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인의 연인인가 희대의 간첩인가
만인의 연인인가 희대의 간첩인가
  • 신금자
  • 승인 2007.11.09 13: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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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속의 여인들⑤
                                                      이중간첩 마타하리

 
▲ 신금자[수필가 · 독서신문 편집위원]     ©독서신문
 어이없이 그녀가 자바섬에 버려졌다.
그녀 나이 3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기숙학교에 다녔다. 갑갑한 그 곳을 탈출하고자 열아홉에 늙은 지아비를 맞는 일도 주저하지 않았으나 끝내 신은 그녀가 평범하게 사는 것을 바라지 않았을까? 네덜란드에서 군인인 남편을 따라 자바섬에 온 후, 하릴없이 심심하던 차에 동양의 이국적인 원주민의 춤을 접했다. 무료함을 면할 양으로 시작한 춤에 매료되어 있을 무렵, 뜻밖에 아들이 죽었다. 집에서 일하던 가정부의 독살이었다. 이유인즉, 그녀를 배신한 애인이 네덜란드인이라 네덜란드 남자는 모두 독살하고 말겠다는 복수심이 사고를 불렀다. 그 일로 인해 부부는 별거에서 이혼까지 갔다. 다행히 딸을 데리고 나왔으나 인플루엔자로 딸마저 잃었다. 

 그녀는 궤도수정을 해야 했다. 일단 자바 섬을 떠나 파리의 환락가인 물랭루즈의 무희가 되겠다는 결심을 한다. 그녀는 한달음에 파리로 갔지만 파리 사교계가 촌뜨기에게 그리 호락호락할 리 없다. 이혼녀인데다 서른의 적지 않은 나이에 젊고 섹시한 무희들 틈에 낄 재간이 없다. 그렇다고 한 가닥 희망인 댄서를 접을 수도 없다. 
매음굴까지 기웃거리다 다행히 대성할 수 있는 컨셉을 잡아준 이가 있었다. 그녀가 자바섬에서 얼치기로 배웠던 발리댄스에 대한 신선한 매력이 승산있다고 보았으리라. 그렇잖아도 동양문화를 동경하던 유럽인들에게 자바섬이 아닌, 인도 사원에서 춤을 추던 무희라고 슬쩍 속여 이국적인 댄서로써 무대에 올렸다. 그녀의 본명 ‘게르트루드 마르가레테 첼레’를 버리고 ‘마타하리’로 개명도 했다. 인도어로 ‘여명의 눈동자’란 뜻이란다. 그녀의 춤은 이내 대박이 났다. 유럽인에게 비친 동양문화의 신비감과 장식용 보석 브래지어와 작은 천으로 허리만 살짝 가린 그녀의 빼어난 관능미, 뇌쇄적인 춤으로 고급 장교들의 혼을 빼놓았다. 급기야 파리 사교계 명사들과 정재계의 거물급 인사들도 마타하리에게 줄서기 바빴다. 결국 영국, 독일, 스페인에서도 공연을 해 달라는 주문이 쇄도했다. 

 사람들이 열광하는 만큼 검은 시선도 있기 마련이다. 특히 1차 세계대전 중인데다 그녀가 관계하는 인사들이 정재계 아니면 고급 장교들로 유럽 전 지역을 넘나들며 각국의 장교들을 끼고 사는 판에 마가 끼는 것은 시간문제다. 
 염려대로 그녀는 독일 비밀 경찰조직에 포착되었다. 조용하면서 매력적이라 어떤 남자도 단번에 흡입할 수 있는 댄서로서의 특수성이 스파이로 제격이지 않은가. 곧 베를린에 보고되었다. 국적이 네덜란드인데다 순회공연을 핑계로 유럽을 마구 돌아다닐 수 있는 것도 좋은 조건이다. 그녀 자신도 춤을 체계적으로 공부하고 쌓은 실력이 아닌데다 마침 파리사교계에는 세대교체라도 하듯, 이사도라 덩컨이란 여자가 떠오르고 있었다.
 
 댄서에서 살짝 외도를 해볼까? 그녀는 독일 스파이 첩보학교에 입학을 한다. 이때가 1차 세계대전 직전이다. 4개월은 1급 스파이가 되기엔 턱없이 짧은 기간이다. 거의 기초지식만 습득한 꼴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희대의 스파이인 그녀의 이력서가 이리 허술하다. 
 이 정도 훈련으로 그녀가 냉정한 스파이 세계에 힘을 발휘할 수 있었을까. 거물급 인사들의 친분을 이용한 스파이 활동을 기대했지만 그녀는 신참 1년여 만에 영국 첩보부에 덜컥 꼬리가 잡혔다. 그러나 시시한 결론이 내려졌다. 아주 저급한 수준의, 영향을 거의 미치지 못하는 정보로 걸고 넘기에 애매했다. 하마터면 독일의 거물급 스파이인 클라라 베네딕스가 파리에서 마타하리로 행세하고 다닌 것을 몽땅 뒤집어 쓸 뻔 했다.

 그럼 실제 마타하리의 정보의 질은 어땠을까? 독일군 u-보트에게 연합국 수송선단의 위치를 한번 알려줬고 또 탱크란 것에다 대포를 장착하고 쳐들어간다는 것 정도였다. 지속적인 항로 제공도 아닌, 1회성에 그친 이 정보는 군의 여기저기서 마구 감지되므로 사실 독일 정부에서도 그녀를 크게 주시하지 않았는데 어쩌다 스파이 하면 그녀를 떠올리게 된 것일까?
 신은 미련한 그녀를 또 시험에 들게 했다. 40살 그녀에게 찾아온 사랑, 바로 20살의 러시아 장교 블라디미르 드 마슬로프였다. 그 청년의 끈질긴 구애에도 움직이지 않던 그녀가 그의 간청을 들어준(그가 딸에게 보낸다는 편지를 외교행랑에 넣어달라는) 것이 화근이었다. 전쟁 중이라 국경을 넘는 편지는 모두 검열을 받지만 외교관의 행랑은 무사통과할 수 있었으니 네덜란드 주재 프랑스외교관에 접근, 편지를 프랑스에서 네덜란드로 검열 없이 보내주었다. 그러다 프랑스대사에게 발각되고 말았다. 아둔하게 첩보원의 누명에서 옴짝 못하게 된 것이다.
 
 이제 영국과 프랑스 첩보부에 올라버린 마타하리, 결정적 스파이란 물증도 없지만 사건은 황당하게 흘렀다. 러시아 청년장교의 구애도 뚝 끊겼다. 그 때 비보 -그가 부상을 당해 프랑스 병원에 누워 있다는- 가 날아들었다. 그녀는 냅다 프랑스로 달려갔다. 당연히 프랑스 첩보부에서 따라붙었다. 그들의 덫에 순순히 뛰어들어준 셈이다. 이래저래 변명할 여지가 없자 프랑스 스파이를 자처한 것이다. 평생 멍에가 된 이중스파이의 시작은 이랬다.

 그런데 어째서 이 정도의 일로 마타하리가 총살까지 당해야 했을까? 프랑스 말을 안 들은 것도 배신을 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문제는 전쟁터였다. 지지부진한 전쟁임에도 참호전과 무조건 돌격하라는 무모한 죽음의 향연 앞에 프랑스군이 태업을 하게 된다. 싸우지 않겠다는 소식에 프랑스 사회도 술렁거렸다. 군은 흉흉한 민심을 누그러뜨려야만했다. 
 이중스파이에다 미모의 댄서는 혼란스러운 사회의 온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는 최상의 조건이다. 그녀가 선택되었다. 관계한 인사들 모두가 거물급으로 해이한 이들 탓에 전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었다는, 즉 그들 각본대로 포장을 해서 총살형으로 이슈화 한 것이 아닌가. 우리 기억속의 마타하리는 ‘20세기 최고의 여자 이중스파이’ 이런 이미지다. 이는 그들이 부풀린 희대의 사건이다. 

 
 1917년 10월15일 오전 5시 47분, 아침잠에서 깨어나는 시각 그녀는 12명의 사수 앞에 섰다. 순간, 집행관이 그녀에게 슬쩍 귀띔했다.
   
    “공포만 쏠 거니까 죽은 척만 해라 알았지?”
 
마지막까지 그녀는 이 말을 믿고 웃으며 죽었다고 한다. 신은 그녀에게 달리 사는 방법을 일러주지 않았다. 실제로 그저 그런 40대의 혼곤한 영혼이 프랑스 정부에, 그들의 쇼에 의해 어마어마한 이중간첩이 되어 희생된 것이다.
 
 기억하건대 몽마르트르언덕 아래 빨간풍차(물랭루즈)도 빛바랜지 오래다. 언덕에 우뚝 선 우유빛 사크레쾨르 대성당만이 역사를 거슬러 삼키고 있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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