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火)의 여신(女神)
불(火)의 여신(女神)
  • 독서신문
  • 승인 2014.09.23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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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 해설'

                                              김시종(金市宗)

 

불의 여신을
신문에서 두어 번 보았다.

실오라기 하나 가리지 않은
누드 모델 같은 그녀를.

그녀는 호텔의 겁화(劫火) 속을
터럭 하나 다치지 않고
용케 빠져 나왔다.

ㄷ호텔의 화재 때도
ㄷ코너의 큰 불에도
그녀는 있었지만
불사신不死神이었다.

그녀를 울린 사내는
타 죽었지만
울던 그녀는
외려 살아 남았다.

불(肉火)을 일으킬 뿐
불에 타지 않는 불의 여신.

맨몸으로 살아가는
정직한 그녀를
아무도 모른다.
이 세대의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다.

 

 

[이해와 감상]
절실한 참다운 ‘휴머니즘’의 고양

▲ 김시종 시인

시의 소재는 무궁무진하지만, 시인이 새로운 시의 세계를 계발하는 작업은 결코 손쉬운 것이 아니다. 오늘날 대형선박 침몰 참사로 3백명이 넘는 귀중한 인명을 빼앗긴 진도 앞바다 큰 사건 등등 대형 비극이 잇닿는 속에 사회의 불의부정에 의한 추악한 ‘발톱들’이 온 국민의 가슴속을 더욱 멍들도록 후벼파고 있다.

실상은 벌써 70년대 큰 참화를 어쩌면 젊은 세대들은 모를 것이나 중노년 층에서도 기억이 많지 못할 것 같다. 서울충무로 어귀의 대형 ‘대연각’호텔 화재 참사는 광복 이후 최대의 참화였다. 투숙객들 중에서는 불타는 창가에 매달려 살려달라고 웨쳤던 ‘나신’의 젊은 여성도 있었다.

시인은 예리하게 촉각을 세워 이 땅의 역사적 참화에다 그의 예리한 사고(思考)의 앵글을 갖다대고, 이 시대의 삶의 의미를 심도 있게 해학적으로 풍자하며 이미지화 시키고 있다. 김시종 시인은 그 시대의 거울이며 증언자이다.

‘실오라기 하나 가리지 않은/ ……// 그녀는 호텔의 겁화 속을/ 터럭 하나 다치지 않고/ 용케 빠져 나왔다’(제2, 3연)는 ‘불사신(不死神)이었다’(제4연)고 경탄한다. 또 한편에서 우리는 이 시를 읽으면서 참으로 다행한 일이었다고 안도한다.

오늘날, 누구의 잘못인지는 몰라도 이른바 ‘러브호텔’이 주택가며 심지어 농촌 주변까지 난립하는 어지러운 세태 속에서, 나락을 모르고 추락하고 있는 세상의 타락상을 개탄하고만 눌러 앉아 입을 틀어막고 조용히 있을 것인가.

화자는 「불의 여신」을 통해, 오늘날의 문란하기 그지 없는 사회 윤리에 큰 경종을 울리기보다는 오히려 가엾은 ‘불의 여신’의 구원을 절절하게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페미니즘’이 아닌 오늘의 시대에 너무도 절실한 참다운 인간애의 ‘휴머니즘’의 고양이다.

/ 홍윤기 국제뇌교육대학원 국학과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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