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세까지 산다고 하지만… 제대로 ‘죽는 법’도 모르면서
130세까지 산다고 하지만… 제대로 ‘죽는 법’도 모르면서
  • 안지섭 기자
  • 승인 2021.09.16 07: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평소 자신의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우리는 예전보다 전쟁의 위협에서 자유로운 시대에 살고 있으며, 웬만한 질병도 병원에서 치료받으면 삶을 연명할 수 있다. 생존의 방법을 고민하던 시대는 지났다. 최근 과학계의 뜨거운 화두는 ‘인간의 기대 수명’이다. 2080년에는 130세 노인이 탄생할 수 있을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그런데 단순히 사람의 목숨을 이어간들 그것이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는 듯하다.

미 콜럼비아 의과대학 교수 리디아 더그데일이 들려주는 경험담은 현대인의 무의미한 연명 치료 집착 경향을 보여주는 사례다. 암세포가 온몸으로 전이돼 생명이 꺼져가는 환자가 있었다. 생명 유지 장치 덕분에 사망하지 않고 혼수상태로만 놓여있었다. 여러차례 고비가 있었으나 의사들이 심폐소생술과 각종 연명 치료 기술로 겨우 살려냈다.

더그데일이 보기에 그의 치료 가능성은 희박했다. 가족들에게 다음 코드 블루(병원에서 심장마비 환자가 발생할 경우 의사를 긴급 호출하는 의료코드)시 연명 치료를 중단할 의사가 있냐고 물었다. 하지만 가족들의 생각은 단호했다. 가족들은 “우리는 기적을 믿어요. 아버지가 돌아가시지 않도록 모든 조치를 다 취해주세요”라고 말했다. 결국 환자는 세 번째 코드블루만에 사망했다. 의사에게 연명을 부탁하는 보호자들의 사례는 이밖에도 많다. 특히 독실한 종교인들의 경우에는 신의 치유 능력을 굳게 믿는다는 이유로 환자의 생명을 연장시키려는 경향이 있다.

더그데일은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책 『삶의 마지막까지, 눈이 부시게』(현대지성)을 썼다. 사람들에게 좋은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게 책의 주요 메시지다. 좋은 죽음은 좋은 삶에서 비롯된다. 이를 위해서 사람들은 삶이 유한하다는 생각을 머리 속에 각인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 예로 먼 과거 유럽에서 유행했던 ‘아르스 모리엔디’라는 개념을 소개한다. 저자는 “현대인은 제대로 죽는 법을 모른다”며 “컨베이어 벨트처럼 돌아가는 의료 체계는 환자나 보호자가 ‘정지’ 버튼을 누르지 않는 이상 안타까운 죽음을 향해 계속 나아간다”고 꼬집는다.

아르스 모리엔디는 ‘죽음의 기술’ 정도로 직역된다. 중세 유럽 페스트의 참상 속에서 생겨난 용어다. 당시 유럽인들은 그 대륙의 인구 3분의 1을 앗아간 페스트와 기근, 전쟁을 겪으면서 보편화된 죽음을 목격했는데, 이 때 죽음을 준비 방법을 안내하는 소책자 ‘아르스 모리엔디’가 인기를 끌었다. 이후 수세기에 걸쳐 이 개념이 사회적 문화에 자리잡기도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20세기로 들어서면서 유례없는 풍요를 겪은 이들은 더 이상 잘 죽는 방법을 고민하지 않게 됐다.

저자는 우리에게 현대판 아르스 모리엔디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웰다잉을 위해서는 공동체의 역할이 필수적이다. 현대사회에서 숱하게 발생하는 고독사 문제 해결 방안이기도 하다. 저자는 아르스 모리엔디에서 묘사되는 애도 문화를 인용한다. 중세 유럽에서는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침상에서 죽어가는 사람을 둘러싸고 그의 임종을 지켰다. 이러한 관행은 공동체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됐다. 현대의 호스피스 병동에서의 병증 완화 치료는 이러한 아르스 모리엔디와 유사한 측면이 있다. 죽음을 앞둔 환자는 병동에서 지인들을 맞아 ‘고마워’ ‘사랑해’ ‘안녕’ 등 고별 인사를 하며 생의 마무리를 준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의학계에 ‘슬로 의학’ 논의의 도입 필요성도 촉구한다. 현대의 의료 노동은 공장식 컨베이어벨트 공정 과정 같다. 병원에 입원한 환자는 컨베이어벨트 위에 놓인 상품처럼 돌봄을 받는다. 의사, 간호사, 재활치료사, 의료 기술자들이 시간을 쪼개 환자의 증상을 살핀다. 효율적으로 보이는 체계는 환자의 생명 연장만을 염두에 둔다. 환자인 자신이 생을 이어나갈지, 마무리할지 고민이 필요한데 의학적 지식이 부족한 이들은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저자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환자의 내면까지 더 깊이 보살피는 의학적 접근은 궁극적으로 환자에게 유익하다”며 “치료로 발생할 수 있는 위험과 부담을 최소화하고, 의사가 지쳐 치료를 포기하는 불상사를 예방한다. 그렇기에 슬로 의학은 실용적”이라고 평가했다.

[독서신문 안지섭 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비회원 글쓰기 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서초구 논현로31길 14 (서울미디어빌딩)
  • 대표전화 : 02-581-4396
  • 팩스 : 02-522-6725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용채
  • 법인명 : (주)에이원뉴스
  • 제호 : 독서신문
  • 등록번호 : 서울 아 00379
  • 등록일 : 2007-05-28
  • 발행일 : 1970-11-08
  • 발행인 : 방재홍
  • 편집인 : 방두철
  • ⌜열린보도원칙⌟ 당 매체는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 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고충처리인 박용채 070-4699-7368 pyc4737@readersnews.com
  • 독서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1 독서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readersnews.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