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의 괴담 속에서 현실의 괴담을 찾다
상상의 괴담 속에서 현실의 괴담을 찾다
  • 한지은 기자
  • 승인 2015.02.13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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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한지은 기자] ‘귀신(鬼神)’은 아무리 겁이 없다고 자신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오금을 충분히 저리게 만들 수 있는 소재다. 무서워서 손으로 귀를 막고 얼굴을 가리면서 들을지라도 수학여행에 가면 절대 빠지지 않는 묘미 중 하나가 한밤중의 ‘귀신 이야기’ 혹은 ‘괴담’이다. 이처럼 귀신 이야기가 무서우면서도 모두의 관심을 자극한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이 책에 실린 다섯 개 단편에는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추억의 괴담들이 등장한다. 이 괴담들을 통해 학교 화장실의 소녀 귀신과 재회하고, 어릴 적 분신사바 주술에 다시 한 번 빠져들며, 한밤중 거울 속을 스쳐 가는 불길한 미래를 목격하는 등 상상으로 그려낸 무서움을 현실에서 만나게 된다. 시간을 훌쩍 넘어 우리 앞에 나타난 괴담들은 그때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간 듯 묘한 그리움까지 전해준다.

그러나 향수를 자아내는 괴담들의 이면에는 결코 가볍게 즐기고 넘어갈 수 없는 냉혹한 현실이 존재한다. 일본 드라마 <기묘한 이야기>에도 소개된 「계단의 하나코」에서는 학교 계단에 사는 귀신 하나코를 내세워 왕따와 성폭력 등 교내에서 빈발하는 폭력 문제를 고발한다. 또한 「그네를 타는 다리」와 「8월의 천재지변」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학교를 지배하는 냉혹한 카스트 때문에 힘겨워한 아이들의 신음이다.

블랙코미디의 외피를 두른 「아빠, 시체가 있어요」는 고령화 사회의 노인 문제를 들여다보며 「테두리 없는 거울」 속의 아동 학대 역시 ‘귀신보다 사람이 더 무섭다’는 우스갯소리에 내포된 지독한 현실에 직면하도록 만든다.

오래된 도시 괴담들을 새롭게 호출하며, 저자는 미신과 괴담을 탄생시킨 공간이 품는 근원적 공포, 그 공포를 배태시킨 사회 및 학교의 억압적인 권력 구조, 그리고 그 구조 속에서 고통스러워하는 인간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작품 속에는 숨쉬기 어려울 정도의 깊은 공포에 대비되는 찬란한 구원의 빛이 존재한다. 각 이야기에서는 그것이 귀신이든, 사람이든, 상상 속의 친구든, 고통받는 인물들 곁에 늦게나마 그들을 도우려는 구원의 손길이 나타나는 것이다. 우리가 찾을 수 있는 유일한 구원은 귀신마저도 현실로 불러들일 수 있는 절실함과 진정성에 있다는 메시지다.

현실과 거울의 경계, 진실과 꿈의 경계, 희망과 절망의 경계에서 매일 아슬아슬한 줄타기의 삶을 영위하는 독자에게 츠지무라 미즈키는 부디 다른 세계의 존재감을 느껴보라 유혹한다. 현실과 환상, 공포와 감성, 냉소와 유머 사이를 오가는 이곳의 문을 여는 순간, 현실에서 진정으로 원하고 바랐던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불현듯 깨닫게 될 것이다.

■ 테두리 없는 거울
츠지무라 미즈키 지음 | 박현미 옮김 | 아르테 펴냄 | 328쪽 | 1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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