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경대 교육맘들
동경대 교육맘들
  • 독서신문
  • 승인 2014.08.19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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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에세이'
▲ 이하빈 작가

[독서신문] 일본 동경대는 자타가 공인하는 일본 최고의 명문 대학이다. 최근 일본 언론에, 올 봄 동경대에 입학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내용이 실려 눈길을 끌었다. 설문 내용은 합격의 가장 중요한 요인에 대한 물음들이었다. 조사 결과는 첫째 운, 둘째 부모의 경제력, 셋째 조기교육과 부모의 열성 순으로 드러났다. 수험생의 능력을 떠나 무엇보다도 부모의 경제력과 열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식의 동경대 입학은 부모의 훈장?

자식을 동경대에 입학시키려는 부모는 보통 두 세 살 때부터 아이들의 조기교육에 소매를 걷어붙인다. 지방에 사는 부모들은 입시 전문 단체들로부터 정보를 얻기 위해 동경까지 비행기로 수시로 날아와서 체크를 한다. 이렇게 조기교육을 시작하면 아이는 초등학교가 아닌, 유치원에 들어가기 전에 이미 일본어 글자를 떼고 세 자리 수의 연산까지 습득하게 된다. 공부뿐만이 아니다. 리듬감을 위한 발레, 체력을 위한 수영, 공간 감각을 위한 블록 쌓기, 기억력을 위해 카드놀이 등 다양한 훈련을 시킨다. 물론 영어는 기본이다.

부모들은 입시 전문 사설학원에만 의존하지는 않는다. 엄마들에게는 자식들 못지않게 해야 할 공부가 많다. 집에 오는 신문, 그리고 그 속에 끼어 있는 광고 전단지 등에 나오는 동물, 식물, 과일, 야채 등의 사진을 오려서 한장 한장 카드를 만든다. 그리고 그 뒷면에 대상의 특징, 산지, 서식지 등을 기록해 파일을 만든다. 또 동물원이나 식물원에 가서 찍은 사진으로 카드를 만들어 아이의 기억력을 키워주면서 학습에 필요한 기본 상식을 미리 익히게 하는 것도 엄마의 몫이다. 이렇게 하면 3학년까지 50종류 이상의 각종 도감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시중에서 판매하는 도감보다 사진의 질도 좋고, 아이들의 성향에 맞춰 내용을 꾸밀 수 있어 좋다는 게 극성 교육맘들의 생각이다. 엄마들은 초등 저학년까지 아이들과 같이 공부하고 같이 놀면서 아이들이 배움의 즐거움을 몸으로 느낄 수 있도록 헌신적인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이들 교육맘들은 '무엇을 하든지 간에 기억력, 창의력, 집중력 향상에 도움이 되는 게 중요하다'는 말을 빼놓지 않는다.

보통 4학년 때부터는 학습 능력이 자연스럽게 몸에 배일 수 있도록 힘을 쏟는다. 먼저 거실을 공부방으로 개조한다. 거실에는 책장이 없다. 강제로 책을 읽어야 한다는 압박감을 주지 않기 위해서란다. 거실에는 커다란 책상과 인물 사전이나 역사에 관한 책 몇 권이 전부다. 그런 환경은 스스로 찾아서 책을 읽도록 하는 습관을 키우는 데 효과적이라고 한다. 물론 부모들은 자녀들의 공부 환경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 모임이나 술자리도 자제한다.

아이가 중학생이 되면 엄마는 서서히 손을 떼기 시작한다. 모든 상담은 사설 교육기관의 전문가에게 맡기고, 가급적 아이와는 성적에 관한 직접적인 대화를 피한다. 조기교육 시기에는 자기만의 정보력으로 아이를 가르쳤다면, 중고생이 되면서는 같은 목표를 가진 부모와 정보 교환 또한 중요해진다. 하지만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제공해야 하는 부담감도 있다. 아이들의 생활 규칙도 엄격해 학교와 집 이외에서는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일을 금지하는 부모들도 많다. 이렇게 해서 동경대 합격하기까지는 교육비만 3,500만 엔(약 3억5,000만 원) 정도 든다고 한다.

경제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자식들을 일류대에 입학시키기 어렵다는 현실은 한국과 일본이 다를 게 없어 보인다. 그리고 자신들의 콤플렉스를 자녀들을 통해 해소하려는 대리만족 심리도 비슷한 면이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교육 병폐를 '망국병'이라고까지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이 대목에서, 아직도 사회 곳곳에 일본의 잔재들이 남아 있는 한국의 교육 개혁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백년대계의 정책이 필요하다는 교육은 미래의 사회 시스템을 좌우한다고 하지만, 현재 사회의 부조리한 틀 속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런 점에서 학벌 사회에 대한 사회 전반의 획기적인 인식 전환이 없이는 모든 정책은 공염불이 될 수밖에 없다. 일본에서 동경대 등 일류대에 가려고 조기교육에 발 벗고 나서는 사람들은 정말 소수에 불과하다. 하지만 한국은 어떤가? 모두가 그 잘난 대학이름에 매달려 있지 않은가? 그것이 바로 한국과 일본의 가장 큰 차이점이다.

/ 도쿄(일본) = 이하빈(르포 작가, 동경싱싱아카데미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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