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명학은 오늘날 어떤 의미를 갖는가?(Ⅰ)
양명학은 오늘날 어떤 의미를 갖는가?(Ⅰ)
  • 독서신문
  • 승인 2012.03.26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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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강의 _ 양명학의 정신과 그 발전
[독서신문] 현재 중국에서 양명학은 주자학과 함께 신유가 철학(Neo-Confucianism)의 양대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 주자학은 이학(理學)혹은 정주학(程朱學)이라고도 부르며, 양명학은 심학(心學) 혹은 육왕학(陸王學)이라고도 한다. 주자학은 송 대에 일어나서 처음에는 위학(僞學)이라고 비판받았지만 관학(官學)이 됐고, 양명학은 명 대에 일어나 민간강학(民間講學)을 중심으로 전개됐다. 주자학과 양명학 모두 한국과 일본에서 이를 수용하여 동아시아 철학의 주요한 사조의 하나가 됐다.

먼저 심학이라는 용어에서 알 수 있듯, 양명학은 마음을 근본으로 삼았기 때문에 불교와 같은 이단(異端)의 대상이 됐다. 심지어 정통을 자부하는 주자학자들은 양명학을 불교보다도 더 위험한 학문으로 보았다.
조선시대에 양명학자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일찍이 홍길동전을 쓴 허균(許筠;1569-1618)이 양명학자이며, 『우서(迂書)』를 저술한 농암(聾巖) 유수원(柳壽垣;1694-1755)도 역시 사민평등을 주장한 양명학자이다. 그러나 그들은 주자학자 집권 세력의 탄압을 받아 처형됐다. 현대에 우리는 한국 현대 양명학자 두 분을 기억하지 않을 수 없다. 한 분은 일제 시기에 독립운동을 하면서 양명학의 정신으로 유학을 새롭게 정립하려고 노력했던 백암(白巖) 박은식(朴殷植) 선생이며, 다른 한 분은 하곡학을 계승해 현대 한국양명학의 길을 가르쳐 준 위당(爲堂) 정인보(鄭寅普) 선생이다.
 
▲ 왼쪽부터 백암 박은식과 위당 정인보     © 독서신문

 
 
백암 박은식 VS 위당 정인보

우리나라 현대 양명학의 개척자인 백암 박은식 선생은 19세기는 서구의 시대이지만, 21세기는 동양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백암은 독립운동가로서 제2대 임시정부 대통령을 지냈다. 젊어서는 주자학을 공부했지만 독립운동을 하면서 우리나라의 유학이 새롭게 나아가야 할 길을 모색했다. 이것이 바로 ‘유교구신론’(儒敎求新論)이다.
백암은 당시 서양에서 들어 온 진화론(物競天擇)을 천지만물이 일체라는(天地萬物爲一體) 양명학의 사상에 결합시켜 세계 평화주의를 주장했다. 진화론은 대외적 경쟁원리는 될 수 있어도 동포끼리 또는 개인 사이에는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동포 사이에는 다만 대동(大同)의 원리만이 있다는 것이며, 대동원리는 사덕사리(私德私利)를 극복하고 공덕공리(公德公利)를 추구하여 세계평화에 기여할 수 있는 사상이다.
경쟁의 시대에 그는 종교에서 세계 평화의 기초를 찾았다. 박은식은 양명학에서 유불야 삼교의 합일을 도모했고, 그것은 오늘날 종교 간의 대화에서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한편 조선시대의 하곡학을 계승하고 현대 양명학을 열어준 위당 정인보 선생은 조선시대 주자학에 대해 날카롭게 비판했는데, 주자학을 하는 사람은 오로지 존화파(尊華派) 와 사영파(私營派) 둘뿐이라고 했다. 위당은 진실과 가식(眞假)을 엄격히 구분하는 난곡의 비판 정신을 계승했다.
1930년대 위당이 주축이 돼 조선학 운동을 일으킨 것을 실학이라고 부르는 것을 보면, 실학은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실제적 사실에 근거해 진리를 추구하는 실사구시(實事求是)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실학은 중국이 아닌 우리의 역사 문화 어학 제도 등을 실심으로 연구하는 것이었고 양명학은 위당을 통해 실심실학을 일으키는데 중요한 계기를 만드는 역할을 한 것이다. 위당 이후 실학의 개념은 근대화라는 구호에 맞춰 도덕적 실심이 빠진 이용후생(利用厚生)과 경세치용(經世致用) 등 이익추구의 실학으로 변질됐다.
 
오늘날 양명학이 왜 필요한가?

현대 우리 사회는 모든 면에서 서구화됐다. 그렇지만 생각하는 방식은 여전히 전통적인 것이 많이 남아있다. 따라서 서양의 이론 잣대로만 우리 사회를 잴 수 없고 그렇다고 전통적인 방법으로 우리 사회를 이해할 수도 없다. 양자(兩者)가 다 필요한 시대에 이를 종합할 창조적 사고가 요구되는 때이다.
양명학을 통해 잃어버린 덕성(德性)의 회복이란 화두를 던진다. 덕성이란 한 마디로 말해 감성(感性)과 영성(靈性)을 모두 포함한 도덕적 생명의 이성(理性)을 말한다. 덕성이 없는 감성은 감각적 욕구에 내맡겨 향락과 퇴폐에 빠질 수 있고 덕성이 없는 이성은 도구적 이성으로 전락하여 부정을 저지르는 도구 역할을 할 우려가 있으며, 덕성이 없는 영성은 구복의 신앙에 빠질 우려가 있다.
지금 우리는 양명학의 새로운 부흥, 좀 더 정확히 말해 하곡학의 르네상스가 절실히 필요한 때이다. 과거에 유학은 불교와 노장을 비판적으로 수용한 뒤에야 새로운 철학을 창조했는데, 이것이 신유학(Neo-Confucianism)이다. 오늘날 우리는 서양철학을 비판적으로 수용하면서 동시에 그동안 간신히 이어져 온 하곡학을 현대적으로 해석해서 새로운 철학을 만들어 나갈 필요가 있다.
 
유학의 르네상스 = 신유학

철학은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것이다. 주자학은 송 대에, 양명학은 명 대에 각각 발전하였다. 그러나 주자학과 양명학은 둘 다 신유학(Neo-Confucianism)에 속한다. 이 유학은 공자, 맹자, 순자의 원시유학(原始儒學, Original Confucianism)과도 다르며 한당대(漢唐代)의 경전유학(Classical Confucianism)과도 다르다. 이 유학은 불교와 노장사상을 비판적으로 수용하여 생명 중심의 새로운 유학체계를 만들어 낸 것으로, 유학의 르네상스(文藝復興)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신유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첫째 성학(聖學), 둘째 도통(道統), 셋째 경전(經典), 넷째 서원(書院), 다섯째 정치 제도의 5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성학은 신유학의 주자학이나 양명학을 막론하고 성인(聖人)이 되고자 하는 학문이란 뜻이다. 신유학에서 성인이 되는 길은 자기의 사사로운 욕심을 없애는 것이다. 다시 말해 주자학이나 양명학 모두 성인이 되기 위해 천리를 보존하고 인욕을 없애는 것(存天理 滅人欲)을 수양의 목표로 세워놓은 것이다.
또한 성인이 성인에게 전해준 학문을 도학(道學)이라고 하며, 이들이 전해준 도(道)의 전통을 도통(道統)이라 한다. 도학이란 성학의 다른 표현이다. 조선시대에는 성리학 또는 주자학을 도학이라고 불렀다. 이것은 주자학만이 유학의 정통(Orthodox)이라는 말이자, 그 이외의 학문은 모두 이단(異端)이라는 것이다.
한편 성학을 강의하려면 경전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사서(四書)』이다. 『사서』는 「대학」, 「논어」, 「맹자」, 「중용」을 가리킨다. 그런데 송 대 주자에 이르러 『사서』는 신유학의 새로운 경전으로 태어났는데, 그 이유는 주자가 도통을 강조하기 위함이었다.
경전을 배우고 강의하는 학교를 서원이라고 한다. 신유가는 개인적인 자격으로 서원을 창설했는데, 이 점에서 국가에서 세운 학교와는 성격을 달리한다. 저명한 스승과 그의 제자들이 공부하던 곳이 점차 서원으로 바뀌었다.
또한 신유가는 요순 및 삼대를 이상적 정치 모델로 삼았다. 이것은 성학에서 이미 밝힌 대로 도덕 정치의 실현을 목적으로 한다. 북송시기 정호(程顥)는 10가지 사항을 황제에게 올려 논했는데, 이것이 신유가 정치 이론의 가장 좋은 사례가 됐다.

 / 정리 = 윤빛나 기자
 
* 본고는 한국연구재단이 주최하는 ‘석학인문강좌’(매주 토요일 오후 3시,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정인재 서강대 철학과 명예교수가 ‘양명학의 정신과 그 발전’이라는 주제로 강연한 내용을 발췌 수록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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