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미레의 육아에세이] 내면 아이 키우기
[스미레의 육아에세이] 내면 아이 키우기
  • 스미레
  • 승인 2021.06.11 09: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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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가슴에 아이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한 개인의 정신 속에서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처럼 존재하는 아이의 모습, 바로 내면 아이다. 이 아이를 프로이트는 이렇게 설명한다.

‘한때 우리 자신이었던 어린아이는 일생동안 우리 내면에서 살고 있다.’

살기만 하면 괜찮다. 방이야 얼마든지 내줄 수 있다. 문제는 이 아이가 이런 말을 건다는 것이다.‘내 잘못이야. 내가 더 잘해야 해. 더 착한 아이가 되어야 해.’아, 이 가련한 아이를 어찌하면 좋을까.

어디 내면 아이뿐이랴. 아이를 키우며 떠오르는 기억과 감정들은 묻어둘수록 선명해져 갔다. 피곤에 찌든 내게 어서 이 상처를 해결해 달라고, 무슨 말이라도 해보라고 아우성이었다. 컴플렉스, 트라우마……. 융이 말한‘그림자’였다. 의식과 무의식에 걸쳐 존재하며 우리의 에너지를 방해하는 컴플렉스가 존재하는 곳.

수학은 나의 오랜 컴플렉스였다. 아이에게 수학 문제집을 사주고 쉬운 문제를 냈던 건‘아이가 좋아해서’이기도 하지만 내 컴플렉스에서 나온 것이기도 했다. 아이 수학을 대할 때면 괴로웠다. 그만둘까 하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그런데 불쑥, 이런 마음이 솟았다.

‘괜찮아. 조금씩 해보자. 나도 해보고 싶어.’수학 때문에 상처를 많이 받았던, 나의 내면 아이다. 그 때문이었던 것 같다. 차근히, 아주 쉽고 느린 속도로, 마치 예민한 식물 대하듯 아이 수학을 대했다. 그렇게 아이 수학과 씨름할 때면 오래된 기억들이 하나씩 걸어 나왔다. 나는 수학을 못 하는 아이가 아니었다. 경시대회에서 상도 여러 번 탔고 문제 푸는 것도 꽤 즐겼다. 초등학생 때까지는 적성 검사 결과가 이과로 나왔었다. 잊고 있던 반전이었다.

아이 옆에서 노트를 펴고 함께 문제를 풀었다. 수학 문제만 보면 날뛰는 내면 아이를 안심시키고 싶었다.‘나도 할 수 있어. 별거 아니야. 잘 봐.’노트 위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아이 몰래 눈물을 훔쳐내며 나는 나아지고 있었다.

하지만 넘어야 할 산이 많았다. 중학교 때 친구들 앞에서 문제를 못 맞혔던 기억, 그래서 몇 번인가 불려 나가 망신을 당했던. 한창 민감한 사춘기에 느꼈던 그 극한의 수치심과 공포. 남편이 아이에게 문제를 낼 때면 더럭 겁이 났다. 한동안 문제를 내지 말아 달라고 애원했을 정도였다. 아이가 문제를 틀리면 눈앞의 아이와 떨고 있는 나의 내면 아이를 동시에 달래야 했다.

“괜찮아. 틀려도 돼. 이거 틀렸다고 큰일 나지 않아.”

“문제를 이해한 것만으로도 대단한 거야.”

수학은 나의 역린(逆鱗)이었다. 나는 수학 때문에 엄마를 기쁘게 하지 못하는 아이였다. 다른 과목에서 100점을 받아도 수학이 100점이 아니어서 칭찬을 받지 못했다. 모두가 내가 잘하는 것 아닌 못하는 것만 바라보는 것 같았다. ‘수학만 더 잘하면 좋겠는데.’ 학창 시절 내내 어른들로부터 들은 말이었다.

나는 내가 수학 때문에 망신을 당했고, 원하는 만큼 사랑받지 못했으며, 원하는 학교와 과에 못 갔고, 그래서 꿈을 이루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수학이 내 인생을 망쳤다고. 수학이라는 이름에 내가 얻지 못한 모든 것의 이유를 지게 했다. 그리고 뚜껑을 덮어 저 깊숙한 곳에 가라앉혀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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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서 나온 아이가 그것을 집요하게 들춘 건 이해할 수 없는 신비다. 얘는 그러려고 세상에 나온 건가 싶을 정도였다. 수학뿐 아니었다. 아이가 뚜껑을 열자 너무 많은 것이 쏟아져 나왔다. 당황했고, 괴롭고, 아팠다. 어쩌면 아이는 정말 그러려고 세상에 온 건지도 모른다. 그렇게 나를 비우고, 살리려고.

가장 불편하고 피하고 싶은 것. 그것이 자신의 역린이다. 하지만 인정하고 이해해서, 익숙해진 것은 더이상 역린일 수 없다. 아이가 들춰낼수록 상처는 아물어갔다. 어느 틈엔가 나는 괜찮아졌다.

자신을 다독일 수 있는 사람이 어른이라면, 나는 지금 어른이 되어가나 보다. 놀라웠다. 그리고 그런 내가 되어 다행이라는 안도가 스몄다. 융은 감정 뒤에 숨은 그림자를 찾아 반복적으로 사고하면 긍정적인 에너지로 바꿀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그건 나 혼자서는 절대 할 수 없는 종류의 일이었다. 아이가 아니었더라면.

누구도 과거를 바꿀 수는 없다. 하지만 과거의 일을 다시 바라보고 그 사건에 새로운 의미를 덧입힐 수는 있다. 역린을 꽁꽁 숨겨 두면 썩어 독이 되지만, 그것을 발견하고 이해하면 거름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자신의 역린을 꺼내보는 일은 꼭 필요하다.

육아하며 드는 부정적인 감정, 떠오르는 아픔, 이불 킥의 순간들을 피하지 않기를 바란다. 애써 저항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두려워도 자꾸 바라보고, 말을 걸고, 귀 기울이면 흩어지게 마련이니.

 

 

 

 

 

■ 작가소개

- 스미레(이연진)
『내향 육아』 저자. 자연 육아, 책 육아하는 엄마이자 에세이스트.
아이의 육아법과 간결한 살림살이, 마음을 담아 밥을 짓고 글을 짓는 엄마 에세이로 SNS에서 많은 공감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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