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예술의 가치를 전하다 , 연극 '전기수'
전통 예술의 가치를 전하다 , 연극 '전기수'
  • 김누리 객원문화기자
  • 승인 2014.10.27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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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김누리 객원문화기자] 옛 것은 지루하다. 판소리는 이해 불가능하며, 한국 무용은 화려하지 않다. 이미 서양의 문물에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현대인의 눈에 전통문화예술은 결코 성에 차지 않는다. 온 몸을 신나게 뒤흔들 수 있는 힙합 비트와 웅장하고 화려한 오페라가 보다 시선과 마음을 사로잡는다. 이처럼 현 사회에서 전통문화예술의 입지는 나날이 협소해지고 있다. 누군가는 여전히 과거의 흔적과 가치를 알리고자 하나, 대중은 매 순간 새롭게 유입되는 문화와 예술에 시선을 둘 뿐이다.

예술은 이른바 시대를 읽는 또 다른 유물이다. 그렇기에 현 사회에서 대중이 현재의 예술에 시선을 두는 것은 사실 당연한 이치다. 과거와 현재의 가치관은 분명 큰 차이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 모든 현대 사회의 가치관 역시 과거의 사람과 시간이 단단히 쌓아온 가치관 위에서 재창조되고 변화한 것이다. 그렇다면 그 뿌리는 어디에서 어떠한 모습으로 존재했을까. 연극 <전기수>는 과거 옛 조상의 삶과 애환, 그리고 그들이 추구하던 ‘미’를 선보이며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고 새삼 돌아보게끔 한다.

▲ 연극 <전기수> 공연 장면 [사진제공=씨즈온]

고전, 시대를 잇는 다리

연극 <전기수>는 실제 조선시대 후기 직업적으로 소설을 낭독한 전기수의 삶과 일상을 그린 드라마 극이다. 현대 사회에서는 낯설고 생소한 직업인 전기수의 재기와 당대 사회의 풍류를 새롭게 알리고자 하는 작품이다. 더불어 연극은 과거 실존인물 ‘업복’과 ‘장봉익’을 차용하여 보다 시대를 초월하는 보편적이고 유쾌한 이야기를 전하고자 완성된 창작극이다. 한국의 대표적인 고전소설 ‘사씨남정기’와 ‘조웅전’을 접목시켜 강렬한 인상을 전달한다.

조선 한양에서 제일가는 전기수 업복은 언제나처럼 사람들 앞에 서서 능청스럽게 소설을 낭독한다. 생생하게 펼쳐지는 업복의 이야기는 현실과 소설을 분간조차하기 힘들게 한다. 마침내 이러한 소식을 들은 장판서 댁 정실 민 씨는 업복을 집 안에 들여 소설을 듣고자 한다. 한편, 이러한 모습을 목격한 후실 허 씨는 민 씨에 대한 질투로 자신도 똑같이 업복의 이야기를 듣고자 장판서를 회유한다. 결국 허 씨는 기묘한 매력을 전달하는 업복을 보며 유혹하기에 이르는데, 오히려 업복의 계략에 속아 넘어가고 만다. 자신만의 어둡고 깊은 비밀을 간직한 업복은 마침내 허 씨를 통해 장봉익에 대한 복수를 시작한다.

이 연극은 극의 바탕이 된 각 고전 소설의 소재와 구조를 차용하여 적절히 현대적으로 각색한 작품이다. 현재 TV 너머로도 방송되고 있는 막장 드라마와 유사한 구조를 띄고 있다.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복수로 장봉익의 집안을 파멸시키려는 업복의 이야기는 진부하지만 흡입력 있게 진행된다. 이 연극은 빠른 전개와 적절한 호흡으로 생동감을 줄 뿐 아니라, 업복 자신의 이야기와 그가 낭독하는 소설의 중첩, 연쇄 구조로 구성되어 흥미를 높인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모두 ‘사필귀정’과 ‘사랑’이라는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보편적 삶의 가치관을 효과적으로 선보인다. 이는 결국 관객 스스로 기존의 편협적이고 분리된 시각에서 벗어나 폭넓고 깊은 시야로 ‘전통’을 돌아볼 수 있게 한다. 한편, 장화홍련전부터 심청전, 춘향전에 이르기까지 익숙한 고전 소설의 등장은 업복의 입을 통해 나타나 관객에게 친숙함과 참신함을 동시에 전달한다.

▲ 연극 <전기수> 공연 장면 [사진제공=씨즈온]

전통 예술의 가치를 전하다

연극은 단순 고전 소설의 재발견을 넘어서 전통 예술의 가치를 폭넓게 알린다. 실제 연극은 드라마와 전통연희방식으로 구분되어 진행된다. 업복의 계략과 장봉익의 파멸은 기본적인 드라마 구조로 진행되는 반면, 극 중 업복이 펼치는 고전 소설 내용은 전통연희방식으로 다양하게 꾸며진다. 판소리부터 탈 인형극, 그림자 인형극까지 볼거리가 화려하다.

심청전은 업복의 해설과 더불어 직접 무대에 등장한 학규, 뺑덕어덤 캐릭터의 해학적인 연기로 꾸며진다. 반면, 춘향전은 일정한 크기의 창호지 위로 나타난 그림자로 그려진다. 무엇보다 그림자 인형들의 섬세한 움직임 위로 울리는 ‘사랑가’는 가장 인상적이다. 이 외에도 연극 전반 곳곳을 메우는 소리와 탈 인형의 움직임은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탈 인형들의 대화를 통해 소문이 알파만파 퍼지는 식의 장면을 표현하는 연출은 아기자기하면서도 유쾌하다. 연출의 영리함이 돋보인다.

▲ 연극 <전기수> 공연 장면 [사진제공=씨즈온]

풍물놀이와 검무 역시 인상적이다. 이는 물론 극의 분위기와 상황 연출을 위한 의도적 장치일 뿐이나, 우리나라 전통 예술 고유의 멋을 직접적이고 강력하게 전달하고 있다. 즉 연극 <전기수>는 그만큼 이제 더 이상 어디서도 쉬이 맞닥뜨릴 수 없는 전통예술의 매력을 가감 없이 선보이고자 노력하는 작품이다. 분명 다소 헐거운 드라마 구조와 미진한 결말 등은 큰 아쉬움을 드러낸다. 여전히 기술적으로 보완할 지점 역시 다수를 차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통 예술에 대한 진정성 있는 태도와 애정 역시 함께 드러나 눈길을 끈다. 지속적인 실험과 보완 과정을 거친다면 더 나은 작품이 탄생될 것이라는 가능성이 엿보인다. 분명 이러한 작업에는 관객의 역할 역시 중요하다.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무엇을 보고 즐기고 싶은지 따스한 조언과 함께 전통 예술에 대한 지속적 관심 전달이 필요하다. 연극 <전기수>는 함께 즐기는 것을 지향한다. 이처럼 결국 전통 보존과 계승은 단순 개인의 몫이 아닌 우리 전체의 몫이다. 비로소 진정한 소통이 이루어질 때, 과거는 또 다른 현재가 될 것이다.

과거를 넘어 현대인과 지속적인 소통을 바라는 전통 예술의 유희정신과 가능성을 전하는 연극 <전기수>는 오는 11월 19일부터 12월 7일까지 대학로 시월 소극장에서 공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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