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속에서 발전한 메타버스는 그동안 밖에서 뛰어놀지 못했던 아이들에게 새로운 놀이터를 선사했다. 요즘 아이들은 학교 수업이 끝나면 제페토나 로블록스 등 메타버스 플랫폼에 접속해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고 쇼핑을 한다. 이곳에서는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것도 쉽고, 자기 아바타를 치장해 대리 만족을 느낄 수 있으며, 심지어 게임 아이템을 만들어 돈을 버는 것도 가능하다. 부모들은 자녀의 게임 중독을 우려하지만, 아이들에게 메타버스는 자신을 확장할 수 있는 기회인 셈이다.
하지만 그곳이 안전하냐고 물으면, 답은 ‘그렇지 않다’이다. 어쩌면 코로나보다 더 위험한 공간일 수도 있다. 바로 메타버스에서 벌어지고 있는 성폭력 때문이다.
한 초등학교 여학생은 메타버스 게임에서 남성 아바타로부터 성적인 요구를 받았다. 한 이용자가 자신에게 ‘비밀놀이’를 하자고 제안한 후에 아바타가 착용 중인 아이템을 모두 벗고 자신의 아바타 위에 반복적으로 앉거나 엎드리는 등의 자세를 취하라고 했다. 비록 피부로 느껴지는 접촉은 없었지만, 수치심은 충분히 느껴질만한 상황.
또한 게임 속에서 친분을 쌓은 친구가 성적 대화를 시도하며 몸을 찍은 영상이나 사진을 요구한 경우도 있었는데, 결국 그는 아동‧청소년들의 신체 사진을 받아 성착취물을 제작해왔던 30대 남성으로 밝혀졌다. 이 외에도 메타버스에서 아바타간 유사 성행위를 강요하거나 친분을 쌓은 뒤 받은 알몸 사진을 친구 혹은 부모님에게 보내겠다고 협박하는 성범죄가 자주 발생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메타버스 성범죄를 미리 방지할 수 있는 법이나 제도는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 그러나 법과 제도가 마련된다고 해서 메타버스 성폭력이 모두 해결되리라는 보장도 없다. 책 『지금 해야 늦지 않는 메타버스 성교육』의 저자 이석원과 김민영은 “실질적인 성교육을 통해 아이들에게 분별력과 판단력을 길러줘야 한다”며 “그래서 양육자가 먼저 메타버스 성교육에 대해 깊이 있게 알고 있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책에는 여러 교육 방법이 제시되지만 그 중 ‘양육자가 먼저 메타버스에 참여하라’는 말이 가장 주목할 만하다. 저자들은 “메타버스 세계가 무엇이고 어떤 일이 일어나며, 얼마나 강력한 중독성이 있는지 양육자가 이해해야 올바르게 지도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메타버스 성교육 강의를 나갔을 때 만난 사람들의 사례를 소개한다. 한 엄마는 “솔직히 처음에는 저도 별로 하고 싶지 않았지만 아들을 위해 해보기로 했다”며 로블록스로 아들과 친해지니, 자연스럽게 성에 관한 대화도 잘 나눌 수 있다고 말했다. 그 결과 아들이 게임을 하다가 성적인 콘텐츠나 욕설을 접하면 엄마에게 가장 먼저 이야기한다고 했다.
메타버스의 시대가 불쑥 다가왔다. 앞으로 전염병으로 인한 팬데믹 주기가 더 짧아진다는 예측을 고려한다면, 메타버스는 아이들의 필수 놀이 공간이 될 가능성이 높다. 부모가 먼저 자녀에게 손을 내민다면 아이들의 놀이 공간도 지키면서 범죄도 예방할 수 있지 않을까.
[독서신문 안지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