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줍니다.” “어떻게 사느냐는 친구의 물음에 그랜저로 답했다.” “대한민국 1%의 힘.” 각각 롯데건설의 롯데캐슬 광고카피와 현대자동차의 그랜저 광고카피, 쌍용자동차 뉴 렉스턴 광고카피다.
당신이 이 카피들에서 위화감을 느끼지 못한다면 문제가 있다. 가령 당신이 곰팡이 슨 반지하에 산다면, 혹은 비가 새는 곧 쓰러질 듯한 집에 산다면 롯데캐슬 광고를 보는 기분은 어떨까. ‘당신=곰팡이 슨 반지하’ 혹은 ‘당신=비가 새는 집’이라는 등식이 성립한다. 또 그랜저가 아닌 쏘나타나 아반떼를 타는 사람들이 현대차의 카피를 보고 무슨 생각을 할까. 렉스턴을 살 수 없는 이들은 정말 힘이 없는 것일까.
인간이 상품이나 화폐 따위의 생산물을 숭배하는 현상을 가리켜 물신주의(物神主義)라고 한다. 물신주의에 빠지면 그 어떤 가치보다 자본을 중요하게 여기게 된다. 자본 사이에서 소외되고 상처받는 인간들은 보이지 않는다. 만약 예시로 든 카피들에서 당신이 어떠한 감정도 느끼지 못했다면 물신주의의 늪에 깊게 빠져있을 수 있다.
위의 예시는 대부분 10여년 전 광고카피인데, 그렇다면 오늘날은 어떨까. 책 『결 : 거칢에 대하여』의 저자 홍세화는 “우리 사회 물신주의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고 말한다. 그것을 단적으로 나타내는 말이 바로 “조물주 위의 건물주”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남녀노소 건물주가 되고 싶은 마음은 당연하지만, 우리는 건물주가 신(神)보다 높다는 말에 아무런 위화감을 느끼지 못한다. 우리 사회가 건물을 가진 사람을 신처럼 우러러보는 사이 어떤 이가 상처받았고, 또 어떤 이가 소외당했을까.
우리 사회가 물신주의에 찌들어 있다는 사실은 초등학생들의 말을 통해서도 증명할 수 있다. ‘휴거’(임대아파트 브랜드 ‘OOO’에 사는 거지) ‘200충’(월수입 200만원 벌레) ‘300충’ ‘기생수’(기초생활수급자)… 분명 초등학생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 초등학생들에게조차 돈이 없는 이들은 거지이거나 벌레다. 돈이 신이며, 월수입이 곧 계급이라는 개념이 아주 어릴 때부터 뇌에 각인된 것이다.
사회적으로는 ‘플렉스’(flex) 문화가 유행이다. 명품 로고가 잘 보이도록 포장 박스와 함께 인증하거나 자신이 번 돈이라며 지폐 다발을 흔들며 자랑한다. 은근한 자랑질이 아닌 대놓고 하는 자랑질. 영어사전에서 flex를 찾아보면 ‘구부리다’라는 뜻으로, 주로 운동할 때 ‘근육에 힘을 주다’ ‘근육을 과시하다’ 등의 의미로 쓰인다. 플렉스 문화가 자신의 수고와 노력에 대한 자부심과 격려가 아닌 돈이 곧 근육(힘)이고 돈이 없는 사람은 약자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쪽으로 치우친다면 위험하지 않은가.
‘자낳괴’(자본주의가 낳은 괴물)라는 말도 이제는 긍정적인 분위기를 형성한다. 본래 이 단어는 별풍선(사이버머니)을 받기 위해 인터넷 방송에서 비상식적인 일을 벌이는 BJ를 일컫는 말로, 주로 비판을 위해 사용됐었다. 그러나 이제는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는 사람에 대한 우리 사회의 경계심은 없다. 공중파 방송에서조차 ‘자낳괴’라는 자막이 얼마나 많이 등장하는가.
김난도 교수는 『트렌드 코리아 2020』에서 내년 트렌드로 ‘자본주의 키즈’를 꼽았다. 자본주의 생리를 체득한 세대가 소비의 주체로 나선다는 것이다. 누가 또 소외되진 않을까. 누가 또 상처받진 않을까. 돈으로 살 수 없는 가치들이 저평가 되진 않을까. 거대한 물신주의 흐름 앞에 우리가 던져볼 만한 질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