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노력했고,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내 앞에 펼쳐진 세상이 달라질 줄 알았다. 하지만 대학에 와서도 다를 바 없는 풍경이 펼쳐졌다. 친구들은 좋은 직장을 갖기 위해, 이력서에 한 줄이라도 더 그럴듯한 스펙을 적기 위해 끝없이 달리고 있었다. 이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비슷한 모양새로 재배되는 온실 속 화초였다. 너무 거대해서 온실을 세상이라 착각했을 뿐. 계속 이렇게 살아도 될까? 어딘가에는 사회가 요구하는 획일적인 삶이 아닌 보다 다양한 삶의 방식이 있지 않을까?”
-『이상하고 아름다운 판타지 촌 라이프』 中
우리나라는 명실상부한 ‘서울 공화국’이다. 수도권에 거주하는 인구 비율은 2019년 전체의 50%를 넘겼고, 매년 증가하고 있다. 지방에서는 청년들이 사라진다고 울상이다. 막상 청년들의 ‘서울살이’는 그리 윤택하지 못하다. 내 집 마련은 언감생심, 높은 생활비를 겨우 감당하며 끝없이 계속되는 경쟁 속에서 하루하루 소진돼 가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서울 언저리를 떠나지 못한다. 인프라와 일자리 대부분이 서울에 몰려 있는 상황, 과연 우리 사회는 그들에게 ‘다른 삶’을 상상하고 시도해 볼 기회를 제공했을까.
책 『이상하고 아름다운 판타지 촌 라이프』(남해의봄날)은 지방소멸을 이야기하는 세상에 도전장을 내민 청년들의 이야기다. 저자들은 경남 남해군 두모마을에 농촌 이주를 경험해 보고 싶은 청년들을 위해 일정 기간 주거를 비롯한 기본 인프라를 제공하는 ‘팜프라촌’을 세우고, 3년간 30여명이 또래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자신에게 맞는 ‘다른 삶’을 모색할 수 있도록 도왔다.
이들이 2018년 귀촌 관심 청년 300명을 대상으로 귀촌을 망설이는 이유를 설문조사한 결과, 생계뿐만 아니라 도시에서와는 다른 삶을 꾸려 나가는 데 필요한 기술을 배우고, 당장 정착하지 않더라도 또래들과 함께 ‘촌 라이프’를 실험하고 도전해 볼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응답이 나왔다. 이주를 한다면 도시와 똑같은 방식으로 살아가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실제로 ‘팜프라촌’에 입주한 청년들은 촌에서의 생계를 고민해 보자는 취지의 ‘벌어 보기’ 프로젝트에서 ‘어떻게 돈을 벌지’보다 ‘내가 앞으로 무엇을 하며 살아가고 싶은지’에 더 집중했다.
일본의 철학 연구가 우치다 타츠루는 책 『로컬로 턴!』(이숲)에서 저성장시대에 지친 청년들이 도쿄를 떠나 지방으로 향하는 경향을 다루면서, 이들이 도시의 경쟁 시스템 속에서는 “이미 다른 사람들이 하고 있는 분야에서 내 순위는 어느 정도인지”를 우선으로 고려하지만, 지방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할 때는 “나만이 할 수 있는 일”과 그 가치를 찾아간다고 분석했다.
물론 잠시 촌에 살아 본 경험이 귀촌으로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팜프라촌’에 다녀간 청년들의 현재 행보는 다양하다. 남해에 정착해 가게나 숙소를 차리기도 했고, 타 지역에서 귀촌‧귀농을 선택하기도 했다. 귀촌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 둔 채 도시의 삶으로 돌아간 이들도 있다. 하지만 ‘다른 삶’의 가능성을 상상하고, 경험한 뒤의 삶은 분명 이전과는 다르다.
저자들은 말한다. “무조건 전통 방식으로 산다거나 자연으로 회귀하는 것이 아니라 균형을 잡고, 도시와 촌을 연결해 지속 가능한 내일을 만들고 싶었다”고. 청년들이 “지역을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갈 수 있는 기회의 땅으로 여긴다면” 미래는 있을 거라고. 그러려면 일단 서로 완전히 단절된 도시와 지방 사이에 관계의 씨앗을 심는 일이 급선무라는 것이다.
[독서신문 김혜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