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신문이 2007년 한 해를 보낸 후 뽑은 사자성어는 ‘호질기의’(護疾忌醫)’였다. 잘못함에 대한 충고를 꺼리고 받아들이지 않는 정치권을 비판한 것이다. 호질기의는 중국 북송시대 유학자 주돈이가 『통서(通書)』에서 “요즘 사람들은 병이 있는데도 의사한테 보여 치료받기를 꺼린다.” 즉 잘못이 있어도 다른 사람들이 바로잡아 주는 것을 기뻐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남에게 충고받기를 싫어함을 비유하는 말이다. 또한 숙종실록 권제33 27장을 보면 ‘區區之意 蓋欲使少知歛遜 而護疾忌醫 反肆詆辱 臣竊慨然也 구구지의 개욕사소지감손 이호질기의 반사저욕 신절개연야’ 구구한 신의 의견은 그들로 하여금 조금이나마 염퇴(恬退 : 명리名利에 뜻이 없어 벼슬을 물러남)할 줄 알게 하려는 것이었는데, 호질기의하며 도리어 제멋대로 저욕(비방하여 욕되게 함)하고 있으니, 신은 적이 개연(慨然 : 억울하고 원통하여 몹시 분하다)합니다’ 와 섹스피어 희곡 줄리어스 카이사르 제2막, 카이사르가 집을 나서려하자 그의 아내 calpurnia는 예감이 좋지 않으니 오늘은 원로원에 등청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말하나 충고를 듣지 않자 “alas, my lord, your wisdom is consumed in confidence. 아아, 나의 주인이여, 지나친 자신감은 지혜를 마르게 하는 법이랍니다.”(scene ii. caesar's house. / calpurnia)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 충고를 무시한 카이사르는 브루투스에게 암살당하면서 “et tu brute.(엣 투 브루테): 브루투스 너마저”라며 생명을 뺏기고 마는 대목이 나온다. 여기에서 보듯 예나 지금이나 충고는 기분 좋은 일이 아니었나보다. 다음 사자성어는 토붕와해(土崩瓦解)로 ‘사물이 수습할 수 없을 정도로 손상된 상태 즉, 흙이 붕괴되고 기와가 깨지는 것처럼 사물이 수습할 수 없을 정도로 철저하게 궤멸된 상태’를 이르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일어나야 한다. 가야할 길이 멀기 때문이다.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김수영, 「풀」 전문. 손상되고, 붕괴되고, 철저하게 궤멸된다 해도 언제나 그랬듯 2009년에도 풀들은 일어날 것이다.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 어디 뻘밭 구석이거나/ 썩은 물 웅덩이 같은 데를 기웃거리다가/ 한눈 좀 팔고, 싸움도 한판 하고,/ 지쳐 나자빠져 있다가/ 다급한 사연 들고 달려간 바람이/ 흔들어 깨우면/ 눈 비비며 너는 더디게 온다./ 더디게 더디게 마침내 올 것이 온다./ 너를 보면 눈부셔/ 일어나 맞이할 수가 없다./ 입을 열어 외치지만 소리는 굳어/ 나는 아무것도 미리 알릴 수가 없다./ 가까스로 두 팔을 벌려 껴안아 보는/ 너, 먼 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아. - 이성부, 「봄」전문. 2009년에도 “이기고 돌아”오기 위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희망찬 새해를 맞이하자.
/ 조순옥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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