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신문] 이 세상에는 그리움과 고마움, 행복한 추억으로 아버지를 기억하는 딸들이 있는 반면, 분노나 원망감, 깊은 아픔으로 아버지를 기억하는 딸들도 있다. 심리학 용어로 표현하자면 아버지와 딸 사이의 미해결 과제(unfinished business)가 남아 있는 탓이다.
『아버지의 딸』은 딸들의 무의식 속에 여러 형태로 자리 잡은 아버지의 영향력을 관계심리학으로 풀어낸 책이다. 지금까지 숱하게 이야기됐던 어머니와 딸, 어머니와 아들의 이야기에서 벗어나 기대와 실망, 흠모, 사랑, 배신이 엉켜 있는 아버지와 딸의 관계를 재조명해봄으로써 여성 그리고 딸의 삶에서 아버지 혹은 아버지라는 한 남자의 영향력을 알아채기 위한 시도이다.
심리학 박사이자 임상심리전문가인 저자가 아버지와의 관계 손상으로 힘들어하는 내담자와 환자, 학생들의 이야기를 심리학에 기반을 두고 진솔하면서도 세심하게 풀어냈다.
분석심리학자들은 아버지에게 특별한 영향을 받은 딸을 ‘아버지의 딸(father's daughter)’이라고 표현한다. 긍정적인 영향을 받은 딸은 세상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며 자리를 잡아가지만, 부정적인 영향을 받은 딸은 아버지의 영향에서 벗어나기 위해 지나치게 애를 쓰거나 벗어나려 할 때마다 더 곤경에 처하고 만다.
많은 아버지의 딸들은 삶에서 어떤 문제가 생기기 전까지는 아버지의 영향을 의식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 그러다 학업, 직장, 결혼 등 인생의 결정적인 선택의 순간이 오거나 나이가 들어가면서 이유 없이 우울해지고 처지는 기분이 들 때 그 핵심에 아버지의 영향력이 숨어 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깨닫게 된다.
저자는 아버지의 딸들이 여러 심리적 어려움을 겪을 때 이를 바로 진단하고 자신의 내면을 비춰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특히 아버지에게서 상처와 외상을 겪은 딸이라면 아버지의 부정적인 그림자에서 벗어나기 위해 각자의 여정을 떠나야 한다고 충고한다. 단지 아버지의 딸로서가 아니라 온전한 ‘나’ 그리고 한 ‘여성’으로 이 세상에서 당당히 살아가야 한다고 말이다.
이 책은 어떤 딸에게는 아버지에 대한 감사한 마음과 그리움의 이름으로 생각해보는 시간이 될 것이며, 아버지에게 받은 상처를 여전히 기억하고 있는 딸들에게는 아버지의 부정적인 영향력에서 벗어나 좀 더 자기다워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보는 계기가 될 것이다.
■ 아버지의 딸
이우경 지음 | 휴 펴냄 | 308쪽 | 14,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