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 명문장] 한국전쟁 당시 미국이 핵폭탄을 쓰지 않은 이유
[책 속 명문장] 한국전쟁 당시 미국이 핵폭탄을 쓰지 않은 이유
  • 전진호 기자
  • 승인 2020.10.26 17: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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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전진호 기자]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한 과학자들은 ‘히틀러보다 먼저’를 가슴에 새기고 불철주야 원자폭탄 개발에 매진했습니다. 그 결과 1945년 초여름 3개의 핵무기를 만드는 데 성공했어요. 3개의 핵무기 가운데 2개는 플루토늄 핵폭탄이었는데, 각각 ‘가제트’와 ‘뚱보’라는 이름이 붙여졌고, 1개는 우라늄 핵폭탄인데, ‘꼬마’라는 이름이 붙여졌어요. (중략) 핵폭탄 ‘가제트’는 1945년 7월 16일 새벽 5시 30분 미국 뉴멕시코 사막에 만들어진 높이 30미터의 탑에 올라서게 됩니다. 이 탑에서 뛰어내린 가제트는 엄청난 폭발음과 햇빛보다 강렬한 빛을 내뿜으며 ‘핵 시대’의 개막을 알렸습니다. 과학자들이 예측한 것보다 서너 배는 더 강력한 20킬로톤의 폭발력을 보인 이 실험은 12킬로미터 상공까지 치솟은 버섯구름과 깊이 3미터, 폭 330미터나 되는 거대한 웅덩이를 만들어 냈어요. <26~27쪽>

아인슈타인은 자기 인생의 최대 실수는 루즈벨트에게 편지를 보내 핵무기 개발을 독촉한 것이라며 자책했어요. 아인슈타인은 이렇게 말했어요. “총알은 사람을 죽이지만, 핵무기는 도시를 파괴한다. 총알은 탱크로 막을 수 있지만, 인류 문명을 파괴하는 핵무기를 막을 수 있는 수단은 존재하지 않는다.”

‘핵폭탄의 아버지’로 불리던 오펜하이머도 나중에는 생각을 바꿔 ‘핵 군축의 아버지’가 되고 싶어 했답니다. 오펜하이머의 말입니다. “우리는 유리병 속에 든 두 마리의 전갈과 같습니다. 서로 상대방을 죽일 수 있는 능력을 가졌지만, 그러려면 자신의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43쪽>

한국전쟁 발발 원인 가운데에는 트루먼과 스탈린의 핵 위력에 대한 과신에 있었습니다. 당시 소련보다 핵무기를 많이 갖고 있던 미국은 중국과 북한은 물론이고 소련도 전쟁을 각오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한편, 1949년 8월 핵실험에 성공한 소련은 미국이 핵전쟁 위험까지 감수하면서 한국전쟁에 깊이 개입하리라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김일성의 남침을 승인하고 지원하기로 했던 것이죠. <66쪽>

인종 차별주의 논란도 미국이 북한과 중국에 핵폭탄을 떨어뜨리지 못한 중요한 까닭이었습니다. 무슨 말이냐고요? 당시 미국은 흑인 차별 같은 인종 차별로 악명이 높았습니다. 게다가 미국은 이미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폭을 투하했습니다. 미국이 다시 아시아인 거주지인 북한과 중국에 원자폭탄을 떨어뜨리면 ‘미국은 유색 인종 차별국가’라는 오명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되거든요. 실제로 미국이 원폭 투하를 암시하자 아시아의 많은 나라가 “왜 아시아인들에게만 핵폭탄을 쓰려고 하느냐?”며 반발했습니다. <70쪽>

 

『흥미진진 핵의 세계사』
정욱식 지음 | 소복이 그림 | 갈마바람 펴냄│204쪽│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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