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디 마을에서 느끼는 인생의 무한성
베르디 마을에서 느끼는 인생의 무한성
  • 독서신문
  • 승인 2015.07.28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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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論語) 익는 마을

[독서신문] 천명을 모르면 군자가 될 수 없다. (不知命無以爲君子也: 부지명무이위군자야)
(不知命: 천명을 모른다, 無以: ~할 수 없다. 可以의 반대말, 爲君子: 군자가 되다)
-「堯曰」편-

어떻게 나의 생명이 이 세상에 태어났는가? 나의 설 자리는 어디이고, 나의 할 일은 무엇인가? 부모가 사랑과 정성으로 키우시고 조상의 얼과 혼이 깃들인 이 존귀한 생명을 무엇을 위하여 어떻게 쓸 것인가?
이것을 바로 깨닫는 것처럼 중요한 일은 없다. 이것을 아는 것이 '지명(知命)'이다. 이것을 아는 사람이 '군자'다. '군자'란 '행복한 자유인'이다. 명은 천명, 운명, 사명, 생명이다. 내 생명이 존재하는 이유다. 내가 살아있는 동안 쓸 수 있는 시간이다. 이것을 모르면 군자가 될 수 없고 행복할 수 없다.

하늘에서 별이 움직이는 모습이나 파도가 치고 바람이 불며 낮과 밤이 일어나는 자연계의 순환법칙은 시간을 측정하는 기념비적인 방법을 찾는 사람들에게 깊은 사색과 광범위한 영향을 미쳤다. 그것은 동서양의 철학자들이나 과학자들 심지어 신의 대리제주(祭主)로 힘께나 쓰던 무당들에게도 자연순환의 원리를 견문하는 거시경이었음에 틀림이 없다.

사람들은 주기적인 변화에 직선형의 변화를 연결하는 대신에 둘 이상의 연속적인 사건들을 일렬로 나란히 세워놓고 비교하는 방식으로 시간을 특정하려 했다. 이것은 태양의 (주기적) 운동에 나의 (직선적인) 나이 같은 것을 연결하는 것 같은 방법과도 일맥상통한다.

예를 들어보면,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시간을 '우리 돼아지(돼지)가 요만했을 때' 하며 시간을 가축의 성장 속도와 비교하곤 했다. '곰방대 한 대 피울 무렵'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김주영의 소설 『객주』에서는 오래전 읽어서 기억이 흐릿하긴 하지만 '곰방대 한 대 빨 시간'을 5분 정도로 보고 있기도 하다.

우리와 멀리 떨어진 중동 사람의 주춧돌 밑에도 유사한 시간관념이 있었다. 수단의 누에르족은 중요한 사건들을 가축의 성장 정도나 통과의례 같은 의식과 비교했다. 장마나 가뭄 혹은 전쟁이 '개가 이만 할 때' 또는 '누구 집 아들이 학교 들어갔을 때' 있었다고 말하는 식이다.

상기 두 가지 측정방식 아래에는 시간에 대한 상반된 아이디어들이 깔려 있다. 즉, 시간은 원처럼 끝없이 둥글둥글 순환하는 것인가? 아니면 직선처럼 반복되지 않는 단일한 궤적을 그리는 것일까 하는 의문들이 부인할 수 없는 체계성을 가진 부표처럼 보인다.

몇 년전 '라 트라비아타(La Traviata)'의 작곡가 베르디의 생가를 찾아 이탈리아 파르마 지역을 돌아다닐 때 일이다. 파르마에서 한참 떨어진 베르디의 고향 부세토 마을에는 정적이 감돌고 있었다. 베르디의 동상이 서 있는 마을엔 사람들이 거의 보이지 않았으며 교회당의 종소리만 아득하게 들려올 뿐이었다. 자세히 알아보니 점심시간이었다. 정확하게 시간을 지키는 사람들이라 베르디의 기념관을 구경하려면 식사시간이 끝나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 시간이 오후 3시까지로 너무 길었다. 필자는 관람을 포기하고 돌아가려다 마음을 고쳐먹고 할 수 없이 오후 3시까지 기다렸다. 그 시간의 지루함이라니…. '빨리 빨리'에 익숙해져 있던 필자는 그런 식으로 점심시간을 오래하는 것이 마땅찮았고 게으르다고 생각했다. 벤치에서 이리 뒹굴 저리 뒹굴하거나 화장실에 가서 괜히 오래 머뭇거리거나 하늘을 쳐다보며 지겨운 시간을 반죽하고 나니 비로소 어딘선가 개 짖는 소리가 들리면서 마을에 활기가 돌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한 두명씩, 마치 마을의 전설이 어디선가 잘라진 것을 메우려하려는 듯 두리번거리며 나타나는 것이었다.

이들은 쉬는 시간과 일할 시간을 철저히 지킨다. 여유롭게 쉬는 것이 인생의 가장 큰 보람이며 행복이라고 느끼는 것이다. 물론 이런 생각의 영토에는 종교와 철학이 식민돼 있으나 그 보다는 천천히 즐기면서 음식을 먹고 잘 살자는 느림에 대한 찬양이 전통 속에 보존돼 있는 것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 민족도 과거에는 이에 못지않았다. 우리 민족의 가야금은 여운이 잠재된 절박한 심금들과 좌충우돌하게 하여 한국적 심금을 끌어낸다. 달빛에 흔들리는 대나무 그림자를 선방에 모래를 깔고 들여 그림자에 쓸리는 소리를 듣고 좌선한 우리 선조의 풍류가 바로 시간의 흐름을 역으로 쪼개내는 디오니소스적 매듭이 아닌가 한다.

세월은 시간 위에 이끼를 만들며 또 다시 흐를 터이다. 시간이 쏜살 같이 흘러가는 '시간의 화살-시간의 쳇바퀴(Time's Arrow, Time's Cycle)'는 세상의 법칙이다. 무리하지 말고 천천히 가자.

/ 윤진평 <논어익는 마을>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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