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소속된 단체가 만들어진지 20년이 되어 기념으로 책을 만들고 창립기념식을 준비하는 책임을 맡았었다. 시작 전에 결과를 미리 조용히 생각해보았다. 이런 일의 결과란 게 대개 잘하면 그만이고, 못하면 욕을 먹고, 보통의 경우는 일한 것을 후회하게 되는 것이어서 고민스러웠기 때문이었다. 명분은 선배들에 대한 감사와 우리에게는 잘하자는 다짐을 하게 하고 후배들에게는 희망을 주자는 명분으로 일을 추진하게 되어 있다. 두 달여를 준비해서 만들어낸 결과물과 행사의 성료(成了)에도 대중의 평가는 각각일 수 밖에 없었다. 내가 책에 안 나오고, 내가 행사의 주인공이 아니라면 그다지 유쾌할 수 없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기업체의 대표들은 종업원들에게 상처를 받는다. 정치인들은 유권자에게 상처를 받고, 선생님들은 학생들에게 고통을 받고, 부모들은 자식에게 아픔을 받는다. 선배들은 후배들에게 실망을 하고, 후배들은 선배들에게 불평한다. 노인들은 젊은이에게 불편하고, 젊은이들은 모두에게 관심이 없다. 스토리가 있는 작은 역사를 만들고 행사를 똑똑히 준비하더라도 그 누구도 보상 받을 길은 없는 것이다. 때문에 이룬 자에게 푸쉬킨은 "너의 고귀한 행동에 대한 아무 보상도 요구하지 마라. 보상은 바로 자기 자신에게 있는 것이다. 너 자신이 너의 최고 재판관이다. 다른 누구보다도 엄격하게 너는 자신의 작품을 심판(審判)할 수 있다. 너는 너의 작품에 만족하는가? 의욕 많은 예술가여? 네가 황제다. 고독하게 살아라!"라고 위로했다.
하지만 보고 느낀 것을, 정리해서 쓰고 전달하는 것이야말로 세상을 이롭게 하고 정당하게 하는 것이라는 믿음은 본인을 만족시킬 것이다. 플라톤도 푸쉬킨을 거들어 이렇게 말했다. "울지 마라, 세상(世上)은 울보를 기억하지 않는다." '형영상조(形影相弔)'란 '자기의 몸과 그림자가 서로 불쌍히 여긴다'는 뜻인데 결국 '나의 길은 내가 가는 것으로 고독한 길이 주는 자유를 누리고 내가 심판하면 그 뿐'이라는 말이 되는 것이다. 원한다면 자신의 생각이 가고자 하는 길로 정당한 길로 선뜻 나서기를 권한다. / <참교육신문>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