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장감을 살리려는 감독의 고민, '변형보다는 생략' - 『양들의 침묵』(토마스 해리스 著)
긴장감을 살리려는 감독의 고민, '변형보다는 생략' - 『양들의 침묵』(토마스 해리스 著)
  • 독서신문
  • 승인 2013.07.29 14:2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영화에는 안 나오는 원작 이야기 <7>
▲ 토마스 해리스의 소설 『The silence of the lambs』 표지, <양들의 침묵> 감독인 조나단 드미와 영화 포스터, 소설 한국어판 표지(왼쪽부터)     

 
 
 
[독서신문] 소설 『양들의 침묵』은 미국에선 1988년 발표됐지만, 한국어 초판은 영화 개봉과 거의 동시인 1991년 소개됐다. 덕분에 당시 한국에 출판된 책의 뒤표지는 여배우 조디 포스터가 떡 하니 차지하고 있어서 지금 시각으론 꽤 어색하다.(물론 당시에는 전혀 어색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마치 영화와 함께 나온 프랜차이즈 같은 느낌이 든다.
당시 꽤 입소문이 난 영화에 끼어든 출판 기획이라 이런 디자인이 나왔을 테다. 현재, 당시 출판사 책은 절판됐고 2006년 이후 새로운 출판사에서 같은 번역자의 번역판이 판매 중이다.

동명의 영화는 개봉 이후 20년이 넘게 흐른 지금도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너무 무섭다’는 소문이 나서 내용을 잘 모르는 어린 분들은 ‘귀신이라도 나오나 보다’ 하고 관람를 꺼릴 정도다. 연쇄살인범이 두 명이나 나와서 살인행각을 펼쳐대는 긴장감이 상당하다. 안소니 홉킨스의 살벌한 눈빛 때문에 아직도 그를 ‘악역 전문 배우’라고 인식하는 사람이 있는데 실상 그는 이후 작품에서 별로 악역을 한 적이 없기에 억울할 수도 있겠다. ‘아카데미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한 최초의 공포영화’라는 기록을 갖고 있을 정도로 영화 전체의 수준도 꽤 높다.
 
소설에 담긴 세밀한 추리과정과 갈등구조를 당연히 영화는 전부 담아내지는 못하고 있다. 이런 한계 속에서도 조나단 드미 감독의 노력은 꽤 돋보이는데, 소설 전체를 몇 차례에 걸쳐 읽으면서 ‘이 장면을 어떻게 영상에 녹여 넣을까?’ 고민하며 머리를 긁어댔을 감독과 작가가 상상될 정도다.

이를테면 소설에서 피해자 식도에서 발견된 애벌레를 본 곤충학자들은 한참 애벌레를 뜯어봐서야 정체를 알아낸다. 약간의 곤충학 지식이 배경으로 깔릴 수밖에 없다. 그런데 영화에선 굉장히 쉽다. “이건 아시아에서 온 거야. 귀한 거지”라는 식이다. 충분히 이해가 간다. 영화를 보며 강의를 듣고 싶은 사람은 없을테니 말이다.

딸을 납치 당한 상원의원이 TV에 호소할 때, 딸의 이름을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자꾸 언급한다. 이에 대한 해석이 소설에선 반 페이지 정도를 차지하는데 영화에선 단 5초 정도다. “피해자를 사람으로 인식하기 위해서군” 하며 말이다. FBI 요원들의 심리학적 이해도에 찬사가 갈 정도.

한니발 렉터(안소니 홉킨스) 박사는 정부 요원의 수사 협조 요구에 꽤 심각한 장난을 치는데 역시 영화에선 그 장난을 제대로 표현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영화만 본 분들은 대부분 렉터 박사가 댄 거짓 정보에 담긴 장난을 제대로 알아챌 수가 없다. 역시 이런 부분은 원작을 읽어야 한다. (‘장난’이라고 써 놨는데, 이게 진짜 제대로 된 ‘장난’임을 느끼기 위해선 번역본에서 더 나아가 영어 원문 소설을 읽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범죄자의 프로파일링을 진행할 단서들을 모아가는 일련의 과정은 소설 전체에 깔려 있어서 이런 부분은 영화에서 제대로 다루지 못한 측면이 많다. 참고로 FBI가 프로파일링 기법을 수사에 공식적으로 도입한 시기는 1972년이라고 한다. 이 소설은 그런 측면에서 프로파일링이라는 기법을 대중에 맛보기로 보여준 최초의 사례 중 하나라는 만큼, 그 영향력으로 최근 수많은 추리 드라마들이 범람하는지도 모르겠다.
 
이렇듯 소설을 영상화하면서 드미 감독은 ‘변형’보다는 ‘생략’의 기법을 주로 활용했다. 그런데 그 생략이 꽤 용의주도하게 잘 이뤄졌다는 평가는 분명히 내릴 수 있다. 흔치 않게 변형이 이뤄진 예와 함께 이 글을 끝내 보자. 여성 상원의원이 TV 호소 발언할 때의 어감 말이다.

영화에서는 “당신이 자비롭다는 것을 세상에 보여줄 기회입니다. 제발 캐서린을 살려주세요”라고 호소하며 끝나 버린다. 그런데 소설에서 이 상원의원은 자신의 권력을 과시하기도 한다. “당신은 나의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나는 우주 병기 문제에도 관여할 정도로 꽤 권력이 있거든요. 당신에게 적이 있다면 제가 물리쳐 드릴게요. 언제든지 제게 전화하세요”라고까지 말하는 것이다.

꽤 차이가 크다. 심각한 의미를 찾을 필요가 없을지도 모르지만, 여차저차 찾아낼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광범위한 문화영향력을 가진 영화 매체에서, 굳이 미국 정치꾼들의 치부를 드러낼 필요는 없지”라고 감독이 생각했을지도 모른다고 하면 너무 억측일까?
 / 홍훈표 작가(exomu@naver.com)
 
 
■자유기고가 홍훈표
·연세대에서 경제학 전공
·서울시국악관현악단 정기연주회 단막뮤지컬 <버무려라 라디오> 극본 집필
·지촌 이진순 선집 편찬요원
·철학우화집 『동그라미씨의 말풍선』 출간 예정


  • 서울특별시 서초구 논현로31길 14 (서울미디어빌딩)
  • 대표전화 : 02-581-4396
  • 팩스 : 02-522-6725
  • 청소년보호책임자 : 권동혁
  • 법인명 : (주)에이원뉴스
  • 제호 : 독서신문
  • 등록번호 : 서울 아 00379
  • 등록일 : 2007-05-28
  • 발행일 : 1970-11-08
  • 발행인 : 방재홍
  • 편집인 : 방두철
  • ⌜열린보도원칙⌟ 당 매체는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 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고충처리인 권동혁 070-4699-7165 kdh@readersnews.com
  • 독서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독서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readersnews.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