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번의 연애
단 한 번의 연애
  • 윤빛나
  • 승인 2012.12.26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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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윤빛나 기자] 1986년 등단해 올해로 등단 25년째를 맞은 성석제가 연애소설을 내놨다. 그런데 의외로 이번 작품이 '소문난 이야기꾼'의 첫 연애소설이다. 사실 저자는 처음부터 연애소설을 의도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단지 여성이 주인공이고, 여성의 성장에 초점을 맞춘 소설을 적어 내려가다 보니 결과적으로 이런 결과물이 산출됐다고 설명했다.

저자는 포항의 구룡포에서 두 달여간 이 작품을 썼다. 그 덕분에 항구 도시의 스산한 분위기와 고래잡이라는 소재가 작품의 지배적인 요소로 등장한다. 그 사이사이에 외환위기 같은 역사적 사실이 틈을 비집고 들어온다. 어떤 개인도 역사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기 때문이다.

소설의 큰 축은 고래잡이배 포수인 아버지를 둔 당찬 여자아이 '민현'과 평범하기론 올림픽 출전감인 남자아이 '세길'의 미묘한 감정 교류, 또 그들의 성장이다. 똑똑하고 인형처럼 신비로운 마력까지 지닌 민현에 비해 평범하기만 한 세길은 그녀가 원할 때 곁에 있어주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다. 첫눈에 반한 초등학교 입학식 날부터 중년의 아저씨가 될 때까지 민현의 다른 남자를 질투하지도 않고, 그녀가 마음대로 떠났다가 돌아와도 마냥 받아준다.

하지만 평범한 연애 소설만은 아니다. 주인공들은 한국의 산업화, 민주화, 세계화를 온몸으로 맞닥뜨린 세대다. 특히 전경이 된 세길이 운동권 세력의 중심에 선 민현을 체포 현장에서 마주치는 장면이 주는 '쿵'하는 느낌은 우리 역사가 선사하는 뼈아픈 혜택이다.

어릴 때부터 가난과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리며 자랐지만, 온갖 난관을 극복하고 세계 굴지의 컨설팅회사 실세로 성장해 정치경제계 거물 자리에 오른 민현은 매우 드문 여주인공 타입이다. 반면 남주인공 세길은 대부분의 연애소설에서 여자들이 도맡았던 지고지순한 기다림, 한결같은 사랑을 품고 있다. 읽는 이로 하여금 새롭다는 생각이 들게 하지만, 사실 성별을 바꿔 보면 매우 고리타분하고 신물 나는 설정이 된다. 우리가 얼마나 고정적인 성별 이데올로기에 갇혀 있었고, 그에 맞춰 살아가려 했는지 깨닫게 되는 대목이다.

19세기 세계문학 중 허먼 멜빌의 『백경』이 거대한 자연에 대한 인간의 도전정신과 극복 과정을 다뤘었다면, 『단 한 번의 연애』는 역으로 인간의 탐욕이 고래와 같은 자연과 생명, 그리고 인류 절대 다수의 삶에 가하는 폭력을 경고하는 형태로 주제의 역전을 이룬다. 19세기 소설의 시대가 보여준 위대한 전통을 고수하면서도 21세기적 윤리와 구원의 의미를 새로운 미학으로 그려낸 셈이다.

평생 단 한 여자만을 사랑했던 한 남자의 간절한 연애 이야기는 세상의 폭력을 극복해 내는 ‘사랑의 가치’를 다시금 절규하는 듯하다. 리드미컬하게 현재와 과거, 그리고 시대상을 빠르게 오가면서 모든 사람들에게는 인간다운 삶을 살 권리가 있다고 말하는 이 작품은 동시에 우리가 극복해야 할 폭력은 무엇이고, 또 무엇을 추구하며 살아야 하는지를 되묻는다.
 
■ 단 한 번의 연애   
성석제 지음 | 휴먼앤북스 펴냄 | 300쪽 | 12,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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