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김혜식의 인생무대] 나는 왜 춤추지 못했던가
[수필-김혜식의 인생무대] 나는 왜 춤추지 못했던가
  • 독서신문
  • 승인 2016.08.01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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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혜식 <수필가 / 전 청주드림작은도서관장>
[독서신문] 여성의 자궁 속에는 한 가정 운명이 담겨있다. 여성 몸이 소중하다는 의미이다. 딸을 둔 부모라서 예사롭게 넘길 수 없는 말이다. 독일 속담을 제시어로 삼아서 펼쳐본 얘기다. 이를 두고 보건대 여성으로 태어남에 긍지를 지닐 법도 하다. 가임 가능성은 여성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이기 때문이다.

여성이 여성을 얘기한다는 것은 격에 덜 맞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 하나의 물체에서 또 다른 물체가 생성된다는 것은 신비로운 현상이다. 그것도 한 움집 속에서 장장 10개월을 숨어 있다가 새 생명이 지상에 나타난다는 것은 신비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놈이 그 비좁은 단간 방에 숨어 지내면서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아니면 얼마나 호강을 하는지는 알 수 없으되, 또 하나의 생명을 뱃속에 모셔두고 열달 공을 쏟은 어미 고통은 분명 이만 저만이 아니었을 터이다. 어쨌거나 여성만이 갖는 이 궁(宮)이 신비로운 보석임에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런데 이 뻔한 얘기를 나는 왜 끄집어내는 것인가? 생각해 보라! 이 신비스러운 궁이 괄시를 당하고 있다는 뉴스나 기사가 빠진 날이 있던가? 대체 왜들 이러는지 모르겠다. 인간 말세가 오는가? 성이 말세의 세계로 빠졌다는 건가? 이제 인간을 두고 만물의 영장이라 존칭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생리대에 자궁 내막증을 유발시키는 화학물질이 첨가돼 있다는 기사를 접했다. 기겁하지 않을 수 없다. 자궁내막증은 자칫 불임의 원인이 된다고도 한다. 여성으로 태어났음에 화가 치민다. 여성이 건강하지 못한 사회는 내일을 담보할 수 없어서이다.

천 기저귀를 사용하던 우리 세대엔 생리통이 무엇인지조차 모르고 지낸 것으로 기억된다.

필자는 초등학교 6학년 체육 시간에 초경을 경험했다. 그로하여 해찰궂은 남자애들에게 놀림감이 되어야했다. 철봉에 매달린 나를 보고 손가락질 하며 저네들끼리 낄낄 대는 것은 다름 아닌 체육복 바지가 얼룩졌기 때문이었다. 초경에 대응하지 못했던 나는 그날 이후로 몇날 며칠을 부끄러움에 젖어 학교도 못 갔다. 그때의 쇼크는 훗날 생리에 대한 불안을 불러오기에 충분했다.

그 주기가 돌아오는 게 싫은 것은 또 하나 어머니가 만들어준 두툼한 면 생리대 때문이기도 했다. 그것이 활동에 지장을 주기도 했지만 양이 많을 때는 밖으로 새어나와 나를 당혹하게 만들었다. 그런 불편을 겪을 때마다 어린 마음에 얼른 생리가 멈추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불편한 것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솟아오른 가슴을 남 앞에 감추기 위해 일부러 어깨를 구부정하게 구부리고 다니기도 했다. 이를 눈치 챈 어머니는 나를 앉혀놓고 소위 요즘 말하는 성교육을 시켰다. “이제 너는 장차 어머니가 될 몸이다. 그러니 몸 간수를 잘해야 하고 나온 가슴을 감추려고 움츠러들지 마라. 엄마가 가슴 가리개를 만들어 주마.” 라고 말씀하더니 평소 바느질 솜씨가 좋은 어머니는 무명천으로 가슴 모양 속옷을 손수 만들어 주었다.

이 경험 이후로 나는 한동안 면 생리대에서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그뿐인가. 어린 마음에 봉긋하게 솟아오른 가슴이 못내 부끄러워 나의 온몸이 제발 바람 빠진 풍선이 되기를 기원하기도 했다.

훗날 이것이 트라우마로 자리한 탓인가보다. 마트에서 생리대를 구입할 때면 나도 모르게 주위 사람들 눈을 의식하곤 했다.

하기야 남성도 매한가지인가보다. 결혼 초 생일 선물로 나의 속옷을 고르느라 남편은 진땀 아닌 진땀을 흘렸단다. 속옷 가게에서 여성 속옷을 고르기가 매우 민망스러웠다는 얘기다.

요즘 방송 매체는 어느 채널이건 생리대 아니면 여성 속옷 광고가 판을 친다. 그러나 여전히 생리대는 은밀히 다루어야 하는 물건으로 치부되고 있다. 이즈막 종종 편의점에서 목격하는 일이다. 젊은 여성들이 생리대를 구입할 때는 검정 비닐봉지에 누가 볼세라 몰래 담는다.

시인 문정희는 어머니 원형이 여성이라고 했다. 여성이기에 소유할 수 있는 궁이 온갖 수난을 당하고 있는 현실이 정말로 개탄스럽다. 이런 현실 앞에 나도 모르게 기도가 올려진다.

“여성들이여! 신이 내려준 성스러운 이 궁을 스스로 잘 보관할지어다. 그리고 신이여, 이 보배로운 궁을 잘 지킬 수 있는 지혜와 용기를 주시옵소서!” 라고 말이다.

봉건사회의 상징, 남성 권위주의는 영원토록 치외 법권으로 보호를 받아야 하는가? 분명한건 궁이 남성들 노리개가 아니라는 것이다. 남성 역시 어머니 뱃속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망각하지 말지어다. 남성이란 존재가 곧 어머니 뱃속에서 이루어졌음을 명심하였으면 좋겠다.

걷히지 않는 음습한 성차별의 그늘, 여성을 옥죄는 온갖 굴레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춤출 수 있는 날이 그 언제일까? 딸을 둔 어머니인 나로선 그런 날이 오기만을 학수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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