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정현의 '영미문학 산책'-(1) 거미,그리고 시인 휘트먼
남정현의 '영미문학 산책'-(1) 거미,그리고 시인 휘트먼
  • 노익희 기자
  • 승인 2015.05.10 23: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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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정현 영문학 박사

[조용하고 참을성 많은 거미]

월트 휘트먼 작, 남 정현 역

조용하고 참을성 많은 거미
작은 돌기에 혼자 있는 걸 봤다
텅 빈 거대한 공간을 탐색하는 걸 봤다
거미는 자신에게서 거미줄, 거미줄, 거미줄을 내보냈다
지치지 않고 빠르게 계속 거미줄을 풀고 있었다.

그리고 나의 영혼인 너 서 있는 곳에
우주의 끝없는 대양에 둘러싸여, 홀로 떨어진 채
쉼 없는 명상, 탐험, 내던짐, 그리고 그것과 접속할 우주를 찾는다.
너 필요한 다리가 놓일 때까지, 부드러운 닻이 내려질 때까지
너 던진 가느다란 줄이 어딘가, 내 영혼에 닿을 때 까지.

A noiseless patient spider,
I mark'd where on a little promontory it stood isolated,
Mark'd how to explore the vacant vast surrounding,
It launch'd forth filament, filament, filament, out of itself,
Ever unreeling them, ever tirelessly speeding them.

And you O my soul where you stand,
Surrounded, detached, in measureless oceans of space,
Ceaselessly musing, venturing, throwing, seeking the spheres to connect them,
Till the bridge you will need be form'd, till the ductile anchor hold,
Till the gossamer thread you fling catch somewhere, O my soul.
- A Noiseless Patient Spider. by Walt Whitman(1819-1892)

 

시인들이 동물이나 식물을 주제로 작품을 쓰는 경우에는 대개 시인의 자화상을 그것을 통해 보여주는 경우가 많다. 『조용하고 참을성 많은 거미』 또한 거미줄을 풀어내어 글쓰기를 하는 거미라는 시인, 즉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거미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는 특히 미국 헐리우드 영화에서 나타난다. “스파이더맨”은 거미의 모습이 보존된 채 지구를 구하는 영웅으로 나온다. 주인공은 글 쓰는 기자면서 악에 맞서는 존재로 나온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이는 미국의 오랜 전설에서도 그 기원을 찾아볼 수 있다. 미국 인디언 부족 중, 푸에블로족의 전설에는 거미 여인이 나온다. 이 거미 여인은 세상의 창조자로서, 그녀가 이름을 부르면 부르는 데로 사물이나 생명체가 나타나게 하고, 무생물에 생명을 불어 넣어주며, 세상을 마법에 걸리게 할 수 있는 영적 존재다. 또 다른 부족인 체로키족의 전설에 의하면, 거미와 거미줄은 작가의 창조력을 의미한다. 체로키족의 거미는 다른 세상의 태양을 훔쳐 인간 세상에 가져와 우리 인간에게 빛을 안겨준 존재다. 그리고 거미줄은 사고와 문학작품의 창조적 매개체인 언어를 상징하고 있다. 마치 작가인 거미가 거미줄처럼 쓴 글을 풀어내는 것을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휘트먼의 '거미'는 외로이 혼자 우주의 빈 공간에서 자신의 먹이 혹은 해야 할 일을 위해 빠르게 공간으로 거미줄을 풀어낸다. 이 거미는 시인의 메타포로, 글쓰기 하는 형상으로 나타낸 것이다. 시인은 거미와 마찬가지로 자신이 있는 곳, 즉 외롭고 고립된 곳에서 “조용히 참을성 있게(noiseless patient)” 거미줄을 내보낸다. 시인의 영혼은 우주의 끝없는 대양에서 길을 잃은 채, 혼자 외로이 어디선가 연결할 세계를 찾으려 애쓰고 있다. 이는 시인의 글쓰기 작업과 유사하며 그 작업은 혼자서 하는 것이다.

이 작품을 감상하면, 비록 컴퓨터가 아직 나오기 전 19세기 시인이지만, 이 인터넷 상의 거미줄(Web)을 이용하기 위해 컴퓨터 앞에서 독자들과 소통하고자하는 현대 휘트먼의 모습이 어른거린다. 외로이 독자들과 떨어진 채 명상과 지적 탐색을 하며 시 쓰기를 하는 시인의 모습으로 말이다. / 티처메카 남정현 교수[숭실대 영문학과 교수, 영문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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