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善)은 이루어진다
선(善)은 이루어진다
  • 이재인
  • 승인 2006.07.19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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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인교수의 문학회고록⑫
 

▲ 이재인 (경기대 국문학과 교수·소설가)

말의 실수와 그 책임으로 태어난 <예산문학 14집>
  학문이나 예술에 전념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성격이 꼼꼼하고 치밀한 경우가 많다. 성격이 활발하고 덜렁거리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도 사실상 많은 부분에서는 자신만의 세계를 갖고 있고 확고한 기준에 따라 말하고 실천하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그러나 나의 경우는 그렇지 못한 편이다. 생각과 말 사이가 가깝고, 말이 빨라 늘 손해를 보는 경우가 많았다. 누구를 도울 일이라든지, 누구에게 무엇을 주는 일이 생길 경우, 말부터 던져 놓아 나중에는 내가 한 말의 약속을 지키느라 허둥대기가 일쑤였고 내 호의의 연출효과가 줄어드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2001년도 세밑이었다. 충남 예산문학회 송년회가 있다고 연락이 왔다. 무슨 송년회나 문인 모임에는 극도로 출입을 자제하는 편이었는데 그날은 내가 예산에 문학관을 짓고 장차 퇴직 후 고향에 내려갈 심산이었기에 선뜻 수락하게 되었다.
 송년회 석상에는 우제봉, 신석근, 최종순, 임종본, 이병헌, 손석철, 하금수, 원강영 외에 한 두 사람이 더 있었다. 이들은 한국문인협회에서 떨어져 나왔기에 독자적으로 책을 내기가 썩 쉬운 형편은 아니었던 것 같았다. 그래서 출판비도 어렵고 모임을 운영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이야기가 자연스레 오갔다. 나는 듣고 있다가 그만,

  “제가 한 번 내어드릴까요? 원고는 됐습니까?”
  “그러믄요, 원고는 거의 모았습니다. 내주실수만 있다면 대환영입지요.”
  “그래요? 제가 내어드리지요...”

  그때 나는 돕고 싶은 마음 반, 자리의 흥겨운 기분 탓으로 호기롭게 큰소리를 치고 말았다. 그리고는 그만 무책임하게 그 말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다.   4개월쯤 후였을 것이다. 부회장 임종본씨와 총무 최종순 시인이 예산문학관으로 보따리를 싸들고 찾아왔다.
 
 “이게 무슨?”
  “아, 예산문학 14집 출판원고입니다.”
  “예? 예산문학 출판원고요?”

  나는 4개월 전에 그들한테 출판비가 없어 문학회 회원들이 책을 낼 수 없다는 말 끝에 내가 출간해 주겠노라고 큰소리를 쳤던 일을 어렵게 기억해 내는데 이르렀다. 그 때 아마도 회원들과 술잔이 꽤나 오갔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분위기 탓에 그만 큰소리를 쳤던 것을 회원들은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던 거였다.

  “그래요?”

  나는 내주겠다고 말을 했으니 당연히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에게는 적잖은 돈 250만원을 들여 <예산문학14집>을 출간하기에 이르렀다. 나의 형편으로서는 적지 않은 액수였지만 나는 후배들에게 말에 대한 책임을 져야 했기에 출판을 맡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분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이제서야 고백하는 것 가운데 하나는, 기꺼운 마음만으로 그 일을 행하지 못했던 것을 죄스럽게 생각한다.

 무엇보다 상황에서 오는 순간적인 감정으로 말을 뱉은 내 자신의 경솔함에 대한 자책이 컸을 터였다. 설혹 그 분들을 돕는다하더라도 좀 더 진지한 생각과 고민 끝에 그렇게 했다면 나의 씁쓸함은 매우 적었거나 없었을지도 모른다. 성서에‘말에 실수가 없으면 완전한 사람이다’라는 말을 떠올리며 자위했으나 이순(耳順)의 나이에도 말이 앞서는 내 인격미달을 스스로 자성하는 계기로 삼았다.

  당시 예산문인협회에서 갈려나온 그들은 재정적으로 어려움이 컸다. 아무튼 예산문학회 회원한테 250만원을 주고 500부 한정판으로 <예산문학 14집>은 내 말의 실수와 그 책임 덕분으로 세상에 태어나게 되었다. 당시 예산문인협회의 회장은 안흥준 회장이었다. 문협회원들은 충청남도지부로부터 발간비 500만원을 지원받아 자신들의 문집을 발간하여 읽히고 있었다.

  나중에 들으니 엉뚱하게도 예산문협과 예산문학회가 하나로 통합되지 못한 것은 ‘이재인의 책임이 크다’는 말들이 들려왔다. 나로서는 뒤통수를 맞는 기분이었다. 어느 편에서든지 출판비 요청이 왔다면 나의 성격상 재정적 후원이 아니더라도 그냥 넘어가지는 못했을 것이 자명한데, 나의 도움이 그들의 분리를 조장하고 돕는 역할을 했다는 것이 내 행위에 대한 비판적 해석들이었다. 사실상 그들의 분리에 나는 아무런 책임도 없었다. 나는 참으로 허탈했다. 다시 한 번 다른 사람을 돕는 일도 신중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뼈저리게 경험했다.

  참으로 다행스럽게 일년 후에 예산문협과 예산문학회는 하나로 통합되었다. 이들이 좋은 글을 많이 쓰고 그 아름다운 글만큼 이들의 삶도 아름답고 행복하기를 기원해본다.


▲ 박물관을 방문한 학생들에게 박물관의 취지를 설명하고 있는 필자

해를 거듭할수록 틀을 갖춰가는 인장박물관
  내 고향 예산군 광시면 운산리는 첩첩산중은 아니지만 우리나라의 농촌지역이 대부분 그렇듯 문화소외지역이다. 주변에 예당저수지와 칠갑산, 수덕사 등이 있지만 설악산이나 경주처럼 이름난 관광지는 아니어서 경제적으로도 풍족한 고읍은 되지 못한다. 내 고향이라는 개인적인 이유 외에도 나는 시골에 문화적 기관을 세우는 것이 작지만 나름대로 의미 있는 문화적 실천이라고 생각했다.

  좋은 위치에 문학관을 짓고 사람들을 자연스레 유인해 문학과 문화의 향취를 제공하는 것도 훌륭한 문화적 전략이지만 구석구석에 박혀 있는 문화기관도 나름대로의 전략적 요충을 마련하는 길이라는 생각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초라하지만 예산문학관을 짓고 문화예술위원회의 행사지원금을 받아 해마다 행사를 치러 왔다.
 물론 그 일이 생각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워낙 산골에 있다보니 사람들을 끌어들이기가 쉽지는 않았고 그 외에도 여러 문제들이 늘 발생했다. 그러나 우공이산(愚公移山)이라는 말처럼 가꾸고 또 확장하기를 계속한다면 언젠가 의미 있는 기관이 되리라 생각하고 있는 편이다.

  현재 충청남도에는 내가 건립한 <한국문인인장박물관/예산문학관> 단 한 곳만이 문학관으로 등록되어 있다. 나는 충남에 문학관의 깃발을 꽂는 기분으로 그 일을 감행했고 지금도 즐거운 마음으로 그 일을 행하고 있다. 다행스레 아들 녀석이 내 가업을 이어받아 지속한다고 하니 그 기관을 통해 더 좋은 일이 일들이 생겨날 것을 기대한다.

  예산 문학관 행사는 예산문인들보다는 내가 대학에서 인솔하고 가는 학생이 훨씬 많다. 서울과 경기도에서 초청된 문인들과 초빙강사들, 지역주민들과 인근의 문인들까지 합치면 제법 협소한 장소가 붐빈다. 그런데 지역의 일부 회원들은 내가 예산문인들을 행사에 동원한다는 소리가 또 귀에 들려왔다. 나는 그런 소리가 듣기 싫어 2005년부터는 나의 단독 주최로 개최하고 있다. 지역에 그런 행사가 있어 참가해 주는 것은 지역의 문인으로서 기쁜 일이고 의미 있는 일일 터이다.

 계제에 평소 이름만 듣고 있던 문인들과의 교분을 쌓을 수도 있고 또한 중앙문인들의 강연을 들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터이다. 전각체험을 하고 문학강연을 하는 것이 지역의 문화적 향취를 높이는데 마이너스가 되는 행사는 아닐 것이다. 그래서 국가기관에서도 문학관 행사를 계속해서 재정적으로 후원해 주는 것 아니겠는가? 그런데도 그것을 ‘동원’이라고 하다니...

  사람은 해석하는 동물이다. 그들의 해석의지가 항상 그런 식은 아닐 것이라고 믿고 싶다. 그들의 그런 비판은 내 행동의 미숙함이나 내 잘못 때문에 발생한 측면이 크리라고 여긴다. 만일 그런 면이 있었다면 나의 악의 없는 불찰 탓이다.
 아무튼 그 후로부터 예산문학축제는 아쉽게도 예산지역 문인은 제외되고 서울과 기호지방의 문인들과 지역 주민, 경기대학교 국문학과, 그리고 문예창작과 학생들이 어울리는 행사가 되었고 좋은 만남의 자리 하나는 축소되고 말았다.

  이제 이 행사는 해를 거듭할수록 유명 문인 초청강연 및 작품 낭송으로 인기가 더해가고 있다. 자리를 빌려 그 동안 예산문학축제에 다녀간 다수의 강사를 소개하고 그 분들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머리 숙여 감사의 뜻을 전한다.
 성찬경, 이흥우, 홍윤기, 김창직, 이근배, 최학, 손종호, 김여정, 양채영, 박상천, 홍신선, 권오운, 박명용, 정종명, 윤해규, 김윤환, 심원섭, 정송전, 양상욱, 구재기, 정미경, 송기원, 이순원 등의 작가가 불원천리하고 참석해 자리를 빛내 주었다.

▲ 박물관에서 행한 사생대회 모습

  이외에도 인장체험 교실을 통하여 초청된 전각가들도 적지 않다. 김영배, 김법영, 이주형, 전상모, 이두희, 김광동, 서동욱, 변원숙, 유해동, 홍우기, 전홍규 등 1급의 전각가, 서각가들을 초빙하여 인장체험 교실을 열기도 하였다.
 전각가들 뿐 만 아니라 서각, 석각을 전공하는 분들과 화가들도 초청하곤 한다. 예술가들과 더불어 아름답게 문화를 가꾸고 발전시켜 가는 지역의 문학관으로의 비전을 가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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