가가 “중공군이 온다”라고 소리를 지르자 너나 할 것 없이 사지를 버둥대며 이성을 잃은 것처럼 메러디스 빅토리아 호의 현문가교를 향해 몰려들었다. 헌병들이 호루라기를 불어대며 질서를 지키라고 소리쳤지만 소용없었다. (…)
피난민들이 한꺼번에 맹렬하게 몰아닥치자 현문가교 하나가 주저앉으면서 수십여명의 피난민들이 풍덩풍덩하는 소리를 내면서 바다로 떨어졌다. 헌병이 질서를 지키라며 허공을 향해 쏘아대는 총소리와 피난민들 자지러지는 비명 소리가 낭자하게 하늘과 부두를 흔들었다”<400쪽>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 찬 흥남부두’는 지옥이었다.

6.25당시 피난민들로 북새통을 이룬 흥남부두 <사진=연합뉴스>

최순조는 흥남부두 철수가 이렇다, 라고 말하기보다는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에 주목하자고 한다. 대뜸 정치 얘기로 번지면서 정치하는 사람들이 위정을 하면 안돼요, 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때, 6·25때도 크리스마스 전에 전쟁 끝나고 통일된다고 했어요. 사람들의 마음에 꿈을 실어주면서 전쟁이 일어났죠. 정치적 발언 대신 대안을 먼저 만들어야 합니다” 하면서 ‘남한산성’에 나오는 선조가 왜 도망갔냐고 기자에게 묻는다. “살려고 갔겠죠”라는 영혼 없는 대답이 용케 최순조가 요구한 정답이었다. 선조 도망갔네, 가 아니라 왜 그런 상황이 만들어졌나 하는 데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이어지는 설명은 근대 동계 전투역사상 두 번 째 유명한 장진호 전투다. 첫 번째로 유명한 전투는 레닌그라드 전투라고 말했다. 장진호는 개마고원에 있는 몹시 추운 곳이다.

중공군에 포위된 미군은 윤활유가 얼어붙어 트럭을 움직일 수 없어 고립무원에 처한다. 기록적인 추위에 얼어 죽는 병사가 속출했다. 그런 상황에서도 철수하면서 주변 피난민들을 이끌고 나온다. 그 피난민 숫자가 5천명 가까이 된다.

그 오지 속 작은 마을 등에서 나온 5천명이니, 참으로 많은 숫자다. 그들이 모두 흥남부두로 몰려 든 것이다. 장진호 전투는 그런 점에서 빛나는 인간애를 연출했다. 최순조는 지금 장진호 전투를 소설로 엮고 있다. 곧 탈고된다. 장진호 전투 관련 소설은 아마 국내 처음일 것이다. 장진호 전투는 흥남부두 철수 작전이라는 동전의 앞면이다.

“피난민들의 비명이 얼어 터져 나가던 겨울밤은 물러났지만 살점을 도려내는 듯 아리도록 몰아치는 칼바람은 여전히 눈보라와 어울려 윙윙거렸다. 부두에는 아직 승선하지 못한 피난민들로 북새통을 이루었고, 메러디스 빅토리 호 주변의 바다에는 밤새 몰려든 게딱지같은 전마선들이 다닥다닥 붙어 물결에 출렁거렸다.

피난민들과 피난 짐이 칡넝쿨처럼 얼키설키한 전마선은 무게 중심이 맞지 않아 연파에도 쉬이 뒤뚱거렸다. 끼우뚱끼우뚱하다가 꼭대기에 얹힌 피난 짐 덩어리가 바다로 떨어지는가 하면 전마선끼리 서로 부딪히다가 부서져 가라앉은 전마선도 있었다”<412쪽>

최순조에게 『흥남부두』 소설이 어디까지 허구인가 물었다. “주인공 여필준은 가공 인물이고요, 여필준과 일제 때 하와이로 징용갔고 흥남부두 철수 때 함께했던 이봉남은 실존인물입니다. 작년에 돌아가셨습니다. 김용옥 대위도 유명한 분이죠. 2차세계대전 때 유럽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분입니다. 저와 공통점이 있다면 LA에서 세탁소를 했다는 겁니다. 돌아가셨죠, 벌써. 미군 장교 알몬드 군단장 등도 모두 실명입니다. 당시 주한미국대사 무초도 물론 실명이죠”

최순조가 쓰는 소설은 한가지 맥이 관통하고 있다. 전쟁, 전투, 피난, 압제 등의 키워드로 대변할 수 있는, 민초라는 이름으로 스러져간 우리 바로 앞 세대의 고통이다. 그러면서 자신이 쓴 소설 중 개인적으로 가장 아끼는 작품 『미명』 얘기를 들려준다.

“일본 속담에 거짓말 백번하면 진실이 된다는 말이 있어요. 그래서 아베가 그렇게 줄기차게 거짓말하는 겁니다. 전쟁 위안부에 책임이 없다는 말이요. 『미명』은 광복 70년 겨냥해 쓴 겁니다” 최순조는 한국 여자를 성폭행했던 현장, 조선 청년들을 포로로 해서 학대했던 현장을 찾았다. 조선인 청년 중 학대받다 한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눌러 앉아 만든 인도네시아 한인회도 여러 번 찾았다.

“병자호란 때 청나라로 끌려간 조선 처녀가 20만명입니다. 일부만 돌아왔죠. 위안부로 끌려간 처녀가 25만명입니다. 동아시아에 위안소가 135개였습니다. 이런 현장이 뻔히 있지만 일본은 거짓말로 일관합니다” 그러면서 당시 일본왕 히로히토 이름이 미치노미야 히로히토라고 알려준다. 미치노미야, 어감이 참으로 절묘하다.

정원 60명 배에 1만 4천명의 피난민들로 가득찬 메러디스 빅토리 호 <사진=월드피스 자유연합>

“흥남부두에는 바람찬 눈보라가 불어치고 메러디스 빅토리 호는 말갈기처럼 휘몰아치는 눈보라를 헤치며 서서히 동쪽 바다를 향해 나아갔다 (…) 선장 라루는 선내방송 마이크를 들었다. “본 수송선은 1950년 12월 24일 오전 11시 30분 현 시각, 흥남에서 피난민 1만4,000명을 싣고 무사히 출항하여 동경 127도37분, 북위 39도 57분을 지나고 있다.

선원 여러분들의 책임감과 헌신적인 봉사와 피난민들을 보살피고자 하는 사랑의 손길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사실을 하나님께서도 아실 것이다. (…) 노약자, 환자, 어린아이, 임산부 등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사람들을 잘 돌봐주기를 바란다. 메러디스 빅토리 호 선원 여러분, 모두 수고 많았다. 메리 크리스마스” <427쪽>

메러디스 빅토리 호는 12월 24일 부산항에 도착했지만 부산항은 이미 피난민으로 가득찼다는 이유로 입항이 거절됐다.
같은 날 미군은 흥남부두에 내려놓은 무기를 중공군이 차지할 수 없게 흥남부두를 폭파시켰다. 선장은 할 수 없이 50마일을 더 항해해 크리스마스인 25일 거제도 장승포항에 피난민을 내려놓았다. 항해 도중 아기 5명이 태어났다. 이 때 거제도에 내린 피난민 중에 문재인 한국 대통령의 부모도 있었다.   / 엄정권·이정윤 기자, 사진= 이태구 기자

『흥남부두』       
최순조 지음 | 제8요일 펴냄 | 432쪽 | 13,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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