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이렇게 삽니다
제가 이렇게 삽니다
  • 이재인
  • 승인 2005.11.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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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인 (경기대교수 · 소설가)

▲ 이재인(경기대 교수)     ©독서신문
더러는 나한테 취미가 무엇이냐고 묻습니다. 40년이나 인장(印章)을 모아온 나는 「살아 있는 작가의 인장 수집입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어. 그것은 특별하군요? 그 인장 얻기가 힘들텐데요? 그것 잘 줍디까요?」 자못 놀라운 투였다.


「예. 내가 도장하나 구걸하면 훌륭한 시인이나 작가들은 얼른 내줍니다. 그러나 건방진 사람은 자기가 일류작가라고 눈총을 주기도 합니다. 어느 시인은 이름 있는 시인인데 네까짓 사람에게 그걸 줘…….」하는 눈빛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일류들도 있습니다. 가령 월주 오영수가 그랬고, 미당 서정주가 그랬습니다. 백수 정완영 선생도, 이형기, 김광림, 김창직, 김후란 선생도 쓰시던 인장을 아깝지만 당신에게 준다는 듯이 바로 건네 주셨습니다. 모두가 그들의 유명한 저서에 찍었던 그 인장들입니다.

이른바 베스트셀러 책에 그 진홍빛이 선명한 도장은 그게 바로 시대의 예술입니다. 이는 한 문단사요, 출판사의 한 표징입니다. 이렇게 40년, 이제 600여명의 시인?작가들의 인장을 모았습니다.

2000년 7월 17일 마침내 저의 고향 예산에 작은 규모의 테마 박물관으로 「한국문인인장박물관」을 짓고 거기에다 상설로 인장을 전시했습니다.
지훈, 목월, 석재 선생의 것은 물론 윤재근. 홍기삼, 권영민 선생의 인장도 있습니다. 제가 세계의 여러 나라 도시에 들르면 거기에서 희귀한 인장들을 찾아 다닙니다.

저는 한국의 옥쇄, 역대 왕의 인장, 추사의 것까지 수집했습니다. 저의 인생도 누구 말처럼 9할이 인장수집이라고 해도 거짓은 아닙니다. 저는 돈이 있는 기업가도 아닙니다. 그간 중학교교사, 고등학교교사, 지금이야 그런 대로 월급쟁이 대학의 국문과의 교수입니다.
 아이들을 가르치다가 방학이 되면 몇 푼의 달러를 넣고 배낭여행을 갑니다. 그리고 세계 뒷골목으로 수집 여행을 떠납니다. 그렇게 골동품가게를 순례하다 보면 꿈에 떡처럼 더러는 좋은 인장을 만나기도 합니다. 열정과 사랑을 지니고 개미처럼 인장을 모았습니다. 저는 이제 대학에서 퇴직을 하면 곧바로 평생직장인 「한국문인인장박물관」으로 돌아가야만 합니다.
이 박물관에는 급사도 경비도 없습니다. 저가 관장이며 노동자이고 경비원입니다. 한국문인들의 인장을 지키고 그것을 구경꾼들에게 관람시키고 문단사도 이야기합니다. 박물관은 입장료도 받지 않습니다. 봉사차원에서 만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인장 발달사를 관람할 수 있고 한국문인 인장의 존귀함을 깨우칠 수 있는 교육의 요람이기도 합니다. 저는 이곳에 오는 학생들에게 정비석의 「자유부인」과 청록파의 「청록집」에 찍힌 도장들도 구경시켜 줍니다. 한편 대한민국의 국쇄와 추사 김정희의 「보담재」인장도 손으로 만져보게 합니다. 그리고 외국의 흥미로운 인장들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다양한 교육을 통하여 저는 문학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이게 저의 취미이고 이게 저의 삶입니다. 인장을 줄곧 모으다보니 훌륭한 작가들에게 공간적 문학관을 만들게 된 셈입니다. 저한테는 그 흔한 후원자도 한 사람이 없습니다. 인장을 주시면 그것이 후원자입니다. 박물관 주변에 문학비도 14기나 있어요. 여기에 문인들의 문학비를 세우시고 싶으면 신청하십시오. 검토하여 인장박물관에 빛나는 조형물로 존재토록 하고 싶습니다.

이 인장박물관은 문인은 세상에서 떠나도 인장만큼은 찬란한 문인의 이름과 함께 존재하실 것입니다. 인생은 짧아도 인장은 무한합니다. 이해인 수녀님의 말처럼 「인장, 사랑의 흔적입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좋아하면 그것이 사랑입니다.
                                                                              인장 지킴이 이재인

독서신문 1392호 [2005. 1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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