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글쓰기 교육 특집(19)] “부모가 봉사활동까지 대신해 준다는 한국 교육에 경악”
[독일 글쓰기 교육 특집(19)] “부모가 봉사활동까지 대신해 준다는 한국 교육에 경악”
  • 이정윤 기자
  • 승인 2016.02.10 20:12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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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창간 47주년 특별기획> 재독일 통번역 전문가 홍혜정 박사 인터뷰

<독서신문>은 창간 47주년을 맞아 신향식 객원기자(신우성글쓰기본부 대표)의 ‘독일 글쓰기 교육’을 연재합니다. 베를린과 함부르크, 비스바덴, 프랑크푸르트, 하이델베르크 등 독일 현지 취재와 국내에 체류 중인 독일 교육 전문가들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독일의 선진적인 글쓰기 문화를 소개합니다. 신 기자는 하버드대와 MIT, UMASS 등에서 미국 글쓰기 교육을 심층 취재해 보도한 바 있고, 대학과 고교에서도 글쓰기 및 소논문, 보고서 작성법을 체계 있게 지도하는 논증적 글쓰기 교육의 전문가입니다. / 편집자 주(註)

▲ 독일 함부르크에서 통번역가로 활약 중인 홍혜정 박사. 그녀는 독일 글쓰기 교육과 독일 교육 방식의 특장점을 들려줬다.

[함부르크(독일)=신향식 특파원] “독일 교육의 목표는 민주시민을 양성하는 데 있습니다. 과거 나치의 만행을 반면교사 삼아 민주시민으로 키우려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자기 생각이 명확한 국민을 양성하는 데 주력합니다.”

독일 제2의 도시 함부르크에서 통번역가로 활약 중인 홍혜정 박사는 “자기 생각이 부족했기 때문에 독일 국민들은 한때 나치를 지지했고, 나치의 만행이 발생하는 비극을 불러왔다”면서 “글쓰기를 중심으로 진행하는 독일 교육은 자기 생각을 확실하게 하도록 가르치는 데 목표를 둔다”고 말했다. 글쓰기는 효율적인 의사소통법이면서 민주시민의 기본 바탕을 쌓을 수 있는 교육방법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글쓰기 교육을 해야 민주시민으로 키우는 데 도움이 될까.

“어려서부터 ‘왜(why)?’를 중시하게 하는 겁니다. 독일에서는 글쓰는 과정에서 자신의 관점을 기르게 합니다. 특히 글을 쓸 때 ‘왜(Why?)’를 항상 포함하게 합니다. 설득력 있는 주장을 펼치려면 논리적인 근거가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주장’을 제시하고 이것을 뒷받침하는 ‘충분한 논거’가 있어야 하는 겁니다.”

홍 박사는 “독일에서는 그냥 글을 쓰는 게 아니라 자기 생각을 정당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글을 쓴다”면서 “화를 내지 않고 차분하게 토론하면서 자기 관점을 세우고 찬성을 할 것인지 반대를 할 것인지 결정한다”고 말했다. 또, “어느 정당의 정책이 타당한지 따져보는 과정에서 성숙한 시민사회를 만들어간다”고 덧붙였다.

◆ “자기 생각을 키워주려고 '왜(why)'를 포함해 글을 쓰도록 지도”

2015년 10월 21일, 독일 함부르크 루르프 지역에 있는 홍혜정 박사의 자택에서 인터뷰를 했다. 추적추적 가을비가 내리는 가운데 홍 박사는 엘브가우 전철역으로 직접 기자를 마중 나왔다. 승용차로 인근 자택으로 이동해 3층 응접실에서 따스한 커피를 마시며 1시간 넘게 인터뷰를 했다.

취재 내용은 독일 글쓰기 교육에 그치지 않고 한국이 참고해야 할 독일 교육의 특장점도 포함했다. 홍 박사가 두 아들을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독일에서 교육하면서 느낀 점과 진로선택 과정을 위주로 들려줬다. 자녀들이 직접 공부한 교과서까지 보여 주면서 설명을 해 줬다.

홍 박사는 경북대 사범대 역사교육학과와 동 대학원 사학과를 졸업하고 함부르크대 역사학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함부르크 한인학교에서도 교사로 일하고 독일 교육에 관련된 저널리스트로도 활약 중이다. 첫째 홍다니엘 군은 대학에서 산업경영공학을 전공한 뒤 자동차 안전 시스템을 개발하는 스웨덴의 다국적 기업 오토리브에 다닌다. 둘째 홍요한 군은 함부르크 의과대학 7학기에 재학 중이다.

◆ “왜 그래야 하는지 스스로 따져가면서 자신의 행동을 결정”

홍혜정 박사는 “독일 사람들은 왜 그래야 하는지를 스스로 따져가면서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결정한다”면서 “이렇게 생각하는 연습을 시키는 교육은 사회생활을 하는 데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한국의 인터넷 댓글은 상당 부분이 감정적인 욕설 수준인데, 독일의 댓글은 감정보다는 논리에 기초한 전문가 수준인 사례가 많다고 했다. 이는 자신의 생각을 분명히 세우고 근거 있는 비판을 하도록 지속적으로 교육한 결과라고 한다.

홍 박사는 독일의 협력수업 방식도 소개했다. 독일은 “저학년 학생들도 조를 짜서 연구주제를 정하고 토론하고 협력을 해 결론을 도출하는 과제연구 수업이 많다”면서 “강의식으로 진행하는 수업은 구식으로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또 “교사는 큰 방향만 제시해 주는 도우미 역할을 할 때가 많다”면서 “독일에서는 혼자 하는 활동보다는 여럿이 힘을 합하면서 좀 더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키워주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홍 박사는 “결국 토론을 곁들인 글쓰기 수업은 자기 생각을 강화하게 해 줄 뿐만 아니라 그 생각을 통해 건강한 민주시민으로 양성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며 “너무 경쟁적이고 사회성과 인성보다도 성적만 중시하는 한국 교육 현실이 참으로 안타깝다”고 했다.

▲ 홍혜정 박사의 가족사진. 왼쪽부터 홍요한, 홍혜정, 홍사언(남편), 홍다니엘.

◆ “소외계층을 모르고 자란 학생들이 지도층 된다는 게 염려스럽다”

홍 박사는 “최근 한국에서 자녀의 대학입시를 위해 봉사활동을 부모가 대신해 주고 점수를 받는 행태를 보도한 뉴스를 보고 경악했다”면서 “자기만 생각하는 이기주의가 만연한 한국 사회가 걱정된다”고 말했다. “한국이 그리울 때가 있지만, 한국을 보면서 독일에 정착한 것이 잘한 결정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나중에 한국에 가서 살고 싶어도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이기주의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지도층이 된다면 사회가 얼마나 삭막해지겠습니까. 한국과 독일은 지도층의 격이 많이 다른 것 같습니다.”

홍혜정 박사는 “사회의 어두운 면과 소외된 사람들의 삶을 모르고 그들만의 리그에서 자란 학생들이 사회 지도층으로 올라간다는 게 매우 염려스럽다”면서 “그렇게 될 때 현실성 없는 정치를 하게 되고 사회는 점점 인간미가 없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홍 박사는 “독일에서는 장래에 사회의 지도자가 될 인재들에게 장학금을 줄 때도 성적만 보는 것이 아니라 봉사활동 여부를 중요한 항목으로 점검한다”면서 “기업체의 입사전형에서도 똑같이 해당된다”고 말했다.

◆ “이기주의 만연한 한국에 가고 싶어도 엄두나지 않아”

홍혜정 박사는 의과대학에 다니는 둘째 아들이 경영학과에서 의예과로 진로를 바꾼 과정을 설명하면서 일부 한국 청소년들의 진로선택 과정에도 문제제기를 했다. “의대 입학에 도전하는 어떤 한국 학생들을 보면, 부모에게 등 떠밀리거나 돈을 목표로 하는 것처럼 보인다”면서 “독일에서는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타인에게 관심을 많이 가지는 사람이 의대에 간다”고 말했다.

“둘째는 현재 의과대학에 7학기째 다닙니다. 저는 아들의 의대 진학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의사란 소명 의식이 있어야 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남편이 전공한 평범한 분야인 경영 방향으로 진로를 생각하고 조언해 줬습니다”

둘째 요한 군은 270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함부르크의 명문고 ‘크리스아네움 김나지움’에 다니면서 교내 활동으로 11학년 때 친구들과 미니회사를 창업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보스턴 컨설팅 그룹”(BCG)의 고등학생 멘토링 지원 프로그램 아래 10유로짜리 주식을 발행해 학교 친구들로부터 모은 투자금 900유로로 1년동안 미니회사를 운영하면서 예비 경영학 공부를 했다. 그런데 둘째 아들이 아비투어(독일 대입 시험)를 본 다음에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 홍혜정 박사와 두 아들 홍요한 군(왼쪽)과 홍다니엘 군. 첫째 홍다니엘 군은 자동차 안전 시스템을 개발하는 스웨덴의 다국적 기업 오토리브에 다닌다. 둘째 홍요한 군은 함부르크 의과대학 7학기에 재학 중이다.

◆ “돈과 명예보다 타인 돕기를 기뻐하는 학생들이 의대 지원”

“회사 경영을 경험해 보니 제가 평생 해야 할 일은 아닌 거 같습니다. 경영은 이익을 창출해야 하는데 저는 그렇게 돈을 쫓아가는 게 싫어요. 다른 진로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독일의 고등학교 졸업자들은 대부분 졸업 후 곧바로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6개월~1년간 봉사활동을 하면서 전공을 생각한다고 했다. 요한 군은 고등학교 졸업 후 6개월 간 멕시코에서 봉사활동을 했다. 이를 위해서 고등학교 2학년과 3학년 때 주 2회 자폐아를 돌보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멕시코에서 필요한 체류비를 모았다. 공교육을 받지 못하는 멕시코의 빈민가 아이들을 모아 운영하는 사립학교에서 영어와 음악을 가르쳤다. 그러던 어느날, 재미교포 한인들로 구성된 의료봉사단이 그 빈민가로 왔다. 요한 군은 영어와 한국어, 스페인어를 모두 구사할 수 있으므로 통역원으로 의료봉사단과 동행을 하며 남을 위해 헌신하는 의사의 모습을 보고 의사가 되겠다고 결심을 했다.

홍 박사는 아들의 의대 진학이 별로 내키지 않았지만 요한 군의 결심엔 변함이 없었다. 그래서 우선 환자들의 기저귀까지 갈아야 하는 간병인 실습을 하면서 병원(의사) 생활이 본인에게 맞는 직업인지 3개월 동안 경험해 보게 했다. 그런데 환자들의 대소변을 받아주면서도 아들은 기뻐했다고 한다. 그제야 환자들을 돌보는 걸 진심으로 좋아한다는 게 느껴져서 하루는 아들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 빈부격차 커질수록 사회가 불안정해지는 걸 뼈저리게 배운 독일

“환자를 돕는 일이 힘들 텐데 표정이 밝아 보이는구나. 견딜만하니?”

“괜찮습니다. 보람을 많이 느낍니다. 타인을 도울 수 있다는 게 기쁩니다. 제가 도와주는 걸 환자들도 좋아해 주시니 거기서 보람을 느낍니다.”

홍 박사에 따르면, 독일에서 의대를 가는 것은 오히려 한국보다 더 어려울 수도 있다고 한다. 그 예로 의대 정원이 100명이면 20명은 아비투어 성적(고등학교 졸업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인데 상위 1.1%~1.2%가 의대 합격선이다. 60명은 아비투어 성적이 1.3~1,5에 해당되는 학생들을 각 대학이 다양한 선발시험을 통해서 선발한다. 나머지 20명은 아비투어 성적은 좋지 않지만, 꼭 의사가 되고 싶어 7년을 기다린 학생들이 입학할 수 있도록 배려한다. 한국에서도 의대 진학을 위해 7수까지 하는 사례는 없으므로 독일에서는 철저하게 소명의식이 있는 학생들 위주로 의대에 간다고 할 수 있다.

“독일에는 대학 등록금이 전혀 없지만 많은 대학생들이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합니다. 등록금이 없는 만큼 전체 대학생 중 소수(2%)의 학생들에게만 장학금을 줍니다. 장학금을 주는 기준도 성적뿐만 아니라 사회 봉사활동도 중요한 선발기준에 속합니다. 둘째 아들은 독일 정부 장학생에 선발되어 생활비와 책값 명목으로 6년 의대 재학 동안 매달 800유로(약 100만원)를 받으며 학교에 다닙니다.”

홍혜정 박사는 “의대 선발 과정을 보면 독일의 밝은 미래가 보인다”면서 “대학의 재량에 맡겨진 선발시험 기준에서 각 대학은 예비 의사들의 인성을 많이 본다”고 말했다. 실제로 둘째 아들의 친구들이 집에 놀러 오면 왜 의대에 진학했는지에 물어보곤 하는데 돈을 벌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타인을 돕기 위해서라는 답변을 듣게 된다고 한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남을 향한 관심이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홍혜정 박사는 “한국은 약자가 설 자리가 없는 사회 같다”면서 “한국도 함께 가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국민들이 잘 살면 지도층도 행복한 거 아니냐”면서 “왜 이미 성공한 상류층만 더 잘 살려고 하는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독일은 역사를 통해서 빈부의 격차가 커지면 사회가 불안정해진다는 것을 뼈저리게 체험했습니다. 상류층이 나눠주며 약자를 챙길 때 사회 전체가 안정되고 결국은 사회 구성원이 모두 행복한 사회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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