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의 숲
조 병 기
이삿짐을 싼다
버릴 것은 과감하게 버리자고 다짐한다
버릴 물건을 골라놓으면
손때 묻은 시간이 항변한다
다시 골라 짐을 싼다
헤아리니 열한 번째 이사
쌌다 풀었다 망설이다가
날이 새고 만다
내 속에 얼마나 많은
욕심이 들어앉아 있길래
버리지를 못하나
-시집 『사인시』에서
■조병기
○ 전남 장성 출생
○ 1972년 <시조문학>으로 등단
○ 1981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
○ 시집: 『가슴속에 흐르는 강』, 『바람에게』, 『숲, 일기』 외
■감상평
○ 욕망이란 것은 긍정적인 면에서는 발전을 지향하는 바탕이 되기 때문에 버려서는 안되는 것의 하나다. 본질적으로는 생명체의 본성에 해당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것이 한계를 넘어서면 사소한 욕심으로 둔갑하여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문제를 일으키지 않아도 스스로를 부끄럽거나 곤혹스럽게 만드는 경우도 있다. 살다보면 이것저것 집안에 사들이기 마련이다. 그 중에는 요긴하게 쓴 것도 있고, 전혀 사용해보지 못한 것도 있으리라. 이사할 때마다 고민스럽다. 버려야 하나, 다시 가지고 가야 하나. 굳이 들고 가는 것이 욕심이랄 수는 없을 것이다. 소중한 손때와 묵은 시간은 그만큼의 의미가 있지 않겠는가. 그저 반성하는 마음이 삶의 아름다운 자세이리라.
/ 장종권(시인, <아라문학> 발행인, <리토피아>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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