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박한 여행자
순박한 여행자
  • 김혜식 수필가/前 청주드림 작은도서관장
  • 승인 2021.03.02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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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식 수필가/前 청주드림 작은도서관장

[독서신문] 새벽이 좋다. 이른 새벽 창문을 열면 신선한 공기가 폐부 깊숙이 스며들어 머릿속이 한껏 맑아지는 기분이다. 어디 이뿐이랴. 이 시간까지 불을 밝혀온 정원의 가로등 불빛은 동살을 받아 미명의 꺼풀을 한 겹씩 벗고 있는 회색빛 아파트 건물과 어우러져 신비로움마저 자아낸다.

새벽과 마주하면 괜스레 가슴이 뛴다. 이는 새벽이 하루를 시작하는 시간이어서만은 결코 아니다. 이 새벽과의 조우(遭遇)를 위하여 무수히 잦은 몸짓과 태동을 품속 깊이 준비하였을 밤의 경이로움이 문득 떠올려져서다. 밤사이 땅 속 깊이 내린 뿌리로 나무들은 수액을 온몸으로 빨아들였을 터이고, 바다의 물고기들은 제 몸을 살찌우며 자맥질을 위한 에너지를 충만 시켰다. 이로 보아 밤은 어둠만을 안겨주는 게 아니었다. 모든 만물의 생성도 어둠이 도와 그 속에서 농익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렇듯 희망의 상징인 새벽과 절망 및 음습함을 지닌 밤은 양자(兩者) 사이에 깊은 관계가 있지 싶다.

인생 여정에도 따사로운 밝은 빛만 존재하지 않는다. 때론 칠흑 같은 밤이 수없이 찾아온다. 평탄대로만 걷는가 하면 다시금 고난이라는 장애물이 난데없이 불쑥 나타나는 게 인생사다. 이는 인간 자체가 오지를 찾아 떠나는 여행자나 다름없기 때문이라면 지나칠까. 문명인의 발길이 미처 닿지 않은 오지야말로 비산비야(非山非野)일지 혹은 험난한 구릉지일지는 직접 그곳을 탐험하기 전에는 가타부타 말할 수 없다. 즉 인생을 최선을 다하여 살아보지 않고는 정녕 삶이 고해(苦海)라고 장담할 수도 없다. 또한 신세계라고 정의를 내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럼에도 우린 어머니로부터 탯줄을 끊는 순간 숙명적으로 인생길에 첫발을 내딛게 된다. 이때 한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불확실한 삶 속에서도 잘 살 수 있을 것이라는 한 가닥 희망을 향해 묵묵히 주어진 길을 걸어갈 뿐이다.

이 나이에 이르고 보니 그 오지를 걷느라 험난한 인생의 파고(波高)를 온몸으로 부대끼며 예까지 온 듯하다. 그 길엔 삶의 통증을 안겨준 밤도 분명 존재했다. 이것이 한입에 집어삼켰던 인생 여정의 간난(艱難), 행복한 삶의 편린이라 할 정경들이 하나, 둘 새벽이라는 희망 앞에 그 전모를 드러낼 때 시야 가득 들어오는 낯선 거리 풍경들, 그것이 안겨주는 호기심과 해방감은 인생길에 여행을 떠나본 후에야 비로소 체득한 희열이기도 했다. 그곳은 미처 가보지 못한 산천(山川), 미지의 이역(異域) 땅 풍경과 흡사하다. 이러한 인생길을 인내의 자세로 걸어보지 않고서는 어찌 인생사를 쉽사리 논할 수 있으랴.

그러므로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새내기들은 이곳을 거닐며 새로운 사회 정서와 풍속 등을 심신으로 겪으며, 세상살이에 대한 해법을 찾아야 할 듯하다. 비록 그 길이 평탄치 않은 오지이긴 하나 부박한 문명의 나라가 아닌, 어린이의 동심처럼 원시적인 세진(世塵)이 오롯이 원형 그대로 보전된 모습임에랴. 이 길에서 헛발질만 유의하면 충분히 꽃길로 가꿀 수도 있는 게 인생길이 아니던가. 이러한 마음으로 오지나 다름없는 인생길을 찾는다면 누구랄 것 없이 그곳에 걸음을 내딛는 순간 한없이 마음이 유순해지고 가슴이 마냥 넓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오죽하면 오지 탐험가 이상문은 그의 저서, 『라오스로 소풍갈래?』의 작가 인사말 서두에 오지 나라인 라오스를 일러 가난하지만 착한 동생이라고 호칭했을까. 여기서 ‘가난하다’ 라는 표현은 오지인 라오스라는 국가를 일컫는 말이기도 하지만 어찌 보면 속진(俗塵)에 오염 되지 않는 순박한 민족성을 빗댄 표현이기도 하다. 아울러 라오스라는 나라는 아직은 경제적인 부흥이 타 선진국보다 뒤처졌다는 뜻이기도 할 것이다. 무엇보다 문명의 발전이 초래한 야박함이 결여돼 인간 본연의 따순 정이 국민성에 잔존해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인생길이나 매한가지인 오지는 문명의 불빛이 전혀 비치지 않아 어둠에 갇힌 곳이라고도 명명할 수 있다. 이에 반하여 문명국은 휘황한 불빛을 지녔다. 하지만 문명의 찬란한 불빛은 너무 선명하게 사물을 비쳐서인지 되바라졌다. 마치 순탄대로만 걸어온, 일명 금수저라 일컫는 이들과 유사하다고나 할까? 이들은 두 손에 거머쥔 게 많아 빈자(貧者)의 고초를 실감 못 한다. 반면 인생의 오지를 걷느라 산전수전을 겪은 사람은 타자(他者)가 지닌 고통과 애환을 진심으로 헤아리는 인정을 갖추었잖은가.

셰익스피어는 "인생은 무대 위 한편의 연극이다"라고 했지만, 어찌 보면 인생은 ‘삶의 도정(道程)을 여행하는 여행자’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므로 다사다난한 인생길에서 삶의 여행이 끝나면 어느덧 우린 노쇠하여 레테 강을 건너야 한다. 이곳을 찾기 전, 마음의 거울이 필요한 것은 성숙한 삶을 완성하기 위함이다. 이러한 인생 여정에서 유일하게 남길 수 있는 생의 흔적은 이타심이다. 고(故) 김수환 추기경이 자신의 안구를 기증하여 앞 못 보는 이에게 광명을 찾아주었듯이, 무엇으로든 타인에게 이타심을 나누는 일이야말로 우리가 생을 끝마치기 전 서둘러 행해야 할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이즈막이다. 이타심이야말로 인간 본연의 순수(純粹)이자 본질이기도 하여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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