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이해하기가 힘들다 그래서 엄마는 외롭다, 연극 ‘마요네즈’
엄마를 이해하기가 힘들다 그래서 엄마는 외롭다, 연극 ‘마요네즈’
  • 김윤하 객원문화기자
  • 승인 2014.09.19 15:3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독서신문 김윤하 객원문화기자] 깜짝 놀랐다. 여자 두 명이 극을 이끌어가는 형식은 굉장히 낯설었다. 하지만 그 낯설음도 잠시, 두 배우는 ‘거실’이라는 한정된 무대 안에서 지루할 틈 없이, 그리고 현실적인, 완벽한 모녀로 변신한다. 투닥투닥 다투고, 매일 말싸움을 하고 가끔은 제일 편한 ‘가족’이라는 이름의 관계 속에서 서로에게 상처 주는 말도 서슴지 않고 퍼부어 버린다.

▲ 연극 <마요네즈> 공연 장면 [사진제공=씨즈온]

‘마요네즈’ 속의 엄마

엄마는 우리가 평상시 알고 있던 희생적이고 헌신적인 엄마의 상과는 좀 다르다. 그녀는 그녀의 딸 아정이가 어렸을 때, 즉 젊었을 때부터 예뻤다. 미모로 모든 것이 용서되고 아빠는 그런 엄마를 위해 노력했던, 그녀는 한마디로 철없는 엄마이다. 어느 날 남편도 잃고, 작은 딸도 유학을 가는 등 혼자서의 삶이 외로웠던 그녀는 큰 딸 아정의 집에 불쑥 찾아온다.

아정은 엘리트였지만 소위 배고픈 ‘국문과’를 나와 임신한 몸으로 대필 작가를 하며 남편과 함께 근근이 삶을 이어나가는 여자이다. 자신의 삶을 견디기에도 벅찬 아정이는 집으로 찾아온 엄마가 그리 달갑지 않다. 그런 아정이의 눈에 자신의 꿈을 이해해주지 않고 오직 딸의 금전적인 성공만을 바라며, 밍크코트, 치아를 해달라고 외치는 어머니는 곱게 보였을 리 없다. 그 둘의 애증은 그곳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녀들이 각각 생각하는 ‘엄마’라는 역할 기대와 행동에 대한 충돌.

▲ 연극 <마요네즈> 공연 장면 [사진제공=씨즈온]

‘엄마’라는 단어가 가지는 폭력성

폭력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먼 곳에 있지 않다. 폭력을 우리가 보이는 곳에서 자행되는 가시적인 폭력, 보이지 않는 곳에서 행해지는 비가시적인 폭력 두 종류로 나눈다면 사회적인 폭력은 후자에 해당할 것이다. 자신만을 생각하는 엄마에게 계속 실망하는 극 속의 아정이를 보다보면, 사회는 ‘엄마’라는 역할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고 기대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 않다는 반박도 있겠지만, 사실 아직도 여성들에게 기대되는 엄마의 역할은 실질적으로 지대하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13년 남성 육아휴직자 수는 전체 6만9,616명의 3%에 불과한 것으로 집계됐다. 엄마는 희생의 아이콘이며, 정서적 안정의 표본으로 지나치게 포장돼있고 이미지 메이킹 돼있다. 그런 엄마의 역할들을, 그리고 그러한 성향을 가진 엄마들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우리의 머릿속에서 그려지는 ‘엄마의 표상’이 아닌 엄마들이 비판의 대상이 되는 것을 변호하고자 한다. 그것은 사회가 여성, 그리고 엄마들에게 부과한 ‘폭력’에 불과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 연극 <마요네즈> 공연 장면 [사진제공=씨즈온]

엄마도 사람이다

극 속 아정이가 간과한 것이 있다면, 자신의 엄마도 ‘엄마’라는 굴레가 씌워지기 전 까지는 한 독립적인 개체, 여자였다는 것이다. 그녀도 예쁘고 싶고 외롭기 싫다. 하지만 그녀는 계속 자신의 엄마에게 누가 자신에게 주입했는지도 모르는 엄마로서의 역할을 기대한다. 항상 따뜻하고, 자신에게 교훈을 줄 수 있고, 오래된 스웨터처럼 포근한 그런 엄마 말이다. 그래서 아정이는 끊임없이 엄마의 엄마답지 못한 행동들을 지적한다. 화려한 모자를 쓰거나, 선글라스를 쓰고 집안에 앉아있다던가,(이러한 행동들도 딸 아정이의 눈에는 외모에 지나치게 신경쓰는 철없는 모습으로 보였던 듯 하다) 계속 팩으로 자신의 머릿결을 걱정하고 거울을 쳐다보는 모습들. 만약 이런 행동을 하는 20대 여자 혹은 남자가 있다면 누구도 뭐라 하지 않는다. 그냥 외모에 관심이 많은 여자, 남자겠거니 한다. 하지만 이러한 행동들은 단지‘엄마’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금기시된다. 심지어 가장 가까운 딸조차 엄마답지 않다며 그녀를 철없는 한 인간으로 취급한다. 왜 외모에 신경쓰면 안 될까? 왜 엄마들은 이기적이면 안 될까?

연극 ‘마요네즈’ ‘희생하는 어머니’에 대한 사회의 고정관념을 깼다는 점에서 굉장히 많은 점을 시사한다. ‘엄마’에 대한 신격화나 이상화는 세상의 모든 ‘엄마’들에게도 부담일뿐더러, 그러한 ‘엄마’에 대한 기대를 가지지만 엄마도 결국 한 명의 나약한 사람임을 알게 되는 모든 아들, 딸들에게도 건강하지 않은 행위이다. 극을 보다보면 어느새 반성하며 ‘마요네즈’의 엄마가 진짜 우리의 엄마는 아니지만, 진짜 엄마를 더 잘 이해하게 되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연극 ‘마요네즈’는 대학로 예술 공간 오르다에서 오는 21일까지 공연된다.


  • 서울특별시 서초구 논현로31길 14 (서울미디어빌딩)
  • 대표전화 : 02-581-4396
  • 팩스 : 02-522-6725
  • 청소년보호책임자 : 권동혁
  • 법인명 : (주)에이원뉴스
  • 제호 : 독서신문
  • 등록번호 : 서울 아 00379
  • 등록일 : 2007-05-28
  • 발행일 : 1970-11-08
  • 발행인 : 방재홍
  • 편집인 : 방두철
  • ⌜열린보도원칙⌟ 당 매체는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 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고충처리인 권동혁 070-4699-7165 kdh@readersnews.com
  • 독서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독서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readersnews.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