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에 문학관-이육사문학관] ‘강철로 된 무지개’로 다시 피어나다
[추석 연휴에 문학관-이육사문학관] ‘강철로 된 무지개’로 다시 피어나다
  • 정연심 기자
  • 승인 2017.10.04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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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3년 북경 가기 전 친구들에게 나눠준 이육사의 마지막 사진

[독서신문] ‘까마득한 날에 / 하늘이 처음 열리고 / 어디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 차마 이곳을 범하던 못하였으리라 // (…) / 다시 천고의 뒤에 /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 「광야」, 이육사 -

이육사(1904~1944)는 교과서와 수능에 자주 등장하는 민족 저항시인이다. 경북 안동에서 이퇴계의 14대손으로 태어났다. 본명은 원록(源綠), 별명은 원삼(源三), 후에 활(活)로 개명했다. 육사(陸史)라는 아호는 그가 스물네 살 되던 1927년, 처음 감옥에 갇혔을 때 죄수번호 264번을 소리 나는 대로 적은 것이라고 알려졌다.

이육사는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엄혹했던 일제 강점기에 독립투쟁을 하고 시를 쓰며 한 몸을 불사른 인물이다. ‘강철로 된 무지개’같이 빛나는 정신으로 무장한 채 40년의 짧은 생애를 조국과 민족을 위해 바쳤으며, 올곧은 독립정신을 이 땅 위에 심었다. 독립운동을 하면서 이육사가 겪은 17번의 체포와 감금, 투옥 생활 등은 겨레의 미래를 위한 그의 굳은 의지이자 사랑의 실천이었다.

「광야」, 「절정」, 「청포도」 등 고결하고 맑은 서정시는 한국현대 시 문학사에 높은 봉우리를 이룬 이육사의 성과로 꼽힌다.

이육사문학관은 일제강점기에 조국의 독립을 위해 일제에 저항한 이육사 선생의 뜻을 기리기 위해 마련한 공간이다. 이육사 탄생 100주년인 2004년, 그의 고향인 경북 안동시 도산면 원천리에 건립됐다. 이육사의 문학과 일생을 통해 민족의 슬픔과 조국 광복의 염원을 문학으로 승화시킨 항일 민족시인의 삶을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또 그의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과 문학 혼을 되짚어보는 교유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문학관 내 전시실은 1, 2층으로 구성됐고, 야외에는 이육사의 생가 ‘육우당(六友堂)’을 복원했다. 전시실에는 이육사의 어린 시절부터 베이징 감옥에서 순국할 때까지의 독립운동 활동과 관련된 전시물이 진열되어 있다. 또 문학인 이육사가 남긴 「청포도」, 「절정」, 「광야」와 같은 시가 수록된 문학동인지도 볼 수 있다.

이육사문학관은 지난 2014년 육사 탄신 110주년 기념사업으로 이육사의 시작품 영어, 중국어판을 간행함과 동시에 육사시 전편을 그림화한 시화집 등을 펴냈다. 또 매년 9월 중국 연변대학에서 이육사문학제를 개최하고 있다.

 

- 가는 길

주소 : 경북 안동시 도산면 백운로 525 이육사문학관

 

- 주변 관광지

▲도산서원 : 문학관에서 4km(자동차로 5분 소요). 퇴계 이황이 세상을 떠난 후 그의 제자들이 세웠다. 퇴계가 생전에 성리학을 깊이 연구하며 제자들을 가르쳤던 도산서당과 퇴계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는 도산서원 영역으로 구성됐다.

▲퇴계종택 : 이육사문학관에서 3km(자동차로 3분 소요). 조선시대 중기의 대학자 퇴계(退溪) 이황(李滉:1501∼1570)의 종택. 1982년 경북기념물 제42호로 지정됐다. 원래의 가옥은 없어졌으며, 퇴계의 13대 후손인 하정공(霞汀公) 이충호가 1926~1929년에 새로 지은 것이다.

▲고산정 : 조선 중기 퇴계의 제자 성성재(惺惺齋) 금난수(琴蘭秀, 1530년~1604년)가 세웠다. 평소 그를 아낀 이황은 이 정자를 자주 찾아와 빼어난 경치를 즐겼다.

▲청량산, 청량사 : 문학관에서 18km(자동차로 15~25분 소요). 663년(신라 문무왕 3년) 원효대사가 창건했으며, 청량산 도립공원 내 연화봉 기슭 열두 암봉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다. / 정연심 기자, 자료=이육사문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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