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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 인간의 길을 묻다』 낸 이우재, 대동(大同)의 마음으로 세상에 저항했고 도(道)를 물으며 저항의 연장선에 있다

『공자, 인간의 길을 묻다』       
이우재 지음 │ 지식노마드 펴냄 │ 430쪽 │ 20,000원

[리더스뉴스/독서신문 엄정권 기자] 수상한 바람이 불면 사람들은 풀잎보다 먼저 눕고 꽃보다 먼저 움츠러든다. 세월이 격랑을 일으키면 사람들은 이름을 감추고 동굴을 찾아 숨으려 한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수상한 바람이 불 때 불씨 하나 살리려고 손을 모으고 발을 구른다. 의지가 강한 것일까. 어떤 사람들은 격랑 속에서 저항의 닻을 깊이 내리고 부유물이 되기를 거부한다. 신념이 강해서일까.

멀리 갈 것도 없는 1970~80년대, 독재체제 속 현실은 엄혹했고 지금도 생생한 증언이 넘치는 살아있는 과거다. 역사의 한 페이지로 넘기기엔 아직 투쟁의 흔적이 너무 적나라하다. 의지 굳고 신념 강한 사람들은 그 세월이 그냥 두지 않았다. 기어코 깊은 상처를 주었다. 그래서 이들은 모두가 예외 없이 고생했다.

인천이 낳은 천재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명석한 이우재. 고시 공부를 '때려친' 것을 한 번도 후회하지 않고 다시 기회가 와도 운동권 길을 선택하겠다고 말했다.

고생한 사람과 마주 앉으니 왠지 어깨가 절로 좁아진다. 위로의 말도 가당찮아 그냥 형형한 눈만 바라보고 고개를 주억거리는 것으로 그의 과거에 몰래 ‘동참’했다. 고생한 그를 인천에서 만났다. 이우재.

1957년 인천에서 태어나 제물포고등학교를 마치고 서울대 동양사학과를 졸업했다. 대학 때 민주화운동에 투신, 1978년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1980년 계엄포고령 위반으로, 1988년 소요죄로 세 차례 옥고를 치렀다. 이런 과거를 지닌 이우재가 『공자, 인간의 길을 묻다』 책을 냈다. 이미 『이우재의 논어읽기』 『이우재의 맹자읽기』 등을 낸 바 있다.
 
왜 공자인가. 먼지가 켜켜이 쌓이고 바스러질 것 같은 누런 책 속에나 존재하고, 솔직히 고리타분한 느낌이라고 한들 뭐라 하기 그렇다. 지금 4차산업혁명 등으로 기술발달이 어지러운 세상에 공자는 뭐고 도는 또 뭔가.

이우재는 책머리에 어쩌다 세상이 이 지경이 되었을까? 라고 물으며 공자가 평생을 그토록 간절하게 인간의 길을 외쳤지만 2,50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의 삶은 인간의 길과는 동떨어져 있다고 말한다. 그렇게 동떨어져 있기에 역설적으로 우리는 다시 공자를 바라보게 된다고 부연했다.

뭉뚱그려 물었다. 공자가 말한 도는 무엇인가? 공자는 인간 세상의 주인은 바로 인간이라고 설파했다. 귀신을 멀리하고 인간을 섬겨라, 인간의 삶이 우선이라 말하며 귀신같은 초월적 존재는 배격하고 있다.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라고 말했고 고타마 싯타르타는 “자신을 등불로 삼고, 자신의 귀의처로 하라. 법을 등불로 삼고, 법을 귀의처로 하여 수행하라”고 했다.

이우재는 답한다. “공자, 소크라테스, 고타마 싯다르타 등 모두 비슷한 말을 했어요. 특히 싯다르타는 ‘하늘에 얘기하는 것보다 너의 삶이 더 중요하다’ 했거든요. 잘 살면 하늘에 빌지 않아도 된다는 거죠”

대체로 2500년 전 비슷한 시기에 세 사람이 비슷한 말을 했다는 게 필연인가. 도대체 BC 5~6세기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어떻게 한꺼번에 세 사람이나 나타나 인간 세상의 주인이 인간이라고 부르짖은 것일까. “이 모든 게 철기(鐵器)의 영향이죠. 당시 그리스 인도 중국이 모두 철기시대로 접어들었죠. 철기는 농업혁명을 불렀고 농업혁명은 초월적 존재에 의지하던 세계관을 인간 중심으로 옮겨 놓은 겁니다”

좀 더 설명하면 쟁기, 곡괭이, 삽, 톱은 모두 철기시대 산물로 이를 이용해 소 등 동물의 힘을 빌린 농사가 가능해졌고 이는 곧 생산량을 비약적으로 늘렸으며 씨족공동체 단위의 영농이 가족단위로 넘어오게 된다.

특히 철기 보편화는 저수지 등 대규모 치수도 가능케 했다. 이는 자연현상을 오로지 하늘에 의존하던 농사체계를 근본적으로 바꾸며 초월적 존재에 대한 세계관도 바꾸게 된 것이다.

철기시대를 이해하고 소크라테스와 고타마 싯다르타의 말도 되새김해야 하는 등 공자의 도로 가는 길이 만만찮다. 저자의 설명은 이어진다.  “이제 (공자 시절) 사람들은 일식이나 월식을 보고도 더 이상 놀라지 않게 됐어요. 자연의 법칙을 조금씩 깨닫기 시작했어요” 이 깨달음은 달리 말해 ‘인간세상의 문제는 인간의 문제’라는 자각이다.

즉, 인간이란 무엇이냐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고 탐구의 대상이 초월적 존재에서 인간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종교나 주술을 대신해 철학, 인문학이 인류 역사에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을 이해하면 공자에 조금 다가설 수 있다. 아니 인간성찰이라는 말에 조금은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 것 같다. 공자는 그래서 인간의 도리에 힘쓰라고 했다. 하늘엔 해와 달이 가는 길[天道]이 있고 인간도 마땅히 길[道]이 있다는 말이다.

아직 도는 규명되지 않았다. 영원히 이 도를 찾아가는 게 철학의 길이요, 공자 탐구의 실체일 것이다. 저자 이우재도 고개를 끄덕인다. 아직 도를 못 찾은 거죠 라는 기자의 다그치듯 무례한 질문에 대해 “찾아가는 중이에요. 인간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이 말로 공자의 도를 설명하고 싶어요”

인간의 도는 끝없이 찾아야 할 평생의 업이군요 라고 중얼거리면서 화제를 돌렸다. 이우재가 머리말에서 말한, 이상향으로 꿈꾸는 대동세상이 뭔가 궁금했다. 그는 세상이 왜 이 지경이 됐을까? 라고 책머리에서 말하면서 그 원인 상당부분을 세월호 참사에 할애했다.  “인간이 현실에서 힘들 때마다 꿈꾸는 세상입니다. 모든 사람이 서로 보듬어 안는 세상, 어울려 사는 삶을 말합니다. 공자 대동 개념도 바로 이 것입니다”

그러면서 지금이 공자시대보다 더 사정이 나쁘다고 진단한다. 있을수록, 가질수록, 차고 넘칠수록, 욕심은 또 다른 욕심을 부르고 남을 향한 배려는 점차 찾기 어려운 때라는 진단이다.
 
그렇다면 공자는 천하를 13년이나 주유했는데 과연 이상향을 찾았나, 대동의 세상을 보았나. “공자가 말한 세상은 구현되지 않았죠. 그렇지만 한 걸음씩 구현해 나아가는 거죠. 그게 인간의 발전, 세상의 발전, 역사의 발전 아닐까요”

이우재도 청년시절 대동을 꿈꾸었던 걸까. 그를 과거로 몰아넣었다. ‘투쟁 시절’ 얘기를 들려 달라 했다. 고교시절 3년 내내 1등을 놓치지 않고 수학천재라고 불리던 그는, ‘당연하게도’ 서울대 법대(사회계열)에 들어갔고 장차 판검사의 길을 걸을 것이라고 누구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서울대학교 사회계열에 들어가 고시 공부 한 학기 했어요. 1975년이죠. 유신헌법으로 법을 배웠는데 갈수록 이건 아니다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고민 많았죠” 당시 마오쩌뚱 등 중국 근대사 인물들이 죽었다. 중국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우연히 동양사개론을 듣게 된다.

재미있었다고 그는 말했다. 그 재미가 그의 인생을 바꾸었다. 그는 동양사학과로 옮겼고 민주화운동 대열에 들어선다. 이게 내가 가야할 길이로구나 라는 생각에서였다.

그 이후 학창시절은 운동권 생활이었고 학업은 그의 길이 아니었다. 캠퍼스보다 아스팔트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았고 책보다 가까운 건 유인물이었다. 당국의 눈초리가 서늘해지면서 대학 4학년 때 그 악명 높은 긴급조치 9호에 걸려들었다.

그리고 징역. 또 5·18때 1년 살았다. 별이 두 개. 6·29 선언 때는 수배 중 붙들려 1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대학 졸업은 1985년이었으니 입학한지 꼬박 10년이 흘렀다.

후회되지 않나 하고 물었다. 후회된다는 말이 나오기를 기대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눈빛에서라도 변화가 있지 않을까 했지만 예측은 빗나갔다. “전혀 후회 없어요. 한 번도 이 길을 후회한 적 없어요. 다시 태어나도 그 길이 주어진다면 (운동을) 할 거에요. 법학 때려친 건 전혀 후회 안 합니다. 그 유신헌법이 법입니까” 단호하다.

목이 칵 막히는지 아니면 숨이라도 돌릴 셈인지, 자리에서 일어나 담배 한 대 피우고 오겠다고 한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이해 못할 겁니다. 정말로요” 하면서 동행한 젊은 여기자를 쳐다본다.

그래도 물었다. 생채기에 소금 뿌리는 것 아닌가 하면서. 그 가치가 무엇이었나요. 니코틴 보충을 마친 그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았다. “대동이죠. 함께 사는 세상, 그러나 완벽하게 이루어지지는 않을 거에요. 그래도 한 발씩 나아가는 겁니다”

그는 지금 인천 구월동에서 ‘온고재’라는 서당을 열고 공자 순자 한시 등을 가르치고 있다. 수강료는 제대로 걷히는지 잘 모른다는 대답이다. 그래도 소강의실, 대강의실 두고 외부강사 초청도 해 가면서 꾸준히 이끌고 있는 ‘서당 훈장’이다.

지금까지 취직을 해 본 적이 없으니 어떻게 결혼하고 애들은 어떻게 키웠을까 하는 생각에 부인은 어떤 분인지 물었다. “후배 소개로 만났어요. 정말 고맙고 고맙죠”. 그렇다, 1남2녀 다 번듯하게 키우는 게 누구 몫이었던가. 그래서 책머리에 아내 유경림에 대한 고마움을 ‘이 세상 그 어떤 것으로도 나타낼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차라리 부인 유경림을 인터뷰할 걸 그랬나. 구구절절 인생굽이, 얼마나 신산한 세월을 보냈을까 궁금하면서도 이우재보다 분명 나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박근혜 아웃’이 기뻐 탄핵 당일 후배들 몽땅 불러 거나하게 먹었다는 이우재. 배웅을 하는 그의 마른 손보다 먼저 눈에 들어온 건 눈가의 깊은 주름이었다.

그는 대동의 마음으로 세상에 저항했고 인간의 도를 묻는 마음으로 저항의 연장선에 있다. ‘온고재’ 간판 글씨가 늦은 오후 햇살에 반짝인다. 우리는 늘 ‘과거’에 빚을 지고 있다.
/기록=이정윤 기자, 사진=이태구 기자

* 이 기사는 격주간 독서신문 1621호 (2017년 4월 10일자)에 실렸습니다.

엄정권 기자  tastoda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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