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비나미술관 이명옥 관장 “전시 기획과 글쓰기는 닮았습니다”
사비나미술관 이명옥 관장 “전시 기획과 글쓰기는 닮았습니다”
  • 한주희 기자
  • 승인 2024.03.1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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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은평구에 위치한 사비나미술관은 국가나 지자체 예산으로 운영하는 국공립미술관도, 대기업 문화재단에서 운영하는 대형 사립미술관도 아니다. 하지만 2016년 전 세계 상위 미술품 컬렉터의 데이터를 보유한 래리스 리스트(Larry's List)에서 조사한 ‘사립미술관보고서’에서 국내 3대 우수미술관으로 선정되는 등 작지만 강한 미술관이다.

사비나미술관을 이끄는 이명옥 관장은 인력과 예산에서 오는 불리함을 ‘최초’라는 수식어로 극복하고 있다. 다른 미술관에서 볼 수 없는 새로운 전시를 기획하기 위해 저녁에는 사람을 거의 만나지 않으며 수도승 같은 삶을 살고 있다고 한다.

그 시간을 글쓰기에 할애하여 30권이 넘는 책을 출간했으며, 20년 동안 다양한 매체에 칼럼을 기고하는 등 왕성한 집필 활동을 이어 나가고 있다. 지난달 13일 사비나미술관을 찾아가 전시 기획과 글쓰기는 닮았다고 말하는 이명옥 관장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사비나미술관 이명옥 관장
사비나미술관 이명옥 관장 [사진=안경선 기자]

Q. 독서신문 독자를 위해 간단한 인사와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사비나미술관 관장이자 신문이나 잡지에 기고하는 칼럼니스트이며 미술 책 저자인 이명옥입니다. 그 외에도 몇 개의 일을 하고 있는데요. 시각 예술 저작권자의 저작권 보호 및 육성을 위해서 설립한 단체인 한국시각예술저작권연합회 회장을 맡고 있습니다. 또한 과학문화융합포럼의 공동대표로도 활동하고 있는데요. 과학문화융합포럼은 과학계 인사와 전문 사회학자,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모여서 융복합 콘텐츠를 창작하고 보급하는 소통의 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Q. 사비나미술관에 대해서도 소개해주세요.

사비나미술관은 1996년에 설립된 사립미술관입니다. 제1종 등록미술관이고요. 서울 은평구 진관동에 위치해 있습니다. 제가 사비나미술관을 외부에 소개할 때 ‘히든 챔피언’에 비유합니다. ‘히든 챔피언’은 독일의 경영학자인 헤르만 지몬이 만든 용어인데요. 작지만 강한 기업을 말합니다. 즉 강소 기업이라고 할 수 있죠. 저희 사비나미술관은 국가나 지자체 예산으로 운영되는 국공립미술관이 아니고요. 대기업 문화재단에서 운영하는 대형 사립미술관도 아닙니다. 설립자인 제가 운영하는 미술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미술관과 차별화에 성공하지 않으면 예산, 인력 구조에서 굉장히 불리한 여건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Q. 지금까지 사비나미술관을 이끌어 오시면서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것 같은데요.

그래서 다른 미술관에서 생각하지 못했던, 관심이 없었던, 또 관심이 있더라도 시도하지 못했던 콘텐츠들을 개발해야 했습니다. 저희 사비나미술관의 큰 특징 중의 하나가 최초의 사례가 많다는 것인데요.

예를 들어 2005년에 최초로 과학계 연구원들과 예술가들이 협업해 ‘KIST 창립 40주년 기념전 - ArtiST PROJECT’을 개최했고, 2011년에 한국미술인으로는 최초로 파리 오르세미술관에서 개최한 ‘구글 아트 엔 컬처“ 론칭 행사에 참석해 98명의 한국 작가들의 작품을 ‘구글아트프로젝트’에 소개하는 협약서를 체결했습니다.

2017년에는 자기 자신의 사진을 스스로 찍는 셀피(selfie) 현상을 통해 21세기 현대인의 정체성을 탐구하는 전시를 선보이기도 했습니다. 그 성과를 인정받아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예술경영지원센터가 주관한 ‘2017 예술경영 컨퍼런스’에서 예술경영대상을 수상했습니다. 미술관으로서는 최초의 대상 수상이었기 에 더욱더 뜻깊다고 할 수 있습니다.

Q. 매번 새로운 전시를 구상하셔야 하는데, 주로 어디서 영감을 얻으시나요?

영감은 어디에서나 온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책일 수도 있고 영화일 수도 있고 사람과의 대화일 수도 있고 또 자연일 수도 있죠. 저 같은 경우는 작업을 할 때 에너지를 집중하는 편이에요. 그래서 정말 중요한 모임이라 하더라도 저녁 시간에는 사람을 거의 만나지 않습니다. 체력이 약하고 마른 체형이라 외부에서 에너지를 소모해버리면 두뇌 회전이 안 되고 아이디어를 내기가 어려워지더라고요.

그리고 마치 사랑에 빠진 것처럼 하루 종일 그 생각만 합니다. 5월 전시 주제가 ‘눈물의 힘’이라 요즘엔 눈물에 대해 생각하고 있어요. 피카소가 자신이 사랑했던 여인 ‘도라 마르’를 그린 작품에도 스페인 내전의 참상을 담은 ‘게르니카’에도 눈물이 있죠. 수많은 고전 소설과 영화에도 있는 건 물론이고요.

서울 은평구에 위치한 사비나미술관 [사진=사비나미술관]
서울 은평구에 위치한 사비나미술관 [사진=사비나미술관]

Q. 가장 기억에 남는 전시는 무엇인가요?

28년 동안 기획했던 전시들 하나하나 다 애정을 가지고 있어요. 1996년에 사비나미술관을 설립했을 때부터 인간의 해석전, 밤의 풍경전, 이발소 그림전, 심지어 반려견을 데리고 오는 개전 등 새로운 전시를 시도했어요. 이 전시들 모두 시대가 바라는 전시였다고 생각하고, 시대가 바라지만 미처 포착하지 못했던 것들을 대신 포착했다고 생각해요. 그 안에서 대중적으로 성공한 전시가 있고 그렇지 않은 전시가 있지만, 주제가 제각각 다르기 때문에 비교하기 어려워요.

Q. 전시 작가를 선정하는 기준은 무엇인가요?

이 시대가 무엇을 요구하는가를 가장 먼저 생각한 뒤 작가를 선정해요. 이번에 이길래 작가를 섭외하게 된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그가 작품을 통해 생태계에 대해 이야기하기 때문이에요. 이전에도 재난과 가족을 다룬 홍순명 개인전, 멸종 위기 동물을을 주제로 한 고상우 전시 등을 개최했어요. 예술가들이야말로 지금 우리 시대에 무엇이 필요한지를 가장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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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비나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이길래 개인전 <늘 푸른 생명의 원천에 뿌리를 내리다 - 생명의 그물망> [사진=안경선 기자]

Q. 2024년도에 가장 역점을 두고 있는 전시는 무엇인가요?

덴마크 수교전으로 그래피티 아티스트 허스크 밋나븐의 전시를 준비하고 있어요. 지금까지 조금 무거운 주제를 다뤘다면 가벼우면서도 유머가 있는 이번 전시를 통해 재미있게 한 번 놀아보려고 해요.

Q. 집필 활동도 왕성히 하시고 계시는데요. 20년 넘게 꾸준히 다양한 매체에 칼럼을 기고하시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칼럼을 읽는 독자는 학력도 취향도 천차만별이잖아요. 그래서 독자들에게 어떻게 지식과 재미를 동시에 줄 수 있느냐를 가장 많이 고민하게 되는데, 전시를 기획할 때도 마찬가지거든요. 예를 들어 사비나미술관에서 지난 1월 말부터 이길래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데, 이길래라는 작가를 어떻게 하면 대중들한테 잘 전달할 수 있을 것인가. 제가 늘 고민하는 부분이 이런 것이거든요. 그래서 칼럼을 쓰면 전시 아이템을 선정하고 그 아이템을 풀어나가는 데 도움이 많이 돼요.

또한 저에게 주어진 지면이 한정돼 있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군더더기를 떼는 훈련을 할 수 있어요. 미술을 쉽고 재미있게 들려주려면 도저히 8매 가지고 안 될 때가 있어요. 예를 들어 아방가르드라는 용어를 제대로 설명하려고 하면 끝이 없잖아요. 이럴 때 도저히 줄일 수 없겠다 싶어도 줄이고 또 줄이면 결국 어떻게든 줄여지더라고요. 이 과정이 추상화를 그리는 과정과 비슷해 재밌어요.

사비나미술관 이명옥 관장
사비나미술관 이명옥 관장 [사진=안경선 기자]

Q. 30권이 넘는 저서를 출간하셨는데요. 신작 『그림 감상도 공부가 필요합니다』를 쓰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강연에 나가서 마지막에 질의응답을 받으면 매번 나오는 질문이 있어요. 어떻게 하면 현대미술을 이해할 수 있느냐고요. 그럴 때마다 저는 전시장에 몇 번 가시냐고 물어요. 평생에 한두 번 가는데 갑자기 작품이 이해되는 건 거의 불가능하잖아요. 사람들이 미술 감상을 너무 쉽게 생각하고, 그게 안 됐을 경우에 미술은 어렵다고 토로하는 것에 대해 일침을 놓고 싶었어요. 책의 제목처럼 미술 감상에도 공부가 필요하다는 거죠. 이탈리아 미술 사학자이자 비평가인 마테오 마랑고니는 각각의 예술은 끈질긴 공부와 수고를 치르는 사람만이 그런 음미할 수 있는 독특하고 고유한 언어를 지니고 있다고 주장했는데, 이 말에 굉장히 공감해요.

Q. 마지막으로 독서신문 독자에게 추천해 주고 싶은 책이 있나요?

시간 날 때마다 로마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을 틈틈이 보는 편인데, 여기에 “잠시 후면 너는 모든 것을 잊을 것이고, 잠시 후면 모든 것이 너를 잊게 될 것이다”라는 구절이 있어요. 시간이 흘러 내가 존재하지 않게 되고 나를 기억하는 사람조차 없어진다면 나 자신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게 되는 거잖아요. 이 말을 곱씹다 보면 항상 내가 지금 추구하는 이 욕망이 과연 타당한가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끊임없이 저를 가다듬게 돼요. 또한 빈센트 반 고흐의 서간집을 굉장히 좋아해요. “아름다운 것에 가능한 한 많이 감탄하렴. 사람들은 아름다운 것에 충분히 감탄하며 살지 못하고 있거든”과 같이 밑줄 긋고 싶은 문장이 많이 나오거든요.

[독서신문 한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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