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명문가의 독서교육 _ <13> 김성일의 칼을 보는 마음
조선 명문가의 독서교육 _ <13> 김성일의 칼을 보는 마음
  • 독서신문
  • 승인 2011.05.03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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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사람은 공이 있는 반면 실수도 있는 존재다.

조선 선조 때 문신인 김성일(金誠一· 1538∼1593년)도 그렇다. 자가 사순이고 호가 학봉인 김성일은 임진왜란 전에 통신부사로 일본에 다녀온다. 그는 정사인 황윤길과 함께 일본의 동향을 보고한다. 황윤길은 “왜가 반드시 침입할 것”이라고 한데 반해 김성일은 “일본이 침략할 것 같지는 않다”는 보고를 했다.

그러나 김성일이 경상우도병마절도사로 재직하던 1592년에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그는 잘못된 보고로 국가에 누를 끼친 인물이 됐다. 당연히 파직이 됐고, 서울로 소환되는 도중 유성룡의 변호로 구속을 면하게 된다. 사람이 필요했던 시기라 그는 경상우도초유사로 임명됐다.

그는 의병장 곽재우를 만나 격려하고, 함양 산음 단성 삼가 거창 합천 등지를 돌며 의병을 규합했다. 또 모집된 의병을 각 고을에 배치하고, 다른 지역에도 소모관(召募官)을 보내 의병을 모집했다. 또 군량미 확보에 심혈을 기울였다. 관군의 체계화와 의병의 조직화를 꾀했다.
 
▲  임진왜란  © 독서신문


그는 임진왜란 3대첩중의 하나인 진주성 전투에서 진주목사 김시민의 관군이 인근 지역의 의병장들과 조직적인 협력을 가능하게 해 적을 격퇴시키는 데 일익을 담당했다. 이 때 전투에 임하는 그의 비장한 마음을 한 시에서 엿볼 수 있다.
 
촉서루에 오른 세 남자
한잔 술 들이키고 웃으면 남강 물 두고 맹세하네
남강의 푸른 물은 넘실대며 세차게 흐르노니
저 물결 마르지 않듯 우리 혼도 영원하리라

 
그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혼신의 힘을 다해 나라를 구하려고 했다. 경상도 각 지역을 돌려 왜군과의 전투를 독려하던 그는 1593년 병이 깊어지고 죽음을 맞게 된다. 이같은 공로로 인해 그는 ‘불천지위’가 된다. ‘불천지위’는 큰 공훈이 있어 영원히 사당에 모시기를 나라에서 허락한 신위다.

이에 따라 그는 지금까지 제사가 모셔진다. 김성일의 종가는 현재 여러 종가 중의 종가로 인식될 정도로 대대로 이어져온 격식을 유지하고 있다. 
 
김성일의 공부하는 자세는 그의 행장(行狀]에 기록돼 있다.

그의 이색 교육법이 있다. 김성일이 하루는 아들들에게 붓과 벼루가 아닌 칼을 주고 말했다. “칼을 주는 의미를 곰곰이 생각해라. 이는 의리의 중요성을 말한다. 의리와 개인적인 욕심의 관계를 끊어 의리를 취할 일이다. 공부를 하면서 버릴 것을 분명히 하라.”

암기하고 이해하는 공부를 넘어 인간에게 중요한 의리의 삶을 살 것을 강조한 것이다.

/ 이상주(『조선 명문가 독서교육법』 『유머가 통한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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