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책과 사람 인터뷰
오진경 북디자이너 “세상을 알아야 디자인이 보인다”
강연 중인 오진경 소장

[독서신문] “제가 잘 팔리는 디자인 전문이에요. 베스트셀러 작품 많이 만들어봤어요. 디자인이 특별해서는 아니에요. 비결이라 한다면, 저는 신문과 잡지를 끼고 살아요. 세상 돌아가는 것에 관심이 많아서 시대정신까지는 아니더라도 큰 흐름을 읽으려 하죠. ‘김생민의 영수증’에 열광하는 것만 봐도 지금 ‘허세의 시대’는 끝났어요. 세상에 관심이 많으면 아무래도 책을 디자인할 때 판단이 잘 서요”

지금까지 디자인 한 책만 해도 1000권이 넘는다. 정유정 작가의 『7년의 밤』과 『종의 기원』을 비롯해 박완서 작가 소설전집, 황석영 작가 소설전집, 오쿠다 히데오의 『남쪽으로 튀어』와 『공중그네』,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등 그가 작업한 양은 상당하다. 

그는 파주타이포그라피학교(PaTI)에서 출판디자인연구소장을 맡고 있는 북디자이너 오진경 씨다. 광고회사에 다니다 우연히 출판사에서 디자이너를 구한다기에 포트폴리오를 들고 갔다가 문학동네에서 출판디자인 일을 시작하게 됐다. 사람들이 ‘왜 내 디자인을 못 알아볼까’, ‘내 디자인이 더 좋은 것 같은데’와 같은 생각과 열정으로 임하다 보니 어느새 국내 북디자이너 중 정상에 오르게 됐다. 지금은 홍대의 작업실에서 프리랜서로 일을 한다. 그를 거쳐 간 북디자인 아르바이트생만 해도 십 몇 명에 이른다. 2대 아르바이트생은 현재 민음사에서 북디자인을 맡고 있다. 

오진경 소장도 책의 아우라를 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출판디자인의 매력은 디자이너가 책과 같이 성장할 수 있다는 거에요. 시간이 흐를수록 깊이가 더해지는 분야에요. 저는 지금도 끊임없이 연구하고 발전하고 있어요” 

오진경 소장이 작업한 박완서 소설전집

일주일의 대부분을 파주의 학교에서 지내다 보니 작업 시간이 줄어들었지만, 이제는 몰라서 낭비하던 시간을 줄여 최대한 효율적으로 작업을 한다. 그런 그의 노하우를 듣기 위해 많은 이들이 지난 9월 23일 홍대 와우북페스티벌의 강연장을 찾았다. 이날 오진경 소장은 ‘북디자인의 세 번째 법칙-거리와 온도, 위치와 목소리’를 주제로 2시간에 걸쳐 열띤 강의를 펼쳤다. 

북디자인의 첫 번째, 두 번째 법칙은 모르지만 세 번째 법칙을 꼽아보자면 ‘거리, 온도, 위치, 목소리’ 네 가지의 균형을 잘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널리 유통될 책이라면 보통 디자이너에게 맡겨요. 그러면 디자이너가 자신의 느낌대로 작업을 하게 되는데, 이때 네 가지를 따져봐야 해요. 원고를 시각적으로 드러내서 독자들에게 옹알이처럼 말을 걸어야 하니까요. 제목이라는 큰 메시지가 있기는 하지만 표현의 정도는 전적으로 디자이너의 몫입니다” 

오 소장은 ‘거리와 온도’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먼저, 어느 정도 거리에서 말을 건넬지 결정해요. 카페 테이블에서 좁고 불편하게 앉을 때와, 식당의 큰 테이블에 앉을 때 서로 간의 거리가 다르잖아요. 그래서 거리는 ‘크기’로 드러나요. 제목, 저자명, 이미지를 얼마나 크게 쓰느냐. 크게 쓰면 독자들한테 가까이 다가가고 그 책은 ‘뜨겁게’ 인식되는 겁니다” 

‘위치와 목소리’는 어떤 걸 의미할까. “책은 수직의 힘과 수평의 힘이 만나서 만들어져요. 목소리는 ‘책의 형태’를 뜻하는데요. 길쭉한 책은 세로의 힘이 강하고, 넙데데한 책은 가로의 힘이 강하다고 보면 됩니다. 이 목소리보다 중요한 게 위치인데요. 책의 완성을 위해서는 제목이나 이미지의 위치를 사각형 내 어디에 배치시킬 지 신중해야 해요” 그러면서 오 소장은 북디자인에서 타이포그라피, 크게는 조형이 90%를 차지한다고 덧붙였다.

책에서 편집과 북디자인의 존재는 너무나 크다. 작가의 원고 그 자체에서 출발하는 이들은 이 원고를 독자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긴 시간을 투자한다. 저자의 원고를 ‘텍스트’라 하면 책이 되기 위한 나머지 모든 것을 ‘파라텍스트’라 한다. 책은 텍스트와 파라텍스트의 결합이다. 여기서 파라텍스트는 편집인, 북디자이너 등 출판인들이 만들어 내는 것이고 이 파라텍스트는 텍스트의 맥락을 결정짓기도 한다. 오 소장의 강연 일부와 강연이 끝난 뒤 인터뷰한 내용을 옮긴다. 

- 북디자인의 범위는 어디부터 어디까지인가요

“책의 크기를 정하는 일부터 인쇄와 제본이 끝나는 것까지 책임지는 사람입니다. 원고를 읽고, 디자인 구상을 하고, 편집자와 대화를 나눈 뒤, 디자인하고, 제안하고, 조정하고, 그다음 제작에 들어갑니다. 전반적으로 책을 설계한다고 보면 돼요” 

- 편집자들과 회의를 자주 하시겠어요

“그렇죠. 필요할 때마다 대화하니까요. 주로 설득하는 과정에서는 디자인의 언어를 쓰지 않아요. 독자의 언어를 쓰죠. 불특정 다수가 봐야 하기 때문에 지극히 상식적인 이유를 들어가며 제가 구상한 디자인을 설명합니다. 작업 중 1% 정도만 제 생각보다 쉽게 가는 것 같아요” 

- 서체마다 느낌도 다를 텐데요 

“서체는 책의 내용이 담고 있는 세계를 반영해야 해요. 바탕체에도 종류가 많아요. 윤명조는 자음이 커서 ‘머리가 큰 아이’ 같죠. 대체로 어린 느낌이라 에세이나 실용서에 사용해요. 문학에는 어울리지 않아요. 디자이너가 느끼고 판단해서 작업하는 미세한 세계입니다. 잘 맞지 않은 서체를 사용했을 때는 이질감이 들어요” 

- 작업 과정 중에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뭔가요

“면지 고르는 시간이 가장 즐거워요. 보통 본문 디자인-표지-도입부 디자인(타이틀 페이지)-면지 순으로 작업하는데요. 면지를 고를 때면 마지막 ‘화룡점정’을 찍는다는 느낌이 있어요. 면지 색은 디자이너의 취향을 타는데, 주로 동계색(한 가지 색이지만 농·담, 명·암에 따라 변화를 나타내는 색)이 좋아요. 면지 다음으로는 타이틀 페이지가 편해요. 모든 부담감을 떨쳐내고 책의 고유한 성질을 담아내면 되거든요. 오히려 표지의 세계는 화려해요. ‘저도 봐주세요’라고 어필도 하면서 책의 내용도 담아내야 하거든요. 역할이 막중해요” 

오진경 소장과 파주타이포그라피학교 학생들이 사계절출판사와 작업한 욜로욜로 시리즈

- 북디자이너 초창기 시절, 어떤 시행착오를 겪으셨나요

“1998년 출판사에서 디자인 일을 시작할 당시에는 책 디자인이 엄숙했어요. 지식인이 읽어야 할 것만 같았죠. 발랄한 책을 만들고 싶은데 기회가 오지 않았어요. 그래도 젊은 작가들의 소설집은 판매 중요도가 조금 낮아서 회사가 디자인에 관여하는 압력도 낮았죠. ‘지금이 기회다’라는 생각에 하고 싶은 대로 디자인했어요. 명조가 아닌 글씨도 써 보고요. 그때 매체에서도 많이 주목했어요. 일러스트 비용이 따로 잡혀 있지 않아서 캐릭터의 머리카락을 0.15pt로 한 올 한 올 그려본 기억도 있고, 호치키스를 찍어서 제목을 만든 적도 있어요” 

- 요즘은 책의 판형도 다양해졌어요

“저는 대량생산을 위한 책을 만들기 때문에 버리는 종이가 없게끔 설계해야 해요. 그러면서도 아름답고 감각적이어야 하죠. 제한된 조건 속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게 ‘디자인’인 것 같아요. 무한히 열린 조건에서 하는 건 아니거든요. 중요한 게 무엇인지 순서를 정해가면서 작업하는 것, 그것이 디자인의 핵심이에요”

- 다른 책 디자인도 많이 참고하시겠죠

“네. 다른 책들의 영향 받습니다. 힘이 남아돌 땐 새로운 시도도 해 보고요. 디자인이 다양해지려면 첫째, 몸이 피곤하지 않아야 해요. 피곤하면 미세한 차이가 별 상관없어 보이거든요. 미적인 판단은 신체와 관련됩니다. 고단하고 우울할 땐 디자인이 잘 안 됩니다” 

- 미래의 북디자이너에게 한 말씀

“북디자이너는 아주 좋은 직업 같아요. 재작년에 대만의 황용슝 선생님이 파주북포럼에서 ‘책은 좋은 것이다. 그래서 나는 44년간 해 왔다’고 하셨거든요. 뤼징런 선생님은 ‘디자이너들이 작업하는 시간은 고통스럽고 고단하지만, 세상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다’라고 하셨어요. 저도 미래의 북디자이너들에게 그런 얘기 전해주고 싶어요. 여러분이 꿈꾸는 직업은 꽤 좋은 직업이라고요” / 이정윤 기자, 사진=와우북페스티벌·사계절출판사 제공

이정윤 기자  jylee9395@readersnews.com

<저작권자 © 독서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정윤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인터뷰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