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파시즘 - 제국의 판타지와 젠더 정치
역사적 파시즘 - 제국의 판타지와 젠더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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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5.11.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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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말기 식민지 조선을 읽는 새로운 시각

▲     © 독서신문

일제 말기 식민지 조선을 다룬 『역사적 파시즘 - 제국의 판타지와 젠더 정치』가 책세상에서 출간됐다. 기존의 책들이 남성을 파시즘 체제를 작동시키는 주체이자 객체로서 주목하고 여성은 위안부 문제를 중심으로 다루는 데 그친 것에 반해, 이 책은 여성에게도 파시즘 체제를 유지?강화시키는 역할이 강제되었다는 관점에서 출발한다.

 이는 저자의 학문적 이력에서 비롯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가족 이야기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책세상, 2000), 『문학 속의 파시즘』(공저)(삼인,2001) 등 문학과 역사학의 경계를 넘나들며 연구해온 저자는 가족주의와 모성신화에서 출발하여 파시즘과 젠더 정치로 연구 주제를 확장해 왔다.
이 책은 정치와 경제, 제도적 측면에만 집중한 기존의 역사 기술 방식을 지양하고 지금까지 공개되지 않은 광고(향수, 약, 화장품, 레코드 등)나 신문(매일신보, 경성일보, 조선일보 등), 잡지(신세기, 신시대, 총동원 등) 등 흥미로운 자료를 텍스트로 삼아 여기에 나타난 담론을 분석하고 있다.

 이러한 방식은 민중의 일상과 심층 의식, 이들의 일상에 깊이 침투한 이데올로기의 진면목을 보다 잘 살펴볼 수 있게 해준다. 체제의 표면과 이면, 식민지의 내부와 외부, 일상과 전장을 거침없이 가로지르는 이 책은 광복 60주년을 맞은 우리에게 외부로만 향했던 시선을 내부로 돌려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는 일제 말기의 유산을 성찰하게 한다.

 타인과의 연대감을 상실한 채 고립감과 적대감에 사로잡혀 있는 개인과 배타적 집단주의가 만연한 사회의 모습은 우리가 파시즘 체제하의 젠더 정치의 유산 안에 여전히 머물러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일제의 다양한 사회적 통제장치

 이 책에서 여성은 후방의 관리 주체로서, 이른바 ‘총후(晁)부인’의 역할을 부여받는다. 태평양 전쟁이 장기화 되고 남성이 전장에 동원된 상황에서 후방의 관리와 전시 동원의 기초단위로서 가정이 강조되면서 여성의 역할이 대두되는 것이다. 이는 종종 가정 바깥에 존재하는 여성을 비판하기 위한 근거로서 기능도 한다.

 또 남성에서는 ‘청년’의 역할이 부여된다. 청년은 황민의 제일선에 선 정예 부대이자, 서구화도기 퇴폐적이거나 마르크스주의적으로 이념화된 근대적 지식인을 비판하는 제 3의 정체성으로 규정된다. 그러나 이러한 청년 담론은 지식은 엘리트층과 비엘리트층의 남성에게 각각 상이한 의미로 작동했다.

 즉 엘리트층에게는 지도적 위치를 부여하고 비엘리트층의 입신출세의 기회를 선전하면서 양측을 교묘히 이용한다. 즉 이들 두 계층을 교묘히 이용, 엘리트적 지위를 둘러싼 헤게모니 투쟁을 전개시키고 이를 일제 협력을 위한 자기 정당화의 수단으로 이용하여 조선 내에서 일제황민화 작업을 가속화하는 것이다.

 이러한 가운데 1938년을 전후하여 조선에서는 남방 담론이 급증한다. 이 남방 담론은 조선인 스스로에게 남방인보다 우월한 지위를 부여함으로써 일본 제국내에서 일본인에 이어 2인자로서의 지위를 점하려는 제국의 판타지가 내면화 된 것이다.

 또 이러한 남방 담론은 문명개화된 일본이 서구의 침략에 맞서 미개한 조선과 아시아 여러 나라를 수호하고 근대화한다는 일제의 논리가 식민지 조선인에게 그대로 내면화되어 있음을 보여준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일제의 유산인 경쟁과 욕망

 『역사적 파시즘 - 제국의 판타지와 젠더 정치』는 비단 일제 말기라는 특수한 역사적 상황을 읽는 데만 그치지 않고 역사와 현재를 가로지른다. 우선 저자는 일제 말기를 비롯하여 파시즘이 부상한 역사적 국면에서 대중을 파시즘 체제에 합류하게끔 하는 근본적 요인이 자본주의의 주요한 면모인 경쟁에서 살아남고 이기려는 욕망이라고 본다.

 또한 파시즘 체제는 표면적으로는 집단주의의 광기로 드러나지만 그 이면에는 고립감과 불안감에 산산이 찢겨 있는 개인들이 존재함을 역설한다. 이러한 점은 imf 이후의 우리 사회에서 두드러지는 부의 양극화 현상과 증오 범죄에서 찾아볼 수 있는 특징이기도 하다.

 자본주의 체제와 파시즘의 연관성에 대한 고민은 해방 이후 한국 현대사에도 적용된다. 한국 전쟁과 박정희 체제하에서 강요된 외부에 대한 증오는 내부의 사회적 적대를 강화시켰다. 즉 정권이 강요하는 정체성을 갖지 못했거나 이에 저항하는 집단을 적, 불순분자 등으로 규정하면서 배타적인 가족 국가주의의 질서를 강화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한 것이다.

 또 이 책은 자본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오늘, 타인들과의 연대감을 상실한 채 고립감과 타인에 대한 증오를 가슴에 품고 있는 우리의 삶이 일제 말기 식민지인의 삶에서 그 유산에서 과연 얼마나 자유로운가를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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