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쿠니 가오리의 여자, 여자들
에쿠니 가오리의 여자, 여자들
  • 독서신문
  • 승인 2009.05.12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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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가로부터 듣는 日 유명 작가의 작품세계③
번역가 김난주씨, 에쿠니 가오리를 말하다
 국내 최대 책 잔치라 불리는 ‘서울 국제 도서전’이 이달 13일부터 열린다. 지난해 중국에 이어 일본이 주빈국으로 진행되는 이번 행사에는 요시다 슈이치, 에쿠니 가오리, 츠지 히토나리, 온다 리쿠 등 인기 일본 작가들이 내한해 더욱 흥미를 끌고 있다. ‘2009 국제도서전’을 앞두고 본지에서는 유명 일본 작가들의 작품을 번역한 번역가들로부터 그들의 작품세계를 알아보는 인터뷰를 4회에 걸쳐 진행한다. (편집자 註)
 
▲ 번역가 김난주 씨     © 독서신문

 
얼마 전 대한출판문화협회에서 진행한 설문조사를 통해 한국인들 사이에서 무라카미 하루키의『상실의 시대』가 여전히 인기를 끌고 있으며 에쿠니 가오리는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일본 작가인 것으로 결과가 나타났다. 이 설문조사를 통해서만 보아도 에쿠니 가오리가 한국인들 사이에서 갖고 있는 입지와 영향력, 그리고 팬 층이 얼마나 두터운 지 알 수 있다. 여자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국내에서 유명세를 타는 그녀는 간결한 문체와 여성들의 심리를 잘 묘사하는 필치로 많은 독자들로부터 오랜 시간동안 사랑을 받아왔다.
 
“일본소설을 처음 접하는 분들은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을 먼저 읽으세요. 어렵지 않게 쉽게 읽히면서 마음에 남는 잔잔함도 있습니다” 인터넷 상에 일본소설에 대해 묻는 네티즌에게 흔히 내려지는 답변이다. 그만큼 그녀의 소설은 누구나 거부감 없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다. 나긋나긋한 문체와 단아한 말투. 여성의 모습을 섬세하게 그려낸 그녀의 작품을 읽고 나면 늘 여자 주인공들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그녀의 소설 속 주인공들은 완벽하지 않다. 상처를 안고 가는 사람들, 마음 한 구석 사랑을 간직하고 사는 만큼 외로움도 동일한 크기로 간직한 사람들의 모습은 바로 우리의 모습과 많이 닮았다.『반짝 반짝 빛나는』에서는 알코올 중독자, 호모 남편이 등장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샀고 그녀의 작품 중 이 소설이 가장 가슴에 남는 다는 독자들이 대부분이다. 언뜻 보면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없는 소재를 택하는 듯 하지만 결국엔 완벽에 가까운 공감을 자아내는 이유는 아마도 그녀는 특수한 상황에 처한 등장인물을 통해 ‘우리네 삶’을 이야기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독자들에게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이 이만큼 사랑을 받을 수 있던 것은 중간 매개자의 역할을 무시할 수 없을 듯하다. 그녀의 소설 대부분을 번역한 김난주씨는 에쿠니 가오리 만큼의 팬 층을 확보한 일본문학전문번역가다. 에쿠니 가오리를 비롯해 무라카미 하루키, 요시모토 바나나 등 그녀의 손을 거치지 않은 일본 작가는 거의 없을 만큼 독자가 작품을 선택할 때 ‘어느 일본 작가인가’ 다음으로 ‘김난주의 번역본인가’는 또 하나의 책 선정 기준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한 일본작가의 같은 작품이라도 그녀의 번역본을 읽으려는 독자들이 많은 것은 그만큼 그녀의 번역이 한국인에게 쉽게 읽히고 정서에 잘 부합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을 게다.
 
김난주. 기자와 세대는 다르지만 너무나 ‘쿨’한 모습과 호탕한 웃음, 그리고 사고방식이 너무나 ‘젊어서’ 혹시 따님으로부터 말이 잘 통한다는 말을 듣는지 물어보니 그녀는 ‘통한다’는 말이 싫다고 했다. 그 이유는 ‘통한다’는 말 안에 이미 어느 정도의 거리감이 내포되고 있는 것 같아서란다. “통한다기 보다는… 그냥 아는 것 아닐까요. 딸은 내 자식이고 항상 나의 관심의 대상이고 지속적으로 제가 지켜보면서 가슴 속에 항상 있는 존재인데 통했다는 것은 이미 거리가 어느 정도 있는 거잖아요. 그냥 느낌으로 아는 것 같아요”
 
그런 그녀가 말했다.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을 번역 할 때 별 어려움은 없어요. 에쿠니 가오리가 뭘 말하려는지 ‘느낄 수’ 있으니까요”
 
▲ 번역가 김난주 씨     © 독서신문

 
- 에쿠니 가오리의 작품을 번역하시게 된 계기는 어떻게 되시나요

특별한 계기는 없어요. 처음에 우리나라에 소개된 에쿠니 가오리의 작품은『냉정과 열정사이』지만 사실 그 전부터 다른 작품 번역하고 있었어요. 그 책이『반짝 반짝 빛나는』이에요.『냉정과 열정사이』가 독자들 사이에서 이슈화 되고 있다고 해서 그 책을 먼저 출간하게 된 거죠. 그리고『냉정과 열정사이』가 제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작품이었기 때문에 좋았고요.
 
 
- 직접 느끼시는 에쿠니 가오리의 전반적인 작품세계에 대해 말씀해 주시죠

에쿠니 가오리는 상당히 강점이 있는 작가라고 생각해요. 예를 들면 어떤 작가들은 작품은 굉장히 좋은데 판매가 잘 안 되는 경우가 있잖아요. 하지만 에쿠니 가오리는 작품도 좋으면서 판매도 잘되는, 그 양쪽을 어느 정도 갖추고 있다고 할 수 있죠. 그게 에쿠니 가오리의 강점이 아닌가 싶어요. 작품 면에서는 공감대를 형성하기 쉬운 작품들이 많죠. 그래서 대중성을 획득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고, 특히 ‘에쿠니 가오리’하면 머릿속에 ‘연애’라는 생각이 딱 들잖아요. 연애란 테마를 가지고 그렇게 수많은 작품을 썼는데도 불구하고 독자들이 싫증내지 않는 이유는 어떻게 보아야 하냐는 거죠. 그만큼 에쿠니 가오리는 연애나 사랑에 대해 다양한 형태를 나타낼 수 있는 작가인 것 같아요. 편견이 있을 수 있는 소설 속 상황설정에서도 에쿠니 가오리는 그런 것들로부터 좀 자유롭다고나 할까요. 예를 들면 한 사람이라도 여러 형태의 사랑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하지만 독자들이 그에 대해서 별 거부반응이 없는 거죠. 범인들은 한 사람이 결혼하기 전이나 후나 다양한 형태의 사랑을 경험하는 것에 거부감이 있지만 에쿠니 가오리는 그런 부분은 작품 안에서 자유로워요. 또 동시에 직업군이 다양한 여자들의 연애를 그리니까 똑같은 연애를 그리더라도 작품마다 어느 정도는 특색이 있죠. 그래서 독자들이 꾸준히 에쿠니 가오리의 연애소설을 읽지 않나 싶어요. 그런데 예민한 독자들은 식상하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더라고요. (웃음)

-『냉정과 열정사이』가 출간됐을 때 두 남녀 작가가 한 사랑을 이야기를 전개한다는 것에 독자들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 작품을 처음 대했을 때 느낌이 어떠셨나요

그 소설은 2000년을 겨냥한 밀레니엄 연애소설이었어요. 그런데 양억관 씨는 ‘blue’ 결말이 맘에 안 들었다고 하시더라고요 (양억관 씨는 그녀의 남편이다). 마지막에 남자가 여자를 쫓아가는데 그게 맘에 안 든다는 거예요. 밀레니엄 소설이라는 영향을 받아 희망을 주고자 그렇게 썼겠지만 영 별로였나 봐요. (웃음) 그런데 사실 저는 개인적으로는『반짝 반짝 빛나는』을 제일 좋다고 평가하고『냉정과 열정사이』는 어떻게 보면 기획 상품이니까 그런 면에서는 상당히 성공적인 작품이었다고 생각해요. 또 영화화되기도 했고요.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등장인물 중 마빈이 너무 멋있어서요. (웃음) 그런 남자 어디 안 생기나했다니까요. 예전에도 어떤 인터뷰에서 “쥰세이하고 마빈 중 선택하라면 누구를 선택하겠느냐”고 물었는데 저는 당연히 마빈 선택할 거예요. (웃음)
 
 
▲ 번역가 김난주 씨     ©독서신문

 
- 왜 마빈이 좋으세요?

저는 이미 생활인이잖아요. 꿈꾸는 시절은 지났어요. (웃음) 제 나이 여자들한테 물어보면 아마 거의 다 마빈을 선택할 걸요 쉬고 싶고, 안식하고 싶고, 열정보다는 평온을 원하고, 누군가 나를 보호해 주고 안심시켜주는 것이 좋거든요. 전 지금도 선택하라면 마빈을 선택할거예요. (웃음) 제가 쥰세이를 선택할 나이는 아니죠. 그런 점에서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은 재밌는 것 같아요. 그리고 주인공 여자들이 행복해 보이기도 해요. 마빈이라는 푸근한 언덕과 쥰세이라는 열정, 이 양쪽을 두고 있잖아요. 사랑의 기억도 갖고 있고요. 거기서 헤어 나오지 못해서 매일 여자 주인공이 목욕하지만…. (웃음) 옆에는 항상 자기를 좋아해주는 마빈이 있고 얼마나 행복하겠어요. 이런 것만 봐도 하나의 판타지죠. 어쩌면 이런 것들은 젊은 여성들의 꿈일 수도 있어요. 그리고 제가 또 하나 놀랐던 경험이 있는데 어떤 독자가 아오이를 흉내 낸다고 매일 목욕을 했다는 거예요. 그 얘기를 들으면서 소설이라는 게 정말 대단한 영향력을 사람한테 미치는구나 하고 한 번 더 실감했다니까요.
 
 
- 일부에서는『냉정과 열정사이』가 ‘너무 청승맞다’는 의견도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래요? (웃음) 다양한 시각이 있으니까 그런 의견도 충분히  있을 수 있죠. 그런데 제가 보기엔 거의 판타지인데. (웃음) 어떻게 보면 꿈이기 때문에 청승맞을 수 있는 거죠. 그런데 시간의 흐름이라는 게 속도가 너무 빨라서 10년 전의 소설이 지금 세대의 독자들에게는 청승맞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이번에 출간되는『좌안 우안』은 10년이란 간격을 또 말해주고 있어요. 한 작가가 10년을 두고 10년 전 소설과 10년 후의 모양새가 이렇게 다르구나 싶었다니까요.『좌안 우안』은 주인공이 어렸을 때의 모습부터 시작해서 50대까지 진행되는, 일생을 다루는 소설이에요. 에쿠니 가오리도 점점 세월을 경험하면서 특정한 시간 내지는 시기의 연애모습보다 긴 세월을 두고 사람이 어떤 식으로 사랑하고 헤어지고 죽느냐, 이런 것들을 보게 된 것이겠죠.
 
 
- 한 언론사 인터뷰에서 양억관 씨와 서로의 번역 작업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는데요.『냉정과 열정사이』의 경우 어떻게 보면 공동 작업인데 그때도 전혀 관심을 갖지 않으셨나요. 아니면 주인공들이 전혀 다른 곳에서 다른 삶을 살았던 것처럼 일부러 서로의 글(삶)을 보지 않은 것 인가요

일 자체에 대해서는 서로 관여 하지 않아요. 그리고『냉정과 열정 사이』의 경우 공동 작업이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서로 다른 작품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단지 주인공이 같을 뿐이죠.『좌안 우안』도 처음에 출판사 측과 조금 의견차이가 있었던 부분이 있는데 출판사 쪽에서는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이 똑같은 장면으로 구성해서 서로가 한 말을 일치시켜야 하지 않겠냐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저희는 그것을 왜 일치 시키냐고 했죠. 이 소설은 실시간으로 진행되는 소설도 아니고 어차피 다 회상이니까요. 예를 들어 인사동 거리를 손잡고 걸었다고 해도 훗날 여자가 기억하는 장면이나 대화 같은 것들은 기억에서는 다 다를 수 있잖아요. 그래서 풍경묘사를 굳이 일치시킬 필요 없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죠. 결국 각자가 다른 인물을 가지고 스토리 전개를 해 나간 것이고 두 작가가 두 개의 작품을 쓴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물론 나중에 지명 같은 용어는 의논하고 했지만 그 외에는 각자 했죠. 그런 후에 “여기는 똑같은 장면 나오는데 이건 어떻게 처리할까”하고 의논하긴 했어요. 물론 편지 같은 부분도 기억과는 다른 거니까 그런 건 찾아서 일치시켰죠.
 
 
- 아오이가 냉정을 대표한다면 쥰세이는 열정을 대표하는 데요. 어떻게 보면 보편적인 남녀의 입장과는 상반되기도 합니다. 일반적인 일본인의 남녀 캐릭터는 아닌 것 같은데요.

그건 아마도 에쿠니 가오리가 미국에서 공부한 사람이라서 그럴 거예요. 대학을 미국에서 다녔고 그 이후에도 뉴욕에서 살았기 때문에 아무래도 감각이 조금은 다르겠죠. 그리고 어린이 책 번역도 많이 했기 때문에 서양문화에 굉장히 익숙할 거예요. 그러다 보니 일본사람이 생각하는 일본 남녀에서는 조금 벗어나 있을 수도 있어요. 사실 에쿠니 가오리 소설 속 인물들이 그냥 평범한 일본 남녀는 아니잖아요. 직업도 그렇고요.
 
 
-『반짝 반짝 빛나는』의 주인공들은 범상치 않은 사람들이라 국내에 출간 될 때 어려움이 있었을 것 같은데요, 반응이 어땠나요.

어려움은 전혀 없었어요. 그리고 이 책을 좋아하는 독자들이 참 많아요. 작품 자체가 좋아서 그런 것 같기도 해요. 그리고 실제로 동성연애자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은 아니잖아요. 쇼코하고 무츠키 두 사람의 사랑이야기니까요. 그런 부분에서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샀던 것 같아요.
 
 
-『반짝 반짝 빛나는』의 독자 서평을 읽어보면 공감을 한 독자들이 많습니다. 이 작품이 공감을 얻을 수 있던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예를 들어서 무츠키는 자기가 호모라는 게 하나의 상처인 사람이에요. 쇼코는 알콜 중독자  잖아요. 그런데 그 둘이 결혼까지 해서 부부로 지내는 사이인데 남자는 아내를 사랑함에도 불구하고 다른 남자와 사랑을 나누죠. 그리고 쇼코는 스스로 상처받은 사람인데 남편이 자기를 사랑하지 않고 곤을 좋아하는 것을 용납하거요. 곤에게 리본을 묶어서 무츠키한테 보내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는데 자기 남편이 사랑하는 남자를 다시 자기 남편에게 보내는 것. 그것은 현실 속에서 납득하기 어려운 일인데 어떻게 생각하면 그것도 지순한 사랑이 아닐까 싶어요. 흔히 우리는 소유욕을 많이 이야기하는 데 이 소설 속에는 소유라는 개념이 누구에게도 허락되지 않잖아요. 소유욕이 전혀 무시된 상태죠. 사랑과 결혼, 그리고 소유욕이라는 우리의 일반적인 상식들을 다 깨고 있죠. 그렇지만 둘은 서로를 사랑한다는 거예요. 어떻게 보면 상당히 파격적인 사랑이야기지만 전혀 거부감이 느껴지지 않아요. 그리고 저는 오히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상당히 애처로웠어요. 등장인물들이 하는 사랑은 대단한 에너지가 필요한 사랑의 모습이에요. 쇼코는 무츠키에게 안기고 싶을 텐데 그걸 포기하잖아요. 그래서 많이 애처롭더라고요. 사실 무츠키에게 “왜 너는 곤을 사귀니!” 하고 외치는 건 정말 쉬운 일이예요. 싸우는 건 쉬운 일이지만 용납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죠. “그래 너는 곤을 좋아하는 구나, 나는 너를 좋아하는데”이런 태도로 그 상황을 견딘 쇼코는 이미 알콜 중독자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적어도 제가 보기에는요. 무츠키도 작중에서 의사로 나오죠. 사회적으로 저명한 의사요. 하지만 무기력하게 보이기도 하죠. 사회적인 지위도 있고 결혼생활에 대한 책임이 있는 사람인데 곤과의 관계를 너덜너덜하지 않게 유지해 나가는 작중 무츠키 같은 인물들을 보면 내면의 힘이 강한 사람들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저는 이 작품이 좋아요. 주인공도 겉으로 보기에는 무기력해 보이지만 그런 사랑의 형태를 유지해 나가기란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상투적인 이야기일지 몰라도 현대판 지순한 사랑이야기라고나 할까요. 어느 시대는 이런 지순한 사랑이야기는 있어왔으니까 남자가 남자를 사랑하는 시대에 또 하나의 사랑 이야기인 셈인 거죠.
 
 
▲ 번역가 김난주 씨     ©독서신문

 
- 결국 에쿠니 가오리가 이야기하는 것은 어떤 형태이든 사람의 외로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에쿠니 가오리는 여자잖아요. 궁극적으로는 여자의 외로움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연애도 하고 결혼도 했지만 사실 결혼을 해보면 알겠지만 돌아서면 외로운 부분이 있거든요. 그 부분에 대해서 에쿠니 가오리는 깨어있는 거죠. 나는 그냥 나일 뿐이라는 생각이 있으니까요. 에쿠니 가오리 작품의 여자들은 남자한테 매달리지 않아요. 내가 이 남자하고 헤어져서 외로울지언정 헤어지게 되면 헤어지는 거라는 생각이 바로 그거예요.
<csi 과학수사대>를 보면 한 여자가 자기 딸이 살해당하자 그 범인을 직접 죽이는데 그러면서 하는 말이 있어요 “나는 딸에게 남자한테 몸과 마음은 다 줘도 영혼까지는 주지 말라고 가르쳤다. 그런데 내 딸이 남자한테 영혼을 판 모양이다”라고요. 그 대사를 들었을 때 충격을 받았어요, 영혼까지 주고나면 자기는 없어지는 거잖아요. 에쿠니 가오리는 절대 자기의 핵심인 영혼은 남자에게 주지 않아요. 외로움을 견디는 거죠. 외로움까지 그 남자에게서 채움 받으려고 하면 의지하게 되니까요. 그래서 에쿠니 가오리는 대개 쿨한 여성을 그려내죠.
『장미비파레몬』을 보면 서로 다른 9명의 여자가 이야기를 전개하는 데 그 안에는 사랑과 오해, 질투, 이간질 등 여자들 사이에 발생할 수 있는 온갖 감정이 그려져 있어요. 그런데 딱히 미국여자들의 사고방식이라기보다는 에쿠니 가오리가 지향하는 여자에 대해 적혀있는 듯해요. 여자가 마지막까지 지켜야 할 것들이라고나 할까요? 그런 것들을 사랑을 통해 나타내지 않나 싶어요. 이 책을 보면 한 남자가 바람둥이로 나오는데 아내도 그걸 알아요. 그런데도 일관되게 그 남자와 결혼이라는 형태를 유지하죠. 왜냐하면 그 형태를 깨고 싶지 않아서요. 남자가 바람 피는 걸 알면서도 그냥 견뎌내죠. 그런 세월을 지내다가 어느 순간 이 아내가 딱 결단을 내려요. 자기가 정해놓은 어떤 기준의 선을 넘어서는 순간 뒤도 안돌아보고 남자와 끝내는 거죠. 에쿠니 가오리의 여자들은 남자가 바람 핀다고 해도 자기할 일 다 해요. 직장에서도 변함없이 능력 있는 커리어 우먼으로 일하고, 집안에서도 집안일 하면서요. 그런 시간을 죽 견디다가 어느 순간 안되겠다 싶으면 뒤도 안돌아보는 거죠. 이렇게 에쿠니 가오리의 여자들은 일도 사랑도 열심히 하지만 늘 깨어있는 거죠.
 
 
- 그렇다면 에쿠니 가오리의 작품에 나오는 남자들은 어떤가요?

남자들요? 저 개인적으로는 별로 인상적인 남자들이 없었어요. 에쿠니 가오리가 거의 남자들이 어떤 행동을 보일 때 여자가 어떻게 반응하느냐를 서술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물론 멋지고 다양한 남자들은 많이 나오죠. 그러면서도 사회적으로 유능한데 아내 몰래 연애하는 남자도 나오는가 하면 집안에서는 여자한테 쥐어 사는데 집 밖에서는 다른 여자와 정말 불같이 사랑하는 남자들도 등장하고요. 그런데 기본적으로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은 여자를 중심으로 스토리가 전개된다고 볼 수 있죠.
 
 
- 이 작품의 주인공들에게 있어 ‘반짝 반짝 빛나는 별’같은 존재는 무엇일까요

그 대사가 작품 안에서도 나오지만, 아마도 작품 안에서 등장인물들이 각자 나름대로의 삶을 자신만의 에너지를 갖고 살아가는 것, 그것 같아요. 타협 혹은 양보 하지 않은 상태에서 각자가 그냥 빛나는 거죠. 자칫하면 서로에게 비수와 독약이 될 수 있는데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 속 인물들은 그렇지 않잖아요. 거의 상식을 넘어서죠. 우리가 사는 이 세계를 조금은 넘어서는 이야기니까, 그런 사랑도 그려줘서 고마운 거죠.
 
 
- 이 작품을 통해 독자들이 궁극적으로 무엇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세요

그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 굉장히 다양할 것 같아요. 각자가 어떤 삶을 살고 있느냐에 따라 다 다르겠죠. 자신이 경험한 만큼 공감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누구나 이해는 할 수 있겠지만 실제로 자신이 더 절실히 공감하는 것은 읽는 사람의 경험 한도 안에서의 일들이 아닐까요. 한마디로 독자가 어떤 식으로 반응할 것이냐는 독자마음인 것 같아요.
 
 
- 결혼하신 분이 보시기에『당신의 주말은 몇 개입니까』는 결혼생활을 적절하게 표현한 것 같나요

그게 너무 웃긴 게요, 제가 이 책이 나왔을 때 어떤 여자 분한테 선물을 했는데 그 분은 이 책의 내용이 이해가 안 된다고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결혼 생활에 굉장히 만족하시나 봐요”하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남편이 너무 사랑해주고 잘해줘서 자신은 결혼 생활에 참 만족 한다고요. 그래서 제가 그랬죠. “그럼 됐어요, 그렇게 쭉 사시면 돼요”하고요. (웃음) 그만큼 각자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에 따라 이 책도 다르게 다가올 것 같아요.
 
▲ 번역가 김난주 씨     ©독서신문

 
- 이번에 출간된『좌안 우안』은 어떤 내용인가요

제가 ‘좌안’을 맡았고 양억관 씨가 ‘우안’인데요 ‘좌안’에는 마리라는 여자 주인공이 10대일 때부터 50세 중년의 여자로 성장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렸어요. 마리의 일생이라고 할 수 있죠.
 
 
-『좌안 우안』은 기존의 작품과는 어떤 차이가 있죠

기존 작품과는 많이 다르다고 할 수 있어요. 한 여자애가 어린아이에서 여성으로 성장하고 그렇게 살아가는 이야기를 다룬 것들은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잖아요. 이렇게 일생을 더듬어 가는 식의 이야기는 한 번도 없고 다 특정시기와 특정사건을 다뤘는데, 이 작품은 마리라는 여자가 자기 일생을 어떻게 살아가는지의 이야기를 다루는 만큼 상당히 다른 시도라고 보여져요. 작품의 느낌은 에쿠니 가오리가 원래 갖고 있는 그 느낌에서 크게 변함은 없는 것 같아요. 작가로서의 분위기라든지 여자를 묘사하는 부분은 크게 바뀌지 않았어요. 다만 시간을 두고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식이 많이 바뀐 거죠.
17살의 소녀가 집을 가출하는 것이 첫 장면으로 나오는데 그렇게 주인공은 10대에도 사랑을 하고 20대에도 사랑을 하고 30대에도 사랑을 해요. 그런데 처음 주인공이 집을 나가게 된 이유는 마리가 10살 때 오빠가 자살이에요. 이게 소설의 중요한 시발점이 돼죠. 당시 중학생이면서 굉장히 영특하고 성숙한 오빠의 죽음이 마리에겐 충격으로 다가오는데 그 때 부터 10살짜리의 인생이 뒤틀리는 거죠. 사랑은 했지만 자기의 의사와는 상관없는 사고로 오빠가 죽는 다든지, 사랑하는 사람이 죽는 등의 사건이 일어나 등의 요인 때문에 여자의 인생이 뒤틀리지만 결국 여자 자신이 인생을 만들어 나가는, 그런 이야기 인 것 같아요. 그런데 참 재미있는 게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에서는『냉정과 열정 사이의』마빈 같은 존재가 늘 나타난다는 거예요. 백마 탄 왕자 같은 존재랄까요.
 
 
- 에쿠니 가오리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자기 자신에 대해 깨어있는 여자를 다룬 다는 것 같아요. 항상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 속 여주인공들이 자기 자신에 대해서 깨어있어요.『장미비파레몬』에서도 여자가 느낄 수 있는 감정이 다 나오는데 한 여자가 한 남자를 만나고 싶어서 갈망하지만 결국 그 여자는 자기 자리로 돌아가야 안심을 해요. 남자를 사랑하는 것과는 별도로 자기는 항상 자기 자신이어야 한다는 거죠. 어느 정도 사랑을 채우고 나면 자기자리고 돌아가는 여자들. 자기가 사랑을 하는 그 상황에서도 자기 자신의 장소가 아닌 장소에 있다는 것에 대한 불안감을 자각하고 있어요. 사랑에 빠지는 상태가 거기까지인 거죠.
 
 
- 에쿠니 가오리의 작품을 번역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무엇인가요

번역 자체에 대한 어려움은 없었어요. 낯선 용어나, 감성적인 부분이나 그런 부분에서 어려움은 없었어요. 에쿠니 가오리가 뭘 말하려는지 느낄 수 있으니까요.
 
<황정은 기자> chloe@reader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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