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게임? 인간의 본성을 알 수 있는 실험장!
위험한 게임? 인간의 본성을 알 수 있는 실험장!
  • 안지섭 기자
  • 승인 2022.09.24 0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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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마인크래프트' 플레이 화면

게임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고 있다. 그동안 한국 사회는 게임의 폭력성과 선정성, 중독성에 집중해 게임을 경계하자는 목소리가 강했지만, 이제는 e-스포츠의 유행과 메타버스 출현 등으로 문화와 놀이의 영역으로 인정하고 있다. 게임의 규제 완화가 국정의 주요 논의 안건으로 상정될 정도다. 만약, 게임을 통해 인간의 심리와 사회 현상까지 탐구할 수 있다면, 게임의 가치는 조금 더 높아질 수 있지 않을까.

책 『게임의 사회학』은 게임이 종말과 팬데믹, 조직 경영 등 여러 사회현상을 실험하는 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책의 저자는 게임 회사 엔씨소프트에서 일하는 이은조 데이터 분석 및 엔지니어링 조직 실장. 그는 “가상 세계의 일들이 모두 기록되는 로그 데이터는 현실 세계에서 얻을 수 있는 데이터보다 훨씬 정밀하기에 인간의 행동과 사회 현상을 구체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귀한 자료”라며 “게임 데이터를 폭넓게 활용한다면 우리가 현실 세계의 사회, 경제, 문화 등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되리라 확신한다”고 말한다.

책에서 가장 먼저 제시되는 예는 ‘파이널판타지 14’와 ‘심즈 온라인’, 그리고 ‘아키에이지’다. 이 게임들은 가상 세계를 통해 유저들에게 종말을 대리 체험하게 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특히 평범한 일상을 시뮬레이션 하는 ‘심즈 온라인’에서는 서비스 종료일에 그 게임을 즐기던 사람들이 최후의 순간을 함께하는 광경이 나타났는데, 스탠퍼드 대학의 과학시술사 교수 헨리 로우드는 그들이 마지막 순간에 어떻게 행동하는지 조사하기로 했다.

헨리 교수는 유저들이 서비스 종료를 결정한 게임 회사의 독단적인 결정에 분노하거나 최후의 순간에 마음껏 가상 세계를 짓밟는 등의 폭력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을까 걱정했다. 혹은 모든 게 끝이라는 생각에 접속을 끊고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라 예상했다. 그런데 결과는 뜻밖이었다. 그동안 서비스에 애착을 갖고 있던 사람들은 종료 순간에 가상 세계에 모여 그동안의 추억을 나누고 서비스가 종료되는 순간 마침내 텅 빈 화면에 접속 오류 메시지 창이 뜨는 모습을 같이 지켜봤다.

비슷한 모습은 ‘아키에이지’에서도 관찰됐다. 2011년 말부터 2012년 초까지 진행된 베타테스트 기간 동안 고려대 김휘강 교수 연구실은 유저들이 이 기간동안 어떤 행동을 보이는지 분석했다. 책에 따르면 서비스 종료가 가까울수록 함께 임무를 수행할 새로운 모임을 구하는 내용은 줄었지만, 기존 모임의 구성원들과 주고받는 대화량은 점점 늘었다. 이에 대해 저자는 “심즈 온라인의 사용자들이 그러했듯 아키에이지의 사용자들도 종말을 앞둔 남은 시간을 새로운 인간관계를 쌓는 데 낭비하기보다는 이미 친분이 있던 사람들과 추억을 나누며 보내고 싶었던 듯 하다”고 추측한다.

지금까지가 끝을 알리는 종말의 순간이었다면, 새로운 세상의 시작을 알리는 ‘혁명’의 순간도 게임에서 나왔다. 온라인 게임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잘 알고 있는 ‘바츠해방전쟁’이다. 이는 게임 ‘리니지2’에서 강한 힘을 바탕으로 가상 세계 속 이권을 독점하고 폭력을 행사하던 혈맹 ‘드래건나이트(이하 DK)’에 힘 없는 유저들이 대항해 승리한 사건을 말한다. 게임 속 세상에서 DK 혈맹은 많은 성을 차지한 후 높은 세율을 책정해 그곳에서 게임하는 유저들의 돈을 걷어갔는데, 당연히 그들이 부유해지는 만큼, 유저들은 가난해질 수밖에 없었다. 결국, DK 혈맹에 대항하는 다른 혈맹이 많아졌고, 이는 결국 대항군의 승리로 이어졌다.

저자는 “바츠해방전쟁은 전쟁에 참여한 혈맹이나 연합이 어떻게 결성되었고 반목하며 쇠퇴했는지 전체 과정이 짧은 기간 동안 극적이고 빠르게 진행됐기 때문에, 마치 세계사에 등장하는 주요 국가나 권력의 흥망성쇠를 압축해 보는 듯하다”며 “더 나아가 이것은 개개인이 모여 형성되는 사회조직이 어떤 목적으로 결성되고 성장하며 쇠퇴하고 결국 해체되는지 이해하는 데 좋은 사례가 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MMORPG(대규모 멀티 플레이어 온라인 롤 플레잉 게임) 속 사회조직을 연구하는 것은 현실 세계의 조직에 관한 연구 못지않게 관심을 가질 만한 주제가 될 듯하다”고 덧붙인다.

이외에도 책에서는 게임 전역에 팬데믹 상황이 연출된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아이템 현금거래와 가상 재화에 관한 경제학적 논의의 시작을 알린 ‘울티마 온라인’ 등 사회적 연구의 대상이 된 게임의 사례들을 다수 찾아볼 수 있다.

책이 말하듯, 게임은 ‘가상 세계’만의 공간은 아니다. 그 안에서 뛰노는 존재는 현실 세계 속 인간의 사상과 의지가 투영된 또 하나의 인간이다. 게임에 대한 연구가 곧 현재 우리가 사는 곳에 대한 연구이기도 한 이유이다.

[독서신문 안지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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