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적을수록 넓어지는 ‘선택의 폭’
‘돈’이 적을수록 넓어지는 ‘선택의 폭’
  • 김혜경 기자
  • 승인 2022.08.27 0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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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다. 이렇게 많이 썼을 리가 없는데?”

신용카드를 쓰는 사람들이라면 대부분 공감할 것이다. 미미한 지출이 쌓여 어느새 거대한 숫자가 되고, 월급은 통장을 스쳐 지나간다. 가파르게 오르는 물가와 금리는 더욱 숨통을 조여 온다. 책 『소비단식 일기』의 저자 역시 한도가 초과되기 일보직전인 카드 대금 문자를 받을 때마다 “미쳤어”라고 중얼거리며 자괴감에 빠졌다. 지출을 줄여 보려고 노력했지만 습관을 고치기는 쉽지 않았다. 결국 특단의 조치를 결심했다. 바로 ‘소비단식(spending fast)’.

소비단식이란, 정해진 기간 동안 소비를 아예 끊는 것이다. 저자가 세운 기본 원칙은 다음과 같다. 관리비는 물론이고 음식이나 생필품에는 돈을 쓴다. 단 필요한지 충분히 고민한 후에, 가진 것을 다 썼을 때 산다. 경조사나 사람들을 만날 때는 합리적인 선에서 돈을 쓴다. 한 번 실패했다고 포기하지 않는다. 소비단식을 시작한 지 6개월 만에 월 지출이 10분의 1 규모로 줄었다. 약 2년간 좌충우돌한 끝에 1,600만원이던 빚은 0원이 됐고, 약간의 저축도 생겼다.

소비단식의 핵심은 월급이 아닌 예산에 맞춰 생활하는 것이다. 저자는 일단 3개월 정도 돈을 얼마나 쓰는지 기록하며 그 금액을 임시 예산으로 잡아 두고, 매달 줄일 수 있는 부분을 줄여 나가라고 조언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월 지출이 일정해지는데, 그 정도를 예산으로 잡으면 된다. 예산에는 비상금도 포함되어야 한다. 카드 사용을 줄이기 위해서는 급할 때 쓸 수 있는 현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월급의 10% 정도를 비상금으로 저축했다고 한다.

돈을 합리적으로 쓰고 있는지 돌아보는 것도 중요하다. 자칭 ‘소비 요정’이었던 저자의 카드 명세서에서는 무엇보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할부금이 카드 대금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었다. 저자는 할부를 끊는 것은 물론 각종 요금제와 구독 서비스를 낮추거나 정리했고, 필요한 물건이 있어도 바로 인터넷으로 주문하는 게 아니라 요일을 정해 계획적으로 장을 보기 시작했다. 포화 상태인 옷장을 정리하고, 가진 옷으로 몇 개의 조합을 만든 뒤 계절 내내 돌려 입었다.

처음에는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는 것만으로 성취감이 느껴졌지만, 소비단식을 이어 가다 보니 다이어트에만 해당되는 줄 알았던 요요 현상이 찾아왔다. 스트레스 배출구가 되어 주던 쇼핑을 일순간에 끊자 해소되지 못한 스트레스가 쌓여 폭주한 것이다. 다이어트에서도 감량보다 유지가 더 어렵다고 하듯, 허리띠를 졸라매는 것 자체보다 그 생활을 지속하기가 어려웠다.

지속가능한 소비단식을 위해 저자가 찾아낸 방법은 크게 두 가지였다. 우선 ‘치팅데이’ 성격의 여윳돈을 만들었다. 치팅데이란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들이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먹고 싶은 음식을 먹는 날이다. 원칙에는 어긋나지만, 다이어트를 포기하지 않고 지속할 힘을 준다. 소비가 아예 금지된 상황은 스스로에게 자꾸 거짓말을 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저자는 생필품 외의 항목을 살 수 있는 최소한의 여윳돈을 뒀다.

두 번째는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으로, 소비 이외에 내면을 채울 방법을 만드는 것이었다. 저자의 경우에는 글쓰기, 걷기, 독서 등이었다. 특히 글쓰기는 소비단식에 대한 의지를 다지는 데도 큰 도움이 됐다. 현대인에게 소비는 자존감을 채우는 수단이다.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자존감이 낮을수록 명품을 더 많이 구매하려는 성향을 보였다고 한다. 그런데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제공하니 소비 욕구가 감소했다. 저자는 “소비단식을 위해서는 나의 정체성이 어디에 있는지 고민해보고, 자존감을 높일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저자에게 소비단식이란 잘못된 소비 습관에서 벗어나 경제적 자유를 향해 다가서는 첫걸음이었다. “삶을 살아가는 데 비용을 적게 쓰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행동의 범위가 점점 넓어진다”고 말하는 이 책은 소비의 노예가 된 우리 모두의 삶을 돌아보게 한다.

[독서신문 김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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