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개봉한 <쥬라기 월드: 도미니언>은 30여년 간 이어온 ‘쥬라기 시리즈’의 종결판이다. 전작인 <쥬라기 공원(1993)>부터 <쥬라기 월드: 폴른 킹덤(2015)>으로 이어지는 쥬라기 영화는 과학 기술로 무장해 공룡을 통제하고 이용하려는 ‘인간’과 그를 비웃기라도 하듯 손쉽게 통제를 벗어나 강한 이빨과 발톱으로 인간을 위협하는 ‘공룡’ 간의 대립 구도를 보여준다. 이번 영화는 이러한 구도를 더욱 극적으로 보여주는데, 특히 제목의 ‘도미니언(지배자)’은 공룡과 인간 중에서 지구의 지배자가 나온다는 가능성을 함축하고 있다. 하지만 책 『패자의 생명사』에 따르면 이 구도 자체가 틀렸다. 미래의 지구를 호령할 진정한 지배자는 무시무시한 이빨을 가진 공룡도, 뛰어난 두뇌를 지닌 인간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지구의 주인은 누굴까. 일본의 대표적인 식물학자이자 농학박사인 저자 이나가키 히데히로는 이 책에서 생태계 먹이 사슬의 최하위에 놓여 있던 생물들을 조명하며, 이들이 지구의 진정한 지배자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겉으로는 크고 힘이 강한 동물들이 오래 살아남을 것 같아보이지만, 생명이 탄생하고 나서부터 지금까지 번성하고 있는 종은 오히려 작고 단순한 존재들이라고 주장한다.
저자가 드는 가장 대표적인 예로는 박테리아가 있다. 박테리아는 원시시대부터 현재까지 살고 있는 지구 최초의 생명체로 알려져 있다. 이 박테리아의 특징은 몸이 단순한 형태를 지녔다는 것인데, 그 결과 유전자를 복사해서 빠른 속도로 증식할 수 있고, 환경 변화에도 신속하게 적응할 수 있다. 지구에서 생명체가 폭발적으로 발달했던 27억 년 전까지만 해도 박테리아는 원시적인 형태의 생물이었지만, 오히려 그 원시성이 지금까지 종을 유지하고 번성할 수 있었던 비결이었다.
저자는 “요구르트나 치즈를 만드는 유산균, 청국장을 만드는 고초균도 모두 박테리아다. 콜레라균과 결핵균 등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는 병원균에도 많은 박테리아가 존재한다”며 “만약 지금 지적인 외계 생명체가 지구를 관찰하고 있다면 세계에서 가장 번창하는 것이 박테리아이며, 진화에 가장 성공한 종이라고 할 것”이라고 전한다.
또한 바퀴벌레와 흰개미, 투구게, 앵무조개는 고생대부터 지금까지 살아남은 생물들인데, 이들은 몇억 년 동안 거의 진화도 하지 않고 옛 모습 그대로 살고 있다. 저자는 “아무리 구시대적인 형태라도 현재 존재하고 있다는 것은 그들이 치열한 생존 경쟁을 이겨 낸 뛰어난 승자임을 의미한다”며 “오히려 바퀴벌레와 흰개미의 경우, 현대인조차도 이들에게 항복할 정도로 현대 사회에서 번성하고 있지 않은가”라고 반문한다.
반면, 공룡을 비롯한 고등 생물들은 변화나 위기에 좀처럼 적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공룡이 멸종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소행성 충돌이었는데, 작고 단순한 생물들은 그 와중에도 살아남으며 지구의 실질적인 지배자 행세를 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크고 복잡한 구조를 가진 생물이 아니라 하잘 것 없어보여도 작고 단순한 생물이 생존에 더 유리하다.
저자는 “과거에 대멸종의 쓰라린 경험을 당한 것은 지구를 지배한 강자들이었다”며 “38억 년 생명의 역사에서 일어난 대격변으로 미루어 볼 때, 인간이 출현했다가 멸종되더라도 (지구와 작은 생물들에) 아무런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독서신문 안지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