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정의’(正義)의 사전적 의미는 개인 또는 사회를 구성하고 유지하는 공정한 도리다. 다만 그 개념 해석에는 사람마다 다소 차이를 보이는데, 소크라테스는 ‘인간의 선한 본성’을 정의로 규정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각자에게 각자 몫을 주는 것’, 칸트는 ‘도덕적 가치의 결과가 아닌 이를 추구하는 마음’으로 해석했다. 존 롤스는 저서 『정의론』을 통해 ‘자의적인 불평등이 없는 상태’를 정의로 정의(定義)했다.
미세한 차이를 막론하고, 정의는 대체로 이상적 사회를 의미한다. “정의 사회 구현을 위해 앞장서겠습니다”라는 건 이상적인 사회 건설에 힘쓰겠다는 말이고 이는 비단 공직자에게만 해당하지 않는다. 모름지기 사람이란 저마다의 이상향(理想鄕)을 지니고, 이를 현실화하기 위해 분투하기 때문이다. 다만 그 이상(理想)의 초점이 사람마다 같지 아니한데, 실제로 환경운동가는 자연보호를, 노동조합은 노동자의 권리 추구를, 여성단체는 성평등을, 정당은 정권 창출을, 진보는 개혁을, 보수는 사회 질서 유지를 정의 구현의 핵심 가치로 여긴다.
이런 차이는 “정의 구현”이란 동일한 외침 속에서 갈등을 빚는 이유다. 누군가는 조국 사태를 “정의 구현을 방해하기 위한 음해세력의 농간”이라고 목소리 높이지만, 다른 누군가는 “조국 자체가 정의롭지 못한데, 무슨 정의를 논하냐”고 반박한다. 수감 중인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누군가는 “경제를 바로 세운 애국자”라고 칭송하지만, 다른 누군가는 “거물급 범죄자일 뿐”이라고 비판한다.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이 뇌물 수수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은 것 역시 누군가에겐 “정치보복”, 다른 누군가에겐 “대통령 측근이 고가의 시계를 선물 받은 그릇된 일”이다. 대부분 자기 뜻과 어긋난 상황을 ‘부정의’로 규정하기 때문에, 같은 상황에 정의와 부정의가 공존하는 모순이 발생한다.
그런 관점 차이 속에서 인류 전체에 적용되는 보편타당한 가치 판단을 내릴 필요가 있는데, 그런 역할을 맡은 주체가 바로 사법기관이다. 그중에서도 피고의 잘잘못을 따져 법원에 심판을 요청하는 검찰의 역할은 사회 정의 구현에 있어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언뜻 판결을 내리는 법원이 더 우위에 있는 듯 보이지만, 실은 검찰이 기소하지 않으면 재판 자체가 열리지 않기 때문에 사실상 검찰은 사법 체계의 ‘실세’로 손꼽힌다.
문제는 검찰도 중립적 가치를 지키는 데 온전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정치적 유불리를 자의적으로 해석해, 정권 비리에 (대체로 집권 세력에 유리한) 다른 잣대를 가져다 대고, 같은 검찰 식구의 비리에 관대했던 흑역사가 없지 않다. 검찰 내 감찰부서를 만들고, 검찰총장이 법무부 장관의 지휘를 받도록 견제 장치를 마련했지만, 큰 효력이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검찰이 지닌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해 권한을 줄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 이유다.
그런데 현 정부는 검찰의 권한 축소(지난해 12월 일부 수사권을 경찰에 이양하기는 함)에 힘쓰기보다는, 검사를 포함한 판사, 경찰의 비리를 전담 수사하는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립에 공을 들였다. “검찰을 견제하는 중립적 기관이 필요하다”와 “막강한 권한(수사권·기소권)을 지닌 또 하나의 검찰 아니냐”는 첨예한 논란이 있었지만, 결국 지난달 30일 김진욱 선임헌법연구관이 초대 공수처장으로 지명돼 청문회를 앞두고 있다.
비록 공수처장은 지명됐으나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검찰 견제를 목적으로, 더 막강한 권한으로 만들어진 공수처를 견제할 장치가 없다는 이유인데, 실제로 공수처장의 임기는 검찰총장(2년)보다 긴 3년으로 대통령은 물론 국회에서도 탄핵할 수 없으며, 공수처 내 검사들은 3년간 최장 9년까지 근무가 가능하다. 일각에서는 검사 인사권이 없는 공수처장이 검사들에게 끼치는 영향력이 미미해 부당한 지시를 하기 어렵다고 주장하지만, 지난 4일 JTBC <신년토론>에 출연한 금태섭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서울중앙지검 특수부 검사는 (권한이 막강해) 최장기간 2년밖에 근무를 안 시킨다. 보통 1년 하고 옮긴다. 그런데 공수처 검사는 3년씩 9년을 있을 수 있다”며 “승진할 요인이 없어 공수처장한테 충성하거나 아부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반대로 생각하면 승진할 필요도 없기 때문에 권한을 남용해도 통제가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공수처장의 권한 남용 가능성도 문제지만, 수하 검사의 일탈도 우려된다는 것. 함께 출연한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역시 “(만일 일각에서 악마화하는) 한동훈 검사를 공수처장으로 올려놨을 때 (더불어민주당) 여러분들은 그거 용납하시겠냐”고 반문했다.
책 『정의를 밀어붙이는 사람』의 저자 에노모토 히로아키는 “‘정의는 힘을 가진다’라는 말은 이상적이다. 하지만 현실은 유감스럽게도 힘이 정의가 된다. 힘이 정의가 되는 상황에서는 강자의 논리만이 옳다고 여겨진다. 따라서 자기주장만 밀어붙이려고 하기 전에 상상력을 동원해 상대를 이해하고 존중하고 합의점을 찾는 자세를 갖는 게 중요하다”고 충고한다.
2019년 7월 문재인 대통령은 국회의 인사청문회 보고서 채택 불발에도 윤석열 검찰총장 임명을 강행했지만, 최근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의 갈등으로 큰 혼란을 겪었다. 이후 공수처장이 그러지 말란 법은 없는데, 그때는 법적으로 견제할 방법이 전무해 큰 우려를 낳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