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민제의 '닭으로 본 인문학' _ (9) 홀로 식사와 손님 접대
백민제의 '닭으로 본 인문학' _ (9) 홀로 식사와 손님 접대
  • 한지은 기자
  • 승인 2015.03.10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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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민제 칼럼니스트
대학교는 참 좋다. 학생은 공부를 할 수 있어 좋고, 주민은 산책을 할 수 있어 좋다. 필자는 가끔 집 근처 대학의 드넓은 공간을 걷는다. 학생식당을 지날 때도 있다. 젊은 학생의 발랄한 모습은 구내식당 창밖으로도 보인다. 그런데 20년, 30년 전 대학 식당과는 차이가 있다. 혼자 식사하는 학생이 자주 보인다. 예전에는 소외받는 친구가 혼자 식사하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요즘에는 삼삼오오 자리한 경우도 있지만 혼자 맛있게 먹는 친구들이 의외로 많다. 기성세대는 학생시절에 혼자 밥 먹을 때면 주위가 의식됐지만 지금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행동한다. 학생식당에서 인간관계의 변화를 엿볼 수 있다. 개인주의, 합리주의 등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다.

예전에 비해 허례가 많이 줄었다. 과거 허례의 대표적인 것은 손님접대다. 수 십 년 전 초등학교 교과서에는 집에 온 친구를 접대하기 위해 아내가 머리를 잘라 파는 내용도 나왔다. 이는 유학의 바른 가르침이 겉치레 체면문화로 오도된 영향으로 볼 수 있다. 『명심보감』에서는 '문 밖에 나설 때는 큰 손님 대하듯 하고, 방 안에 들어올 때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하라'고 했다. 주자는 '손님을 접대하지 않으면 돌아간 후에 뉘우친다'고 했다. 그러나 이는 무리하라는 뜻은 아니다. 관자는 '곳간이 차야 예절을 알고 의식이 족해야 영욕(榮辱)을 안다'고 했다. 이는 '살림이 궁핍해질 정도로 체면에 연연하지 말라'는 역설적인 표현이다.

그런데 예전에는 손님에게 불쾌할 정도로 접대한 경우도 많은 듯하다. 조선 초기의 학자인 서거정이 쓴 『태평한화골계전(太平閑話滑稽傳)』에서 단초를 읽을 수 있다. '골계(滑稽)'는 '메시지 있는 유머'라고 할 수 있다. 설화집인 이 책은 편안하고 한가롭게 생각하는 유머집인 셈이다. 『태평한화골계전』에서 손님을 박대함을 풍자한 '차계기환(借鷄騎還)'이 연유됐다. '빌릴 차, 닭 계, 말탈 기, 돌아갈 환'인 이 조어는 '닭을 빌려 타고 돌아간다'로 해석된다. 

김선생은 유머를 잘하는 사람이다. 그가 하루는 친구 집을 방문했다. 친구는 그를 반갑게 맞으며 술을 내왔다. 그런데 안주는 채소 밖에 없었다. 친구가 형편이 어려워 대접이 소홀해 미안하네"라며 겉치레 인사를 했다. 마침 뜰에서는 여러 마리의 닭이 모이를 쪼고 있었다. 이를 본 김선생은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대장부가 어찌 천금을 아끼겠는가? 내 말을 잡아서 술안주로 하세." 이에 놀란 친구는 "말을 잡아먹으면 무엇을 타고 돌아간단 말인가"라고 만류했다. 김선생은  "그야 자네의 닭을 빌려 타고 돌아가면 되지 않겠나." 친구는 크게 웃으며 곧 뜰에 있는 닭을 잡아 대접했다.

옛 선인의 호기로움과 해학을 느낄 수 있는 내용이다. 그러나 그냥 웃고 넘기기에는 씁쓸한 면도 있다. 먼저 주인의 이중성이다. 주인은 말과 행동이 달랐다. 말은 크게 환영했지만 행동은 그렇지 않았다. 주인의 정성이 부족한 행동은 손님의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만다. 손님의 행동도 바람직하지 않다. 손님은 허세에 민폐를 끼친 인물이다. 자신의 말을 잡아 술안주를 하겠다는 으름장으로 주인에게 심리적 압박을 했다. 실제로 자신의 말을 잡을 의지도 없어 보인다. 해학은 해피엔딩으로 끝나지만 요즘 시각으로 보면 두 사람 모두 원만한 인간관계를 이어가지 못할 것 같다. 젊은 대학생이 혼자 식사하는 게 요즘 분위기다. 닭과 말이 등장하는 '차계기환'을 통해 바람직한 인간관계를 생각해본다. 상대에게 정성을 다하고, 피해를 주지 않으려는 마음이 좋은 관계를 형성할 것이다.

■ 글쓴이 백민제는?
맛 칼럼니스트다. 경제학을 전공한 그는 10년의 직장생활을 한 뒤 10여 년 동안 음식 맛을 연구했다. 특히 건강과 맛을 고려한 닭고기 미식 탐험을 했다. 앞으로 10여년은 닭 칼럼니스트로 살 생각이다. 그의 대표적 아이디어는 무항생제 닭을 참나무 숯으로 굽는 '수뿌레 닭갈비'다. www.supu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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