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태영 칼럼] 낚시는 하되 그물은 사용하지 않는다
[황태영 칼럼] 낚시는 하되 그물은 사용하지 않는다
  • 독서신문
  • 승인 2016.07.16 19:2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황태영의 풀향기

▲ 황태영 대한북레터협회장 / 희여골 대표
[독서신문] 도자기는 속이 비어 있기 때문에 세상에 유익하게 쓰일 수 있다. 속을 다 메워버린 도자기는 단 한 방울의 찻물도 담을 수가 없다. 비어있는 도자기라야 모든 물건을 다 담을 수 있다. 도자기의 이로움은 채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비움에 있다. 그림도 여백의 미가 있어야 한다.

마음도 마찬가지다. 탐욕으로 가득차면 바늘 하나 꽂을 자리가 없지만 비우면 온 우주를 담을 수 있다. 크게 비우는 사람만이 크게 채울 수 있다. 그렇지만 요즈음은 다들 채우지 못해 안달한다. 구십 아홉을 가지고 있어도 하나 가진 것을 뺏어 백을 채워야 적성이 풀린다. 마음이 각박해지니 만남도 이해가 앞서고 각박해진다.
돈만 있으면 생명까지 함부로 다루려한다. 층간 소음이나 운전, 이념다툼, 여성혐오 등 사소한 일도 참으려 하지 않는다. 자신의 모든 것을 다 줄 수 있는 진정한 벗은 찾기가 어렵다. 돈 많고 지위 높은 사람들도 불안감과 우울증에 힘들어 한다. 낭만과 여유가 사라지니 모두가 살기 힘든 세상이 되었다. 형제간 다툼에서 이겨 재산을 두 배로 늘린다고 행복이 두 배로 되지는 않는다. 경제가 커지고 문명이 첨단화 되어도 마음이 커지지 않으면 삶은 복되어지지 않는다.

초(楚)나라 공왕(共王)이 사냥을 나갔다가 활을 잃어버렸다. 신하들이 활을 찾아오겠다고 하자 공왕이 손을 저으며 말했다. “그럴 필요 없다. 초나라 사람이 잃어버린 활을 초나라 사람이 줍도록 그냥 두어라(楚人遺弓楚人得之).” 신하들이 이를 두고 공왕의 도량 넓음을 칭송하였다. 그러나 후일 공자가 이 이야기를 전해 듣고 말했다. “초나라 사람으로 한정하지 말고 사람이 잃어버린 활을 사람이 줍도록 하라(人遺弓人得之)고 했으면 더 좋았을 것을...” 공자의 이러한 배려나 생명에 대한 사랑은 논어 술이편 조이불망(釣而不網)과 익불사숙(弋不射宿)에도 잘 나타나 있다.

공자는 젊었을 때 집이 가난하였다. 봉양과 제사를 위하여 부득이 낚시와 주살로 사냥을 하였다. 그러나 낚시는 하되 그물은 사용하지 않았으며(釣而不網), 사냥은 하되 잠자는 새는 쏘지 않았다(弋不射宿).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낚시와 사냥을 하였지만 투망을 던져 조그만 고기까지 다 잡거나 잠자리에 들어 무방비 상태에 있는 새들까지 잡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았다. 약자들의 씨를 말리면서까지 독식하며 물건을 탐하지는 않았다. 가난하고 힘들었지만 마음은 넉넉했고 상대를 배려할 줄 알았다.

톱니끼리 맞물려 돌아가는 기계는 힘들고 언젠가는 부서지고 만다. 윤활유가 있어야 한다. 팍팍한 서로의 부딪침을 부드럽고 살맛나게 하는 윤활유는 배려다. 배려는 보답을 바라지 말고 주기만 해야 아름답다. 배려를 하면 손해인듯 하지만 언젠가는 보이지 않는 보답이 따르게 된다.

1671년 큰 흉년이 들었을 때 경주 최부자 최국선은 집 바깥마당에 큰 솥이 내걸고 말했다. “모든 사람들이 굶어죽게 되었는데 나 혼자 재물을 가지고 있어 무엇하겠느냐. 굶는 이들에게 죽을 끓여 먹이도록 해라. 그리고 헐벗은 이들에게는 옷을 지어 입혀주도록 해라.” 큰 솥에선 매일같이 죽을 끓였다. 굶주린 사람들이 소문을 듣고 몰려들어 넘쳐났다. 흉년이 들어 수천, 수만이 죽어나가는 참화 속에서도 경주 최부자를 찾아가면 살길이 있었다. 그해 이후 최부자 집에는 가훈 한 가지가 더해졌다. ‘사방 백리 안에 굶어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흉년은 없는 자에게는 죽음과 절망이지만 가진 자에게는 부를 엄청나게 증식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그러나 최부잣집은 그런 부자들과는 정반대의 길을 갔다. 오히려 흉년 때 곡식 창고를 개방했다. 최국선은 아들에게 서궤 서랍에 있는 담보 문서를 모두 가지고 오게 했다. “돈을 갚을 사람이면 이러한 담보가 없더라도 갚을 것이요, 못 갚을 사람이면 이러한 담보가 있어도 여전히 못 갚을 것이다. 이런 담보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겠느냐. 땅이나 집문서는 주인에게 돌려주고 나머지는 모두 불태워라.” 후일 탐관오리와 부자들은 성난 동학농민군의 타도 대상이었지만 영남 제일의 최부자집은 안전했다. 6.25전쟁 전후 빨치산들이 전국적으로 부자들을 습격할 당시에도 경주 최부잣집은 피해를 당하지 않았다. 최부자의 배려와 넉넉한 마음씀씀이가 죽음과 멸문지화를 막게 해준 것이다.

채근담(菜根譚)에서도 ‘세상살이에는 한 발자국 양보하는 것을 높다고 하나니(處世 讓一步爲高), 물러서는 것은 곧 나아갈 바탕이 된다(退步 卽 進步的張本). 사람을 대하는 일에는 너그러움이 복이 되나니(待人 寬一分是福), 남을 이롭게 하는 것이 자신을 이롭게 하는 바탕이 된다(利人 實利己的根基)’고 했다.

사람과 사람관계가 맞물린 톱니처럼 깨어지면 모두가 불행해진다. 돈 많은 사회보다 먼저 마음이 크고 넉넉한 사회를 만들어가야 한다. 배려의 윤활유가 비정상적 범죄, 자살, 우울증, 불통 등 현대인들의 고질병을 예방할 수 있다. 대가없는 배려가 아름답다. 비는 뿌린 후에 거두려하지 않는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