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엄마에게 내 이야기를...
젊은 엄마에게 내 이야기를...
  • 이재인
  • 승인 2005.11.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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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인 (경기대교수 · 소설가)
  위층에 살던 젊은 부부가 이사를 갔다. 살림을 팍 줄여서 가는 것 같아 마음이 짠했다. 쓸만한 가전제품, 책상, 그 많은 책들을 쓰레기 분리함에 차곡차곡 정리하는 것을 보는 마음이 애잔해졌다.
  “그 책들은 아직 쓸만하고 아이들 읽혀도 좋은 것들이네요...”
  나는 직업의식을 감추지 못하고 책들을 만지작거렸다. 옆에 섰던 아내가 옆구리를 꾹 질러댔다. 다른 사람들 심기가 혹 불편할지 모르니 자제하라는 의미였다. 그러나 그 이웃의 대답에 나도 모르게 그만 이런 저런 이야기를 늘어놓고 말았다. 그네들의 말인즉, 책을 보관해 봐야 아이들이 생전 들여다보지도 않는데다가 그만 아이들이 독서의 대상으로 삼기에 적절한 시기가 지난 책들이라는 이야기였다. 아이들은 매일 컴퓨터 게임과 영상매체에 매달려 산다는 것이었다.
  어쩌면 그네의 말이 맞는지도 몰랐다. 그러나 영상매체가 필요한 곳이 있고 책은 또 책 나름대로 반드시 필요한 자리가 있는 법이다. 어쩌면 그럴수록 책의 가치는 더욱 있는 법인데 그런 점에 대한 고려를 하지 못하는 그네들이 안타까웠다. 폐휴지 분리수거함에 우르르 쏟아져 내려지는 책들을 보자니 괜히 아깝고 억울했다.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 비타민을 골고루 공급해 주어야 하듯이 성장기에 읽혀할 책들이 반드시 있는 법이다. 정서적 수용성이 매우 높은 유년기와 청소년기에는 제대로 읽은 책 한 권이 한 사람의 일생을 결정하는 나침반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은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을 듯하다.
  나는 아주 가난한 농촌에서 태어났다. 그 때는 국가 전체가 가난했기도 했지만 우리 집의  가난은  그 중에서도 유별난 것이었다. 그런 환경에서 나는 궁핍한 청소년기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마음속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정형의 꿈이 있었고 나를 둘러싼 세계에 대한 의문은 있었으나 그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그것들을 포착하고 실현해야 하는지는 전혀 알 수 없는 상태에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옆 동리에 책을 많이 가진 문학청년의 집에 놀러 가게 되는, ‘운명적인 방문’을 하게 되었었다.
  그는 서라벌 예술대학교의 문예창작과 출신으로 학교를 마치고 중학교 국어 선생 발령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라 했다. 그런데 그의 방을 가득 메우고 있던 책들의 이미지는 환갑을 넘긴 오늘날의 내 머릿속에서도 선명하게 남아 지워지지 않고 있다. 그의 서재는 새 책으로 가득한 읍내 책방과는 뭔가 다른, 묘한 매력적인 분위기를 발산하고 있었다. 그것이 그 책을 직접 선택하여 구입하고 읽고, 책꽂이에 배치해 둔 방주인의 정신세계의 풍경이자, 그 책을 쓴 저자들의 고뇌와 사유가 어울려 빚어내는 하나의 우주이자, 그 우주가 뿜어내는 아우라(aura)라는 것을 알게 되기까지는 꽤 오랜 세월이 걸렸지만 말이다.
  나는 그 후로 그 집에 자주 드나들면서 염치불구하고 책을 빌려다 읽기 시작했다. 무슨 기초나 이론에 바탕을 두고 읽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한마디로 닥치는 대로 읽는 독서방법이었다. 오늘은 이것 내일은 저것, 제목이 맘에 들어서 읽어보기도 했고, 지은이의 이름이 흥미로워서 읽어본 적도 있었다. 그렇게 무작위로 책을 읽다보니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글이 쓰고 싶어졌다. 그리고 썼다.
  그렇게 글을 써서 이곳저곳에 투고를 하곤 했는데 한 번은 어떤 심사위원으로부터 작가로의 가능성이 있다는 격려 편지를 받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시골의 어떤 소년의 지속적인 투고가 가상하여 출판사에서 위로차원에서 보내 준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그 작은 배려는 당시 나에게는 하나의 세계, 하나의 길을 열어 준 사건이 되고 말았다.
  그 후로 나는 그 형이 읽다간 만 책까지 읽어댔고 그렇게 읽다보니 어떤 책은 어떤 흐름 안에 있고 어떤 책은 어떤 계통의 책인지 나름대로 계보를 세울 수 있게 되기까지 이르렀다. 그리고 다음엔 어떤 책을 읽어야 하는지, 어떤 책들이 더욱 가치가 있는지 판단할 수 있는 나름대로의 감식안까지 가지게 되었다. 그러던 중 우리 마을 부잣집 바랭이댁의 막내아들이 서울에서 가져다 놓은 『사상계』라는 잡지를 빌려 읽는 재미에 빠져들었었다.
  나의 독서편력은 그 이후로 서울로 장소를 옮겨 청계천 5가와 6가 사이에서 이루어졌다. 책을 사는 척 서점에 들어가 쪼그리고 앉아 한 나절씩이나 읽어대기도 했고 가끔 돈이 생기면 책방 주인에게 죄스런 마음으로 두어 권을 구입한 적도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나는 책을 읽으며 대학을 졸업했고 지금도 책을 읽고 토론하며, 가르치고 또 책을 쓰는 사람이 되었다.
  때로는 헌 책방에 내다 팔아 지금은 없는 책도 있고, 또 젊은 시절 읽었던 책들이 어디로 갔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 책들도 많이 있지만 내 서가의 책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노라면, 그 책을 샀던 당시에 기억들이 생생히 떠오른다. 저 책은 어디서 어떤 상황에서 샀고, 저 책을 샀을 때 나의 내면 풍경은 어떠했고 하는 것이 이상하게도 그 책과 결부되어 잊어버려지지가 않는다.
  가끔 그 책들을 넘기노라면, 그 옛날의 내가 메모하고 밑줄 그었던 부분들과 마주치곤 한다. 내가 당시에 왜 이런 생각을 하고 왜 여기에다 줄을 그었는지가 전혀 납득이 안 될 때도 있지만 그 책들의 갈피갈피에서 나는 행복을 느끼고 과거의 나와 만나는 즐거움을 음미하곤 한다. 그래서 서가의 내 책들은 그저 책이 아니라 내 인생이자 내 추억의 편린들 그 자체라고 생각하곤 하는 것이다. 지금은 내용을 잊어버린 책들도 많지만 그래도 내가 읽었던 책들이 틀림없이 내 ‘뇌수의 분실’ 한 칸을 여지없이 차지하고 있으리라는 것도 의심하지 않는다.
  책은 그 책을 쓴 사람의 것도 아니고, 책을 소유한 사람의 것도 아니고 그 책을 읽은 사람의 것이라는 다소 진부한 이야기를 이삿짐을 싸면서 책을 버리고 홀홀히 떠난 젊은 부부에게 이 지면을 빌어서나마 꼭 전해주고 싶다.
 
 
 
독서신문 1375호 [2005.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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