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이 사랑한 조세핀2
나폴레옹이 사랑한 조세핀2
  • 신금자
  • 승인 2008.07.25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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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속의 여인들 19회
 
조세핀을 품어준 말메종 성


▲ 신금자[수필가·본지 편집위원]     ©독서신문
말메종 성은 파리 근교에 있었다. 조세핀이 넓은 대지가 딸린 고성을 사들여 취향에 맞게 근사하게 고쳤다. 그녀와 나폴레옹이 오붓하게 쉬기 위한 별궁이었다.

오늘날 말메종 궁의 아름다운 정원과 네오클래식의 세련된 미는 이미 그 시대에 이루어졌다고 한다. 넓은 공원과 황제, 여제의 방과 화실, 음악실, 도서관, 회의실 그리고 앞마당의 정원 등을 갖췄다. 소박한 외관이어서 편안하고 특히 책벌레인 나폴레옹은 잠자기 전이나 목욕 중에도  책을 읽을 정도여서  집안 어디든 작은 서고와 탁자를 놓았다. 절로 분위기는 심플하고 차분했다. 

한편, 조세핀이 좋아하는 공간은 정원이었다. 200여 종의 식물을 처음으로 프랑스에서 경작하게 할 정도로 희귀한 꽃을 수집해서 가꾸었고 장미의 정원에 250여 종의 장미를 심었다. 그 향은 오늘날 전 세계인들이 향유하고 있다해도 지나치지 않다. 다양한 장미꽃잎을 따서 만든 프랑스 향수와 꼬냑에 사람들이 여전히 열광하니 말이다.

나폴레옹이 조세핀에게 선물한 향수라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도 ‘조세핀 향수’는 지금껏 그 향, 그 용기 그대로 연인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말메종 성 정원의 산사나무와 쟈스민, 그리고 키 큰 나무들과 히야신스에 둘러싸인 장미의 에센스가 바로 그 ‘로즈’ 향수다. 이처럼 그리 화려하지 않으면서 이야기가 있고, 휴식이 있는 저택인 말메종을 사랑한 나폴레옹과 조세핀은 이혼하기 전까지 이 곳에서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고 한다.

나폴레옹이 황제에 즉위한 후 이들은 튈르리, 생클루, 퐁텐블로 궁전에서 거주해야 했는데 조세핀은 말메종을 더 많이 그리워했다. 그래서 나폴레옹과 이혼 한 후에 조세핀은 이 곳으로 다시 돌아와 사치와 향락생활을 즐기다가 죽음을 맞았고, 그녀를 잊지 못한 나폴레옹은 유배지로 떠나기 직전까지도 말메종을 찾아 마지막 작별을 나누었다고 한다.

 

조세핀, 나폴레옹과 이별하다

나폴레옹의 위세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그럴수록 나폴레옹은 왕위를 물려줄 핏줄을 간절히 원했다. 자신이 이룩한 왕국을 가문이 영원히 다스리기를 원했다. 그렇잖아도 조세핀을 못마땅해했던 나폴레옹의 가족들도 조세핀과 헤어져 아이를 낳아줄 새 아내를 맞이하라고 성화였다.
 오랜 고심끝에 '나라를 위하여'라는 명분으로 나폴레옹은 이혼을 결심했다. 아이를 낳을 수 없었던 조세핀은 남모르는 슬픔에 잠겼다. 조세핀은 버림받기 싫어서 이런저런 애원을 하다가 나폴레옹의 끝없는 야망을 이해하기로 했다. 마침내 그를 위해 이혼을 결심했다. 이에 기다렸다는 듯한 황실의 공식적인 이혼 발표가 충격적이었지만 조세핀은 의연하게 대처했다. 
 
‘가문의 권익과 프랑스의 후계자를 생산할 능력이 없는 나는 기꺼이 애정과 헌신의 증표를 주려한다’라고 법정에서 확인을 해주었다. 그 증표란 그의 아이를 낳아줄 다른 여자와 결혼할 수 있도록 그를 놓아주는 것을 의미했다.

둘은 서로 미련이 남으면서도 이혼을 강행했다. 곧 조세핀은 거처를 말메종 궁으로 옮겼다. 이에 나폴레옹은 그녀에게 변함없는 사랑을 맹세하고 ‘황후’라는 칭호와 대우를 그대로 할 것과 막대한 연금을 지급하였다. 그리고 죽을 때까지 서신을 교환하고 안위를 걱정해 주었다.

 

나폴레옹의 뒷모습

나폴레옹은 군사적, 정치적 책략에 남다른 감각을 지녔다.
항시 선두에 서서 거센 저항을 몰아내고 진두지휘하는 명장이었다. 그러니 병사들도 전장에서 그를 따랐다. 그들을 다루는 법도 무섭게, 때로는 자상하게 설득을 하는 등, 나폴레옹은 늘 에너지가 넘쳤다. 무엇을 중요시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항상 연구하다보니 목욕 중에도 독서와 명상을 멈추지 않았다고 한다. 일도 공부도 열심이었지만 카멜레온 같은 복잡한 성격으로 존경과 경멸을 동시에 받기도 했다.

전투 전술도 늘 연구하여 일반적으로 쭉 늘어서서 총을 쏘는 방법 대신 한쪽을 무너뜨리고 또 한쪽을 치는 식으로 전 군사력을 활용한 기지로 무적 불패의 신화를 이어갔다. 그 명예와 성공을 전부 프랑스인들에게 돌렸기에 프랑스인들이 한때 그를 기적을 창조해내는 인물로 열광했다.

그러나 끊임없는 명예를 향한 전쟁은 그를 몰락의 길로 이끌었다. 일찍이 노트르담 성당 대관식에서 나폴레옹의 불길한 앞날과 비참한 파멸이 비쳐졌다. 왕관을 쓰기 위해 교황 앞에 무릎 꿇고 나아가느니 왕관을 자기 머리에 손수 쓰는 장면은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막강한 권세를 과시해버린 것이 아닌가. 어렵게 혁명을 이룬 프랑스인들은 어처구니없는 사실에 분노했고 과욕이 부를 파멸이 머지않았음을 예고하고 있었다.

 

나폴레옹과 조세핀은 술이 되고 향수가 되어

나폴레옹은 프랑스와 러시아·영국·프로이센 연합군의 전쟁을 앞두고 조용히 말메종 성을 찾았다. 그가 유배지 엘바 섬에 있을 당시 조세핀은 디프테리아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조세핀의 침대에 앉아 잠시 그녀와의 회상에 잠겼다.

나폴레옹, 그는 결혼을 믿는 보수적인 사내였다.
그런 그도 수많은 여인들과 사랑을 나누었지만 숨을 거두는 마지막 순간에는 ‘조세핀!’을 찾으며 눈을 감았다고 한다. 그리고 나폴레옹이 황제의 자리에서 퇴위되어 엘바 섬으로 유배되자 그와 동행하겠다고 나선 이는 새로 맞은 황후가 아닌 조세핀이었다. 애석하게도 그녀의 뜻은 이뤄지지 않았다. 그로부터 오래지않아 그녀는 디프테리아에 걸려 나폴레옹의 이름을 부르며 죽고 말았다.그들이 이승을 떠나면서 서로의 이름을 부르다 숨을 거뒀듯이 세상 사람들에게도 둘이 맺은 끄나풀이 영원히 존재하는 것은 왜일까?

영웅 나폴레옹만큼 세계에 큰 충격을 준 사람도 드물다. 그 나폴레옹의 혼을 빼놓은 여자가 조세핀이다. 세계의 중심에 우뚝 선 그가 그녀를 사랑하는 것만도 세인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기에 충분하지 않은가. 그에 못지않게  세월이 흐를수록 그녀의 단점들을 막아주고 때로는 그 모든 것을 안고 갔던 것이 오래오래 기억되는 때문이리라. 결코 빛바래지 않는 그 어떤 시골 향수 같은 것 말이다. 
 
누구나 나폴레옹이 조세핀의 수완에 걸려들었다고들 수군댄다. 허나 어쩌면 어린 딸 둘이 딸린 이혼녀 조세핀은 아무리 둘러봐도 기댈 곳이 없는 허허벌판에 서 있었던 셈이다. 그렇다고 누구나 다 사교장으로 달려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시대나 환경이 전혀 다른 사람을 만들어내기도 한다는 것이 아플 뿐이다. 

승리를 상징하는 ‘나폴레옹’ 상표의 술은 그가 조세핀에게 들이부었던 사랑만큼 우리에게도 가깝다. 그러나 혹 요즘 생산을 하지 않는지  ‘camus 조세핀’ 은 구경조차 힘들다. 향긋한 조세핀! 늘씬한 실루엣에서 나온 풍선컵의 코냑 한잔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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