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살롱]은륜(銀輪)의 추억담
[문화살롱]은륜(銀輪)의 추억담
  • 이재인
  • 승인 2009.01.05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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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인(한국문인인장박물관장·경기대 국문학과교수)     ©독서신문
휘발유 가격이 가파른 상승을 멈추고 약간의 내림세로 돌아서기가 무섭게 다시 자동차가 길거리를 메운다고 뉴스는 전한다. 편리를 도모하기 위해 저마다 자가용을 이용하는 것에 대해 뭐라고 나무라기란 쉽지 않다. 소비가 미덕인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런 말을 하려면 보수적인 구세대의 시대착오적 발상이라고 할 테지만, 궁할 때를 대비하여 절약하고 근검하는 생활태도와 정신으로부터 국가와 사회가 건전하게 발전한다고 우리는 배웠다. 그 말이 지금도 맞는지는 의구심이 들지만 국가재정이 튼실한 선진국, 최첨단의 소비적 자본주의를 구가하는 국가의 국민들도 그 밑바탕에는 몸에 배인 근면과 절약의 정신이 깃들어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이 시점에서 옛날 생각이 난다. 필자는 30여년 전 충청북도 청주(淸州)에 꽤 오래 살았던 적이 있다. 그 때는 무심천(無心川) 둑방길을 내달리던 까까머리 학생들의 자전거들이 아주 많았다. 은륜의 삼천리 자전거를 이용해서 출퇴근을 했던 시절을 나는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겨 가지고 있다. 물론 당시에는 자동차들이 많지 않았고, 다들 자가용을 구입할 경제형편도 아니었으니 당연히 자전거가 개인교통수단이 될 수밖에 없기는 했다.

1980년대 말과 90년대를 지나면서 우리나라의 자가용과 자동차 숫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고 오늘날 자가용의 포화상태는 출퇴근 시간과 주말의 고속도로들이 보여주고, 교통방송이 들려준다. 그러나 자동차의 엄청난 증가속도에 비해 우리는 그에 걸맞는 자동차문화와 의식을 기르지 못했고, 동시에 자동차를 대체할 대안 역시 구비하지 못했다.

이제 조금씩 자전거전용도로를 만들고, 자전거 출퇴근을 캠페인으로 내세우지만 그 결과는 아직 너무도 미미하다. 서울은 말할 것도 없고 수도권이나 지방도시들만 해도 아직 자전거로 시내를 활주하는 것은 거의 익스트림 스포츠에 버금갈 정도의 아드레날린 중독자 아니면 세상에 별 미련이 없는 사람의 행동처럼 보인다.

청주에도 자동차가 불어난 것은 80년대 말이었다. 개발의 바람으로 녹지와 습지가 줄어드는가 싶더니 자고 일어나면 비 온 뒤 죽순이 돋듯 아파트가 솟아났다. 필자는 그 무렵 청주를 떠나 서울로 이주했다. 서울에서 교통지옥, 차량홍수에 멀미를 느낄 때마다 불현듯 청주로 돌아가고 싶었을 때가 많았다. 그리고 한참 후에 다시 청주를 찾았을 때, 나의 향수는 장소에 관한 것이 아니라 이제는 없는 세상, 흘러가버린 과거에 대한 추억이었을 뿐임을 깨달았다. 청주는 중심가만 겨우 알아볼 수 있었을 뿐 시가지 전체가 확장되고 개발되어 옛 기억으로는 길조차 찾을 수 없는 지경이 되어 있었다. 무엇보다 아쉬웠던 것은 그 많던 자전거들이 사라지고 없었다는 것이었다.

기름값이 잠시 주춤했지만 궁극적으로는 지속적인 상승세를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오일전문가들과 경제가의 공통된 의견이다. 이 시점에서 옛날의 자전거를 그리워하는 나의 타령조 추억담은 슬며시 당위성을 확보한다. 공기 좋고 물 좋았던, 자전거가 대다수 많은 학생들의 통학의 수단이었던 도시 청주를 추억하는 것은 한 늙은이의 추억담만은 아니다. 그것은 얼마 전 우리들이 살아왔던 과거이자, 우리의 자식들이 살아가야 할 미래인 것이다.

존 라이언의 『지구를 살리는 7가지 불가사의한 물건들』에 자전거가 맨 앞에 놓이는 것도 우연은 아닐 것이다. 그만큼 자전거는 건강은 물론 지구를 살리는 물건이다. 대체에너지로 움직이는 차량개발을 이미 끝냈으면서도 조속히 시판하지 않는 것 또한 어떠한 변명으로도 통하지 않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그 자전거를 향수를 자극하려는 드라마나 영화 속 이미지로만, 동네 아이들의 놀이터에서만 발견하지 말고 도심 어디에서나 자주 발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 이재인(경기대 교수.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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