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 시인과 함께 한 아름다운 가을날에…
고은 시인과 함께 한 아름다운 가을날에…
  • 관리자
  • 승인 2006.11.07 11:4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난 10월 25일 문학의 집·서울에서 주최한 ‘수요문학광장’ 행사에 고은 시인이 참석했다.
 
고은 시인이 입담 좋기로 유명해서인지, 그의 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아서인지 산림문학관 중앙홀에 마련 된 행사장에는 행사 시작 전부터 관중들이 가득 자리를 매웠다.
 
시인은 “가을은 인간에게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여름은 더워서 충동적인 생각만 하지만, 선선한 바람이 불고 나무의 열매가 떨어지는 가을에는 ‘내가 누구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떤 이는 가을이 좋아서 자신의 생일을 가을로 바꾸기도 했다. 니체가 그렇다. 니체는 사람들에게 ‘나는 가을에 태어났다.’고 말하면서 다녔다. 이렇게 좋은, 멋진 가을에 우리가 만났다.”라는 말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고은 시인은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인 이 날 자리에서 “나는 누군가와의 관계없이는 성립되지 않는다. 누구와 누구와의 만남이 관계고, 그런 관계가 인간의 의미다. 누구나 혼자서는 살 수 없다.”며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자아를 발견하라고 말했다.
 
또한 “요즘 발표되는 문학작품들은 너무 자기만 강조한다. 자기를 변명하고 자기 얘기만 잔뜩 늘어놓는다. 계속 이렇게 가면 문학은 세상에서 살 수 없다. 이런 의미에서 문학이 죽어간다. 이는 문학을 하는 사람들에게 책임이 있다. 시인이 ‘시는 죽었다’라고 말하는 것은 자기 책임을 망각하는 거다. 시의 멸망은 시대와 사회의 책임이 아니라 시를 쓰는 사람들의 책임인 것이다.”며 시인으로써 문학의 현실에 대해 우려했고, “지구가 멸망해야 문학도 멸망한다. 지구가 존재하는 한 문학 역시 절대적으로 존재한다. 난 문학을 믿는다.”며 자신의 변함없는 문학에 대한 사랑과 믿음을 표현하기도 했다.
 
고은 시인이 이야기를 마치자 여기저기서 질문이 쏟아졌고, 시인은 솔직하고 재치 있게 답변했다. 다음은 질문과 답변 내용이다.

▶ 작가의 약력을 보면 1952년에 입산해서 10년 뒤인 1962년에 환속했다고 나오는데, 그 배경과 동기가 무엇인가?

▷ 이 얘기는 공식적인 자리에서 처음 하는 것 같다. 나는 4·19를 해인사에서 겪었는데, 주지 스님이 여기에는 고려대장경이 있어서 미군이 폭격할지도 모른다고 빨리 떠나라고 했다. 해인사에는 똑똑한 중이 참 많았는데, 그 때 다들 떠나고 나만 남았다. 내가 해인사 주지 도장을 갖고 있으니까 나한테 해인사를 양도하겠다는 문서에 도장을 찍으라고 협박을 하더라. 내가 안 찍는다고 계속 버티니까 하루는 막걸리를 잔뜩 먹이고 깡패들한테 피투성이가 될 때까지 두들겨 맞았다. 그래도 안 찍었다. 독한 놈이라고 생각했겠지. 그리고 5·16 때 나한테 해인사 주지를 하라고 하더라. 그 때 내가 20대여서 주지대리를 했다. 성철스님이 내 은사인데, 내가 절을 잘 지켰으니 속리산에 있는 법주사 주지로 가라고 하셨다. 그런데 나는 만해 한용운 선생이 하던 불교신문이 하고 싶어서 하루만에도 왕복이 가능한 강화도의 전등사로 가겠다고 했다. 어느 날 마이산에 올라가 내가 종교가냐 예술가냐를 놓고 고민을 했다. 하룻밤을 산에서 자고 새벽이 됐는데, 예술가의 길을 가야겠더라. 그래서 서울로 올라와 아무 것도 없이 시작했다.

▶ 그 동안 쓴 작품이 얼마나 되는지, 시를 잘 쓰기 위한 자기만의 공부비법이 있는지, 술과 담배를 좋아하는지 궁금하다.

▷ 내가 원래 골초였다. 하루에 3갑도 피웠다. 그런데 민주화 운동이 격렬하던 1979년에 노동운동을 하면서 담배와 술을 끊었다. 그 당시 내가 시집이 10만부 씩 판매되는 베스트셀러 작가였고, 대학에서 설문조사를 하면 가장 좋아하는 시인으로 뽑히는 등 분에 넘치는 때였는데, 내 시를 좋아하는 독자들의 정서와 위반됐지만 노동자들과 함께 하고 싶었다. 그리고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는 돈과 시간을 노동자에게 주고 싶어서 담배와 술을 끊었다. 담배도 어렵게 끊었지만 술이 더 어려웠다. 난 술 대학 밖에 나온 게 없는데, 술을 끊으면 내 운명이 끝나는 건데 술을 끊었다. 술 얘기하니까 신이 나네. 다시 술을 먹고 있는데, 죽을 때 끊을 거다. 세상에 집착할게 하나 정도는 있어야지.
 
시는 진실의 근원을 얘기해야하는 거다. 나는 시를 신명으로, 욕망으로 쓴다. 써야겠다는 강박으로 쓰지 않는다. 나오면 쓰고 안나오면 안 쓰면 그만이다. 시는 공부해서 쓰는 게 아니다.
 
나는 내가 쓴 시를 책임 못 진다. 시를 쓰고 나면 바로 잊어버린다. 타인이 기억해주면 되고, 아니면 말고. 내가 그 동안 얼마나 썼는지, 앞으로 얼마나 더 쓸지 나도 모른다. 내가 그 동안 얼마나 먹고 똥을 쌌는지 모르지 않는가?

▶ 노벨문학상의 유력한 후보로 지목됐다가 수상하지 못했다. 그 때의 심정이 어땠나? 또  한국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 난 전혀 노벨문학상에 대한 지식이 없다. 외신과 점치는 사람들에게서 흘러나온 얘기일 뿐이다. 난 모르니까 그 질문은 내 것이 아닌 것 같다. 허나 한국이 노벨문학상을 타야 한다는 강박은 사양하고 싶다. 계절이 자연스럽게 오는 것처럼 때가 되어 자연스럽게 오면 받아들이겠지만, 어거지로 강탈하고 싶지는 않다. 그건 우리 민족의 교양에 어긋난다.  


자신을 만나기 위해 귀한 시간을 내어준 독자들을 위해 시인은 미리 종이에 이야기 거리를 정성스럽게 적어왔다. 그러나 포도주를 한 잔, 두 잔, 세 잔 마신 시인은 종이는 들여다보지도 않은 채로 즉흥적으로 솔직한 이야기들을 털어놓았다.
 
이 날 자리에 참석한 이들은 우리나라의 대표시인 고은의 모습뿐만 아니라, 인간 고은의 자연스러운 모습까지 덤으로 볼 수 있었다. 또한 함께 웃고 떠들면서 낙엽이 떨어지는 쓸쓸한 가을날에 아름다운 추억 하나를 가슴에 새길 수 있었다.



<작가 약력>
-1933년 전북 군산 출생
-1958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
-1960년 첫 시집『피안감성彼岸感性』간행
-미국 하버드대학 옌칭 연구교수 역임, 버클리대 객원교수 역임
-현재, 유네스코 세계 시 아카데미 회원(한국대표)
-작품집:『피안감성』(60), 『해변의 운문집』(66), 『제주가집』(66), 『문의 마을에 가서』(74), 『고은 시선집』(84), 『만인보』(86~90), 『백두산』(87~94), 『머나먼 길』(99), 『어느 바람』(2002) 등. 전 세계 10여개 언어로 50여 권의 시집, 시선집이 간행됨.
-수상: 한국문학작가상 수상(89), 제3회 만해문학상 수상(93), 중앙문화대상 수상(93), 제1회 대산문학상 수상(93) 등

 

[독서신문 송유진 기자]


 


  • 서울특별시 서초구 논현로31길 14 (서울미디어빌딩)
  • 대표전화 : 02-581-4396
  • 팩스 : 02-522-6725
  • 청소년보호책임자 : 권동혁
  • 법인명 : (주)에이원뉴스
  • 제호 : 독서신문
  • 등록번호 : 서울 아 00379
  • 등록일 : 2007-05-28
  • 발행일 : 1970-11-08
  • 발행인 : 방재홍
  • 편집인 : 방두철
  • ⌜열린보도원칙⌟ 당 매체는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 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고충처리인 권동혁 070-4699-7165 kdh@readersnews.com
  • 독서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독서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readersnews.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