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와 정원 속에 녹아있는 디킨즈 뮤지엄
서재와 정원 속에 녹아있는 디킨즈 뮤지엄
  • 이재인
  • 승인 2007.10.01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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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이 여행 4일차이다. 지치고 조금은 권태로워 귀국하고 싶은 생각이 슬며시 고개를 든다. 그런데도 우리 일행은 60대가 넘은 관장들이지만 쌩쌩하게 아침 일찍부터 산책으로 시작했다. 아마도 오늘은 찰스 디킨즈 하우스를 탐방한다는 설레임 때문일까? 아무튼 우리 일행은 누가 시키지도 않은 런던의 공원을 산책했다. 그리고 호텔 구내 뷔페식당으로 옮겨와 지정된 시간에 맞추어 조식을 끝냈다. 

 
▲ 찰스디킨스 응접실 전경     ©독서신문
런던의 날씨는 어제도 그랬지만 오늘도 가랑비가 아침부터 내렸다. 약간은 한기 머금은 비가 오다말다 하곤 했다. 영국인들이 버버리 코트를 입고 검은 모자를 쓰게 되는 생리를 이곳에 와서야 터득하게 되었다. 우리 일행은 영국에서 그리 흔한 코트조차 걸치지 못하고 그들 난쟁이 우산으로 겨우 머리를 가리고 이리저리 움직이는 수밖에 없었다.

  찰스 디킨즈 하우스를 찾아간다는 생각에 벅차게 솟아오르는 기쁨이 있었다. 나만이 아니라 옆자리 전상국, 김용만 선배는 나보다도 더 흥분하는 빛이었다. 아마도 그들 생애에 즐겨 읽었고, 그의 영혼을 사모하던 후배들인지라 디킨즈의 체취가 묻어 있는 그의 집을 방문한다는 것은 일종의 성지순례라고나 할까?
 
 찰스 디킨즈(charles dickens,1812-1870) 19세기 영국 빅토리아조 시대의 산문운학을 대표하는 대작가이며, 근대 리얼리즘 소설의 체계를 확립한 분이다. 그리하여 오늘의 우리들은 디킨즈를 가리켜 거장이라고 부른다. 그를 거장이라고 함에는 가감이 없는 표현이다.

 
▲ 찰스디킨스의 유물들     © 독서신문
그는 해군성 하급 관리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런데 그는 어릴 때 아버지의 파산으로 런던의 빈민가에서 가난과 비참함 속에서 자라났다. 그러므로 디킨즈는 좋은 일 궂은 일 가리지 닥치는 대로 밑바닥의 쓰라린 인생을 체험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특히 그는 구두약 공장의 직공, 법률사무소의 고용원, 신문사의 속기사 등의 허드렛일을 전전했다. 그것이 어쩌면 그 자신을 작가로서의 훈련이었을 것이다. 거기 그 열악한 삶의 현장에서 좌절하지 않고 자기 극복을 했다는 것은 참으로 우리가 본받을 만한 일이었다.

  그는 이러한 런던의 시정을 보고 느끼고 체험한 것들을 스케치한 『보즈 소묘집sketches by boz』(1836)으로 바야흐로 문단에 얼굴을 내밀었다. 어느 작가나 시인이란 한 작품으로 세상에 단번에 스타가 되는 일이 아주 없지는 않다. 그런 경우는 다만 행운일 뿐, 오래 가지는 못하는 모래성이 되는 경우가 많다. 한 걸음씩 내딛으며 자기 정체성을 만들어 나가면서 글을 쓰는 아주 열심히 임하는 사람만이 훌륭한 예술인이 될 수가 있다. 열정과 부단한 노력, 자기신뢰의 기반 속에서 생산되는 작품만이 생명력이 길게 된다. 

 
▲ 찰스디킨스 뮤지엄에서 필자     © 독서신문
역시 디킨즈도 『픽윅페이퍼the pickwick papers』(1836)이후 1837년에서 1839년 까지  『올리버 트위스트oliver twist』를 2년간 연재함으로써 일약 작가로서의 명성을 얻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여기에서 만족하지 않고 『크리스마스 캐럴』『데이비드 코퍼필드』『두 도시 이야기』『위대한 유산』등을 잇달아 발표하였다. 그의 쉬지 않는 작품은 마침내 세계인의 가슴 속에 남게 되고 이른바 대문호로의 반열에 서게 되었다. 만년에 그는 거기서 만족하지 않고 출판업자로서 진출하였다. 결과는 다행히 좋아 성공을 하였다.

 그러나 그의 사생활은 그다지 좋지 못했다. 아내와의 별거, 그리고 식구들의 냉대 속에서 그의 만년은 우수의 그림자가 짙게 깔린 생활을 하였다. 가난했던 유년시절과 말년 때문인지 디킨즈의 소설은 주로 빈민간, 약자들, 소외된 시민에 대한 애정에 초점을 두었다는 것이 평론가들의 분석이다.

  고통스러운 삶의 질곡 속에서 이를 극복하고자 부정과 위선을 고발하고 풍자하는 그의 소설은 영국의 당대 현실을 매우 날카롭게 묘사해냈다. 그의 넘치는 스타일, 도도한 문체, 가차 없는 고발과 풍자는 그를 문자 그대로 영국의 위대한 작가의 반열에 세우는데 주저하지 않게 만든다.
 
 그의 『위대한 유산』은 디킨즈 특유의 기지와 애수가 함뿍 묻어있는 소설이다. 그리하여 그의 『위대한 유산』이 근대 리얼리즘의 대표작이라 부를 만큼 훌륭한 작품으로 평가를 받는다. 우리나라의 작가와 비교를 할 수는 없지만 최서해와 같이 밑바닥에서 체험하고 이를 이겨내는 작가였다는 점에서 비슷하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 
 
▲ 찰스디킨스 가계도     © 독서신문
디킨즈 박물관에 들어서다.
  디킨즈 뮤지엄은 대영박물관에서 멀지 않은 런던시 도어티가 48번지에 위치해 있었다. 이 집은 그가 결혼한 그 이듬해 25세의 청년 작가 디킨즈가 그의 아내 캐서린과 장남 찰스와 함께 1837년도에 이사하여 1839년 12월까지 살았던 집이었다. 그는 이 집에서 『픽윅페이퍼the pickwick papers』(1836), 『올리버 트위스트』『니콜라스 니클비』등 많은 작품을 생산해냈던 산실이었다. 비록 이 집은 불과 2년 정도 살았던 짧은 기간이었으나 작가 디킨즈의 체취와 그의 글 향기가 묻어나는 집이었다.

  건물은 지하 1층, 지상3층의 붉은 벽돌로 지었다. 이 건물을 유지 보수하여 후세에 전하기 위해 1902년 디킨즈 기념 사업회는 런던시 의회에 요청하여 <디킨즈가 살던 집>이란 명패를 설치하였다. 그러나 1923년 철거 위기에 처한 건물을 <디킨즈 기념사업회>가 1924년 구입하여 1925년 6월 9일에 박물관으로 새로이 문을 열고 현재까지 운영하고 있다. 또한 이 사업회는 디킨즈와 관련된 광범위한 자료를 수집한다. 뿐만 아니라 디킨즈를 지금도 연구하고 주제별로 상세한 설명을 붙여 연중 다각적인 전시회를 마련하고 있었다.

  이 박물관으로 들어서면 바로 왼쪽으로 식당과 거실이 위치해 있다. 식당은 당대 디킨즈가 신인의 몸으로서 시인, 작가, 화가, 출판업자, 기자 등 많은 사람들을 초청하여 식사를 나누면서 삶과 인생과 문학에 대한 격정을 토로했을 것이다. 
 
▲ 찰스디킨스뮤지엄 표시판     © 독서신문
 식당으로 쓰였던 공간에서는 디킨즈가 사용해왔던 괘종시계, 고가구들, 그의 흉상과 초상화가 진열되어 있었고 한 켠으로는 디킨즈의 가계도, 그리고 디킨즈가 기고했던 잡지, 신문의 삽화와 작품들이 발길을 잡아 이끈다. 한 작가의 많은 자료를 수집한 기념사업회의 노고가 한 눈에 그대로 보였다.

  2층 복도에서도 디킨즈의 생애를 보여주는 그림과 사진이 걸려 있었다. 특히 그의 장례식을 했던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모습까지 순례자에게 보여 주었다. 2층에는 디킨즈의 서재와 집필실로 사용했던 곳이었다. 이곳에는 그의 육필원고, 그리고 출간된 초판본과 서적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방마다 19세기 중엽 빅토리아 시대의 가구와 실내장식이 눈길을 끌었다.

  3층에는 디킨즈 부부의 침실이었는데 지금은 소설낭독과 공연에 관한 유물전시관으로 활용되고 있었다. 지하층에는 디킨즈가 살았을 때는 원래 부엌이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서재로 꾸며져 있고 그 옆에는 와인창고와 세탁창고, 그 옆으로 하인들의 거처가 있었다고 전한다. 당시 부엌이었으나 지금은 서재로 꾸며진 그곳에는 디킨즈가 앉아 있는 듯 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곳이었다.

  1858년 디킨즈는 배우 엘렌터난과의 염문으로 아내와 별거에 들어갔다. 이때부터 디킨즈의 인생은 내리막길을 향하고 있다는 것은 그는 인지하지 못했던 것 같다. 아내가 아닌 여자와의 로맨스가 자신을 갉아먹는 늪으로 빠져들게 한다는 것을 알지 못했던 디킨즈의 처신에 대해 나는 연민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이처럼 디킨즈의 삶은 슬픈 드라마를 보여주는데도 관광객들은 오늘도 발길을 이곳으로 향하고 있다. 디킨즈의 장서가 아직도 열을 지어 보관되어 있는 이곳 디킨즈 하우스는 인류의 가치 있는 삶을 암시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지식의 덩어리로만 착각하고 있었다.
▲ 이재인/한국문인인장박물관장·경기대국문학과교수     ©독서신문

  디킨즈는 1812년에 세상에 태어나 1870년 세상을 떠났다. 그는 이미 갔지만 그의 야심찬 유산으로 인하여 인파가 모여들고 있었다. 우리나라도 작가들이 살던 집을 뮤지엄으로 만들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디킨즈의 집이 작고 아담한 박물관으로서, 시민들의 문화공간으로 만드는 영국인의 지혜를 목도하면서 나는 왜 자꾸 목이 마르는지 모르겠다.

 
읽고 생각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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