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다은의 독사④ 출판전문인 독서모임 『소풍』
소설가 김다은의 독사④ 출판전문인 독서모임 『소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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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6.06.21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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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사(독서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 독서모임 <독풍>의 간사 김택규씨

독서를 통한 재충전의 공간
  <소풍>은 책에 지친 출판 전문인들이 책 속에서 휴식을 찾고자 매달 한 번씩 만나는 독서모임이다. 이 역설적인 소풍은 매달 첫째 주 화요일 오후 7시 30분, 홍대 앞의 ‘민들레 영토’라는 카페에서 이루어진다. 한 달 내내 원서 · 원고 · 컴퓨터 화면 · 교정지 · 작가들과 실갱이를 벌이느라 눈이 퀭해진 3, 40대 회원들이 카페 안 세미나실로 하나둘 모여든다.

 그들은  김보경(웅진출판사 편집자), 김재현(푸른숲 편집자), 김택규(중국문학 번역가), 박영선(소설가, 일본문학 번역가), 박후란(후마니타스 편집자), 조성웅(김영사 편집자) 등 모두 6명이다. 이들은 틈틈이 짬을 내어 읽은 책 두 권을 편 뒤, 언제 피곤했었냐는 듯 흥미진진한 토론을 시작한다.

 <소풍>의 시작은 2005년 8월, 번역가 박영선 씨와 김택규 씨의 우연한 의기투합에서 비롯되었다. 번역의 강행군에 지쳐 있던 이 두 사람은 자신들이 책의 콘텐츠를 생산하는 실제 주체이면서도 정작 독서의 범위와 독서에 투여하는 시간이 절대 부족하다는 데 아연했다.
 

 더욱이 창조력의 끊임없는 소진인 번역 과정에서 그들은 인문학 독서를 통한 재충전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 이런 사정은 ‘물리적 형태로서의 책’의 생성에 관여하는 편집자들도 마찬가지여서, 두 사람이 우선 독서 소모임을 만든 후 김택규 씨와 친분이 있는 여러 출판사의 문학, 인문 편집자들이 차례로 합류하여 현재의 <소풍>이 탄생했다.

 오늘날 사람들은 ‘독서의 장場’을 형성하는 세 주체로 작가, 독자, 출판사를 연상한다. 하지만 이  세 주체는 일종의 꼭지점에 불과하다. 독서의 장은 꼭지점 그 자체보다는 꼭지점들을 서로 연결하여 텍스트의 원활한 흐름을 가능케 하는 회로에 의해 지탱된다. 그리고 이 회로는 출판 편집자, 번역가, 영업자, 디자이너, 인쇄업자 등이 담당한다.


 따라서 작가와 독자의 소양뿐만 아니라 편집자와 번역가의 소양도 한 시대의 출판, 독서 문화를 결정짓는 주요 변수라고 보는 게 <소풍>의 기본 입장이다. 특히나 전문 작가와 아마추어 작가의 경계가 갈수록 희미해지고, 전체 출판 시장에서 외서의 비중이 높아질 대로 높아진 오늘날에는 더욱 그러하다.

 글쓰기의 기본기가 결여된 원고가 늘어나 편집자의 역량이 더 중요해지고, 외서의 날림 번역이 독서의 장애가 되는 사례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풍>의 번역가, 편집자 회원들은 현대적 독서와 글쓰기의 에피스테메를 이룬 인문학 고전에 대한 즐거운 독서와 토론을 통해 각자 내공을 심화시킴으로써 최종적으로 훌륭한 책의 양산에 이바지하는 것을 주 목적으로 삼고 있다.

 

▲ <소풍>의 회원들이 모여 독서하는 장면

인문학 ‘필독서’ 위주의 토론
 현재까지 <소풍>에서 읽은 책들은 이른바 인문학의 ‘필독서’들이다. 이론서로는 롤랑 바르트,『사랑의 단상』, 미셸 푸코,『성의 역사 1 - 앎의 의지』, 하이데거,『사유란 무엇인가』, 발터 벤야민,『발터 벤야민의 문예이론』, 로제 카이유와,『인간과 성聖』, 바타이유,『에로티즘』 등이 있고, 작품으로는 카프카,『카프카 전집 1 - 변신(단편전집)』, 김승옥,『김승옥 전집 1 - 무진기행』,『김승옥 전집 2 - 환상수첩』, 채영주 등,『한국소설문학대계 97 - 채영주, 공지영, 방현석 편』등이 있다.
 

 초기에는 철학, 사회학 서적만 다뤘지만 회원들 대부분이 문학도였던 전력(?)이 있어 매달 ‘이론서 1권, 작품 1권’을 소화하는 체제를 굳혔다. 이론서와 마찬가지로 유행과 상관없이 작품도 필독서 위주로 읽어 나가고 있다.

 <소풍>은 그야말로 ‘소풍’이다. 회칙은 물론이고 책의 선정, 발제문, 토론 내용의 요약 등 모든 면에서 자유롭기 그지없다. 왜냐하면 그런 작업은 회원들에게 일상이며 일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소풍은 일의 연장선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 그들은 매번 모일 때마다, 필독서이되 자신들이 당장 읽고 싶거나 읽으면 즐거울 것 같은 책을 다음 달 책으로 즉흥적으로 토의, 선정한다.
 

 가끔 ‘오버하는’ 회원이 간략한 발제문을 써오기도 하지만 대부분 각자 책에 줄을 치거나 포스트잇을 붙인 부분을 함께 보며 토론을 한다. 당연히 토론 내용에 대한 공식적인 기록도 없다. 개인적으로 행간이나 메모지에 인상적인 대화를 기록할 뿐이다.
 

 그래도 아무도 형식화를 요구하지 않는다. 회원들 모두 학창 시절에 서클이나 학회에서 발제문과 토론집 더미에 묻혀 살았고 현재도 직장과 다른 모임에서도 똑같은 경험을 지속하고 있으므로 이런 ‘게으름’은 서로 용인된다. <소풍>의 독서와 토론의 전과정에서 회원들은 무형식의 즐거움을 만끽하려 한다.

 

출판관계자들의 순수 모임
 지난 5월의 독서토론에서 <소풍>은 미셸 푸코,『성의 역사 1 - 앎의 의지』와 김승옥 전집 1, 2권을 읽었다. 먼저 회원들은 “담론은 권력에게 지식을 제공해주고 권력은 그 지식을 기반으로 시민을 통치한다”는 푸코의 명제를 18, 19세기 서구 성과학의 형성사에서 확인하면서 오늘날 사회 전체의 성에 대한 ‘떠벌임’으로 인해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무의식적으로 통제 당하는 삶의 미시적 측면들은 무엇인지 이야기했다.
 

 권력의 통제는 금기를 통한 금지에 국한되지 않는다. 금기에 대한 위반의 욕망을 자극, 고무함으로써 사회 전체의 에너지의 흐름을 뜻하는 바대로 이끈다. 하지만 회원들은 푸코에게 있어서 권력이란 법적 표상이 아니라 “출현 영역에 내재하며 하나의 조직된 전체를 구성하는 세력 관계들의 다양성이고, 끊임없는 투쟁과 충돌을 거쳐 그것들을 변화시키고 강화하며 역전시키는 놀이이고, 세력관계들로 하여금 효력을 발휘하게 함과 동시에 국가의 기구들, 법의 명문화, 다양한 헤게모니를 통해 제도상의 결정이 구체적으로 이뤄지게 하는 전략”이라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그렇다면 자본주의적 주체는 권력 밖에서 사유, 행동하는 것이 정녕 불가능하단 말인가?

 다음으로 김승옥 전집의 토론에 접어들어 회원들은 김승옥의 황홀하리만치 섬세하고 기발한 표현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그의, “장문일 때에도 그 간결함과 날카로움이 폐부를 찌르는” 문체는 서사전략상 이질적인 두 스토리의 결합으로 미숙함을 노출시킨 데뷔작 「생명연습」(1962)에서부터 이미 완성되었다는 게 공통의 소감이었다.
 

 또한 60년대와 70년대적 삶에 대한 작가의 도저한 애착과 형상화의 비범함을 이야기했고, 1977년 이상문학상 수상작 「서울의 달빛 0장」에서부터 보이는 급작스러운 범속화에 대해서도 토의했다. 김승옥이 신을 보지 않았다면, 그래서 인도행을 꿈꾸며 펜을 꺾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모두들 최인호의 행로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거라고 말했지만 그 예술적 문체의 예기치 않은 실종에 대해서는 다들 안타까워했다.

 <소풍>은 회원의 자격이 ‘독서를 통한 재충전을 원하는 출판 관련 종사자들’에 한정된 일종의 ‘닫힌’ 모임이다. 하지만 자격이 되는 분들은 누구든 자유로운 참여가 가능하다. 이 모임의 간사격인 김택규 씨의 이메일(shenhua3@hanmail.net)로 참여 의사를 밝히면 자세한 안내를 받을 수 있다고 한다.

▲ 김다은(추계예술대 교수·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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